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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 영화의
성공 비밀은 무엇인가

프롤로그

글 : 최광희 영화평론가 

천만 관객의 비밀저자




내 직업은 영화를 보고 평하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분석하고 해설해주는 것 역시 영화평론가로서의 내 역할이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영화와 관련해 많은 글을 써왔다. 여기저기 방송에도 나가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왔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영화의 흥망성쇠를 지켜볼 수 있었다. 많은 영화인들을 만났고, 흥행 결과 때문에 환호하는 모습, 또 정반대로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도 보았다.


따지고 보면 모든 영화는 흥행을 목적으로 한다. 영화는 예술이자 극장유통망을 통해 판매되는 상품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윤 추구라는 동기를 갖는다. 한마디로 수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가 ‘흥행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들은 무엇일까?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그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만 해도 흥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영화의 흥행이란 단순히 관객 수가 얼마냐가 아니라 엄밀히 말해 들어간 제작비를 고려했을 때 창출되는 이익을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를 따져야 한다.


가령 제작비 100억 원이 들어간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려면 대략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고려하지 않고 200만 명 정도 들었다고 흥행했다 말하면 우스운 일이 된다. 실제로, 심지어 기자들조차 그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반대로 10억 원 정도의 소박한 제작비를 쓴 영화는 30만 명 정도만 들어도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이런 영화는 100만 명만 들어도 대박인 것이다. 

어쨌든 영화에서 성과를 창출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흥행’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중영화이든 저예산으로 소박하게 만든 예술영화이든 일단 극장에 내걸려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흥행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된다. 수많은 영화의 흥행 성패를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지켜보다 보니 영화 흥행이라는 게 비단 영화 그 자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


그렇다면 왜 어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어떤 영화는 실패하는 걸까? 그리고 흥행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만한 교훈들을 끄집어낼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래서 만났다.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이준익(<왕의 남자> <사도>), 윤제균(<해운대> <국제시장>), 최동훈(<도둑들> <암살>), 양우석(<변호인>) 감독을 비롯해 천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흥행 성공을 거둔 우민호(<내부자들>), 진모영(<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병헌(<스물>) 감독 역시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눴다.


흥행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개입한다. 제작자의 기획력, 배급사의 전략 그리고 마케팅적인 요소들 역시 감독의 창의력만큼이나 흥행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 역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성과 창출의 노하우는 어디에 있는지를 탐색해봤다.

성과 창출의 고수라고 부를 수 있는 흥행 감독들,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는 성공적인 성과를 창출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필요충분조건은 아래의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



 #1. 열정 


열정이 있으면 누군가 나를 데려가 줄 귀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두사부일체〉 감독을 할 때도 “월급쟁이가 감독한다고? 미쳤나?” 그랬어요. “그럼 제가 기획서 만들어 올게요” 하고 2주 동안 잠도 안 자며 보냈죠. 그렇게 비디오 30~40개를 데모테이프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계속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니까 반응이 오더라고요. 저는 사실 충무로 경험도 없잖아요. 현장 경험도 없고. 그런데 “너 정도 열정이면 어지간한 감독보다 못하진 않겠지” 하더군요. 
_ 윤제균, <해운대> <국제시장> 감독


모든 일이 그렇지만, 영화라는 게 일단 시작하고 버티는 게 참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거, 그것만 한 열정이 또 어디 있나요. “엄청난 명작을 만들 거야”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게 열정인 거 같아요. 매일 술 마시면서 느슨하게 살았는데, 생각해보니 저도 열정이 있었네요. 버텼으니까요. 10년을 쥐꼬리만큼 벌면서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도 내고 거의 쉬지 않았거든요. 쉬지 않고 일하고 있으면 그게 열정인 거죠. 열정이란 단어, 그렇게 어려운 말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지금도 저는 열정 안에 있네요. 

