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부시게 맑은 어느 토요일. A는 아픈 머리와 속을 부여잡고 점심때가 다 돼서야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불금을 보내느라 새벽까지 술을 마신 탓에 9시간을 넘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마신 술이 자꾸 마중을 나왔다. 해장을 하고 싶었지만 뭔가 먹으면 그대로 다시 돌아 나올 것 같아 물만 겨우 마셔댔다. A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뒹굴면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에 의지해 유튜브와 티비 보기를 몇 시간 동안 하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점점 속이 괜찮아져 겨우 일어나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정신을 차리니 자괴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A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시간을 실속 없이 보내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A는 하루 종일 집에 있더라도 태블릿을 꺼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했다. 이른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빈 주커만은 이처럼 새롭고 참신하며, 흥미로운 어떤 자극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을 감각추구성향이라고 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자극들을 필요로 하고 자극이 부족하면 지루함을 못 참고 새로운 자극을 갈망한다. 이러한 감각추구성향은 일반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장년기보다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더 높게 나타난다. 이제 막 20대 후반에 들어선 A라는 남자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 걸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주커만은 감각추구성향을 스릴과 모험 추구, 체험(경험) 추구, 탈억제(자제력 상실 중독), 권태 민감성(지루함 혐오 경향)의 4가지로 구분하였다. 또한 사람마다 감각을 추구하는 정도가 다르며, 여러 감각을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각추구성향은 취미뿐만 아니라 직업 선택과 연결될 수도 있다. A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추구하기는 하지만 이는 단지 정신적인 새로움을 의미하며 신체적인 위험과 스릴에 놓이게 될 여지가 있는 새로움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즉 스릴과 모험 추구 측면에서는 낮은 감각추구성향을 보이며 경험 추구 측면에서는 높은 감각추구성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A는 안 하던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운동이 해장에 좋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 땀과 함께 몸에 남아 있는 알코올을 빼내고 마무리로 집에 와서 샤워를 한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일단 보람 있는 하루가 될 것 같았다. A는 그렇게 집을 나와 강변을 걸으며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던 운동기구도 깔짝거리며 운동을 했다. 그러나 20분 정도 지났을까.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니 오히려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냥 이불에 파묻혀 모처럼의 휴식을 만끽하고 싶었다. 50m 앞에 또 다른 운동기구가 A를 향해 손짓했지만 이내 등을 돌리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다시 누워 C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일을 얘기했다. C는 곰곰이 듣더니 한 마디 내뱉었다.
"제대로 쉴 줄 모르네."
맞는 말이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A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휴식은 앞으로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해야 한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에 집중을 해야 해."
C는 사람들은 저마다 휴식을 취하는 각자의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매번 같을 수는 없다며, 쉬는 날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그게 각자 본인들의 쉬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꼭 뭘 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런 강박을 버려. 진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제대로 쉴 줄 알아야 해. 그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감각추구성향은 강하든 약하든, 그 감각이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큰 범주로 봤을 때 나와 비슷한 감각추구성향을 가진 사람, 즉 같은 취미나 직업을 가진 사람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점점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A가 추구하는 것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디테일한 차이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나와 취미나 직업조차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보라.
그러니 주변의 누군가가 쉬는 날 기꺼이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간다거나 서핑을 즐기는 등 다른 누군가 봤을 때 멋있고 가치 있어 보이는 그런 취미를 가졌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자괴감이 들 필요가 없다. 평일을 쉼 없이 달려왔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주말을 온전히 보내는 휴식 또한 가치가 있다. 앞으로 또 일주일을, 또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지금 내게 가장 가치 있고 내 마음을 가장 행복한 휴식의 방법을 찾는 것이 감각추구성향을 통해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지 파악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