_이병헌, <스물> 감독


열정은 당연히 자기가 하고 싶은 거죠.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은 소와 할아버지가 같이 살고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서 전국 농촌 마을의 이장들을 3년 동안 만나고 다녔다는 설이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어느 순간에 꽂힌 거죠. 길을 가다 어느 아가씨가 맘에 들어서 쫓아가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고 말을 건 경우요. 그런데 그 어떤 경우가 됐든 정말 하고 싶은 욕망이 열정으로 변화되는데, 중요한 지점들은 거기에 상당히 그럴싸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 독특하고 이국적이고 그리고 보편적인 근거들을 열정의 베이스로 깔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하고 싶다’는 것이 열정이 아니라 거기에 충분할 만큼의 근거들을 가지고 전진하는 거, 그게 열정 같아요. 
_ 진모영,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독 


 #2. 협업 


협업이라는 것은 결국 작업 과정의 즐거움을 나누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통마저도 나누는 것이죠. 영하 13도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같이 벌벌 떠는 거죠. 그 고통을 오래 나누고 싶진 않지만 그것을 같이 경험해보는 거. 그렇다면 이미 본질적으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죠. 
_ 최동훈, <도둑들> <암살> 감독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배역이 정해지는 순간 감독의 디렉션은 끝났다고 생각해요. 왜?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그날 찍을 대사나 장면의 상황과 설정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이 고민하고 오거든. 촬영감독이나 배우들이 나보다 더 많이 자기 분야에 맞는 롤을 치열하게 준비해 와요. 감독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 아무것도 없어요. 
_ 이준익, <왕의 남자> <사도> 감독


제가 생각하는 협업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에요. 그게 일단 기본적으로 돼 있어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위치와 포지션, 지위를 떠나서 말이죠. 제 연출이 막 나갈 때라도 배려가 있어야 하고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_ 우민호, <내부자들> 감독



 #3. 공감 


저는 공감에도 어떤 형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인>을 만들 때 영화적으로 제가 이뤄야겠다, 이건 지켜야겠다고 생각한건 법정영화의 장르적 완성도를 반드시 담보하고 가야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영화만 놓고 볼 때 여기에 어떤 걸 갖춰야 영화적으로 한국영화에 보탬이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_ 양우석, <변호인> 감독


나 스스로가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게 공감인 거 같아요. 내가 만든 영화는 결국 나처럼 나올 텐데 자기는 안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착한 모습을 영화 속에서 보여주면 결국 제작자가 연기하는 거잖아요. 근데 내가 만약에 그런 선한 마음을 갖는다면 나는 그 자세가 그냥 공감으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해요. 남의 공감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진실성 있는 공감이 중요해요. 연기는 하지 말자,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_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미녀는 괴로워>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제작 

누군가가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은 얘기를 했고 그것이 듣는 이에게 위로가 됐을 때 공감이 이뤄지는 거 같아요. 결국 감독이나 기획자나 제작자가 듣고 싶은 이야길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건넸을 때 관객이 그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는 순간 공감이 이뤄지는 거 같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관객이 많을 때 보다 높은 흥행 결과를 내기도 하고요. 
_ 강효미, ‘퍼스트룩’ 이사, <도둑들> <변호인> <베테랑> 등 마케팅 담당


앞서 나는 모든 영화가 필연적으로 흥행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흥행을 영화 비즈니스적 차원에서의 성과라고 했을 때, 결국 영화 흥행이란 영화감독의 창의적 ‘열정’이 훌륭한 배우, 스태프들과의 원활한 ‘협업’ 과정을 통해 관객과의 폭넓은 ‘공감’으로 창출된 성과라고 요약해볼 수 있을 듯하다. 영화가 흥행을 향해 가는 과정은 흥미롭게도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하려는 여러분의 노력에 적용될 수 있는 효과적이고도 의미 있는 힌트들을 제공한다. 흥행 감독들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유용한 참고서이기도 하다.


열정, 협업 그리고 공감. 이것이 흥행 감독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도출되는 성과 창출의 세 가지 키워드이다. 앞으로 이 키워드들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글│최광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뉴스전문채널 YTN에서 방송 기자로 일했다. 2001년 창간한 영화주간지 〈FILM 2.0〉의 취재팀장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FILM 2.0〉에서 주로 흥행 분석과 영화 산업 관련 기사를 많이 쓰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흥행의 함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이번 책 『천만 관객의 비밀』의 자양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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