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모르는 편집자 이야기

개떡 같이 써와도 찰떡 같이 만들어 준다

by 데어릿

작가는 원고를 작성하고 편집자는 이를 편집한다. 모든 것은 이 한 문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작가는 원하는 방향을 정해서 글을 얼마든지 쓸 권리가 있고 편집자는 작가의 방향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편집을 할 권한을 가진다. 이 계약 관계에서 과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일까?


누군가는 작가가 갑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는 우선 글이 있어야 편집을 할 수 있는 것이며, 편집자가 자유롭게 편집을 할 수는 있으나 그 또한 어디까지나 작가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부분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자들은 편집 과정에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작가에게 검토를 요청한다.


그럼 편집자가 갑의 위치에 서는 일도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그것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출판기획에 있어 출간 시기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에는 마감 기한이 있다. 만약 작가가 원고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그런 이유라면 사실 오히려 고맙다), 또는 일신 상의 이유로 마감을 지키지 못한다면 출판사는 계획했던 시기에 출간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판매부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편집자들은 마감일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 경우 편집자는 심적으로 작가보다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


'당신이 제때 원고를 넘겨주지도 않았으면서 책이 안 팔린다고 우리한테 징징거리기만 해 봐 아주.'


물론 생각만 이렇게 하지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작가에게 조심스럽게 일정을 재촉한다.


편집자가 (물론 이번에도 심적으로) 갑의 위치에 서는 또 다른 상황이 있는데 이 경우는 보통 개정판이 있는 교재에서 주로 일어난다. 수험서나 자격증 교재의 그 수요층은 어떤 시험에서 합격을 바라는 수험생들이다. 책에 수록되어 있는 문제가 실제 기출문제와 어느 정도 유사한지도 중요하겠지만 그들은 한 문제로 합격과 불합격의 당락에 갈리기도 하기 때문에 교재 내에 오타나 오류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


교재 편집의 더 큰 문제는 편집자가 원고의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읽으며 교정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흐름이나 맥락이 이해가 되지만 난도가 높은 시험의 교재는 그렇지 않다. 그 분야에 전공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편집자는 원고에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잡아낼 방법이 없다. 만약 그대로 책이 출간되고 나중에 그 책으로 공부를 한 수험생이 '이거 틀린 거 아닌가요?' 하고 문의를 해도 편집자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왜냐면 원고에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까.


때문에 원고의 퀄리티가 낮으면 편집자는 작가보다 심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 제 아무리 원고를 그대로 반영하고 본문을 깔끔하게 편집한다 하더라도 편집자의 영역 밖에 있는 원고 오류는 잡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심적 우위는 대부분 교재가 출간된 뒤에나 느낄 수 있지만 편집자들 입장에서는 적어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니다'라는 일종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편집자로 일을 하다 보면 원고가 늦거나 오류가 있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접한다. 앞에서 이런 경우 편집자가 심적 우위를 느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 일종의 자기 방어적 기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으면 편집자는 아마 스트레스로 폭발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편집자가 작가의 횡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들 뿐이다. 그럼 원고가 늦었을 때, 그리고 원고의 퀄리티가 낮을 때 편집자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천천히 들여다보자.



그래서 작가님, 원고는 대체 언제쯤...


일단 원고가 입고되어야 하는 날이 되면 편집자는 출근하기 전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출근을 했을 때 원고가 메일로 들어와 있을까? 만약 원고가 와 있다면 곧바로 원고 정리부터 시작해 오늘 중으로 편집디자이너에게 조판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이 많아서 파트별로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으니 아마 내일 오전에 조판된 PDF 파일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 곧바로 1교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1교를 진행하는 동안 나머지 파트의 원고도 들어올 테니 순차적으로 조판을 요청하고 교정을 진행하면 된다. 좋다. 이대로만 흘러가면 이번 프로젝트는 여유롭게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출근을 해서 메일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원고는 도착해있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전체 일정을 확인해본다. 그래도 아직 하루밖에 밀리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어떻게든 세부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 한숨을 푹 쉬고 작가님께 정중히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이 원고 입고 예정일인데 혹시 오늘 몇 시까지 전달 주실 수 있으실지요. :)'


물론 원고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편집디자이너와 컨택해 기획 단계에서 결정했던 디자인 요소를 한 번 더 점검하거나 세부 일정을 다시 확인해 조정한다. 기획안 내용 중 더 세부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본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지만 작가님께 연락은 오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으신다. 다른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혹시나 원고가 들어오지 않을까 10분 간격으로 메일함을 들여다보지만 야속하게도 받은 메일함은 그대로다. 밤을 새우며 원고를 쓰느라 연락이 안 되는 걸까? 아니면 지금 원고를 집중해서 쓰느라 연락이 왔는지 모르고 있는 건가?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지만 어쨌든 원고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갈 때쯤 드디어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오늘 밤까지 보내드릴게요.'


그렇다. 사실 오늘이 원고 입고 기한이라는 것은 그 시간이 오늘 밤 11시 59분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해봐도 '28일까지 과제 제출하세요'라고 하면 28일 밤 11시 59분까지 보내라는 뜻이지 그날 아침 일찍 제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걸었던 편집자는 결국 오늘 예정했던 조판 요청을 포기한다.


그래도 자신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 편집자는 당장 다음 주가 마감인데 아직도 원고가 다 들어오지 않았다. 작가님께 아무리 재촉을 해도 '어쨌든 책은 나오지 않겠어요? 허허' 하며 사람 좋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동료 편집자는 그 작가가 그럴 때마다 하이킥을 꽂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일단 원고가 밀리면 이후의 모든 일정이 꼬이기 때문에 편집자는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밀리는 것도 그렇지만 원고도 보내주지 않으면서 연락도 되지 않는 작가들을 대할 때면 편집자의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냥 언제까지 원고를 보내야지 하는 일정밖에 없지만 편집자에게는 그 이후에 이어질 교정 일정, 조판 일정, 마감 일정 등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꼬이기 시작하면 그 이후로는 야근을 피할 수 없다.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업무 미숙이 아닌 단순히 원고 입고 지연으로 인해 야근을 하게 된다면 그때 느껴지는 분함과 억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워크맨, 출판사 편집자편 중



작가님, 이 부분 이렇게 수정해도 괜찮을까요?


편집자는 그렇게 겨우 받은 원고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미 일정이 약간 지체되었기 때문에 원고를 꼼꼼하게 볼 시간조차 없다. 서둘러 원고를 열고 눈을 빠르게 굴리는 와중에도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원고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잘못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문단을 나눠야 하는 부분도 그대로 이어 붙여 놨거나, 문장 내 주어와 술어가 어색한 부분도 보였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불평은 원고 검토가 끝난 다음에 하자.


우여곡절 끝에 원고 검토를 끝내고 편집디자이너에게 조판을 요청한다. 이 단계를 꼼꼼하게 진행했다면 지금에라도 작가님께 수정할 사항을 문의드려도 무관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1교가 끝나고 난 뒤에 작가님께 검토를 요청드리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는 특히 원고 검토 과정에서 생긴 문의 사항과 교정 과정에서 생긴 문의 사항을 취합하여 검토를 요청해야 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님이 한 번 검토를 했는데도 또다시 검토를 요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정을 보다 보니 원고 검토 때는 보지 못했던 추가 문의 사항이 많이 생겼다. 특히 문장이 어색하거나 표현을 매끄럽게 다듬어야 하는 부분은 작가님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체크한다. 그렇게 1교 반영이 완료된 교정지에 이런저런 문의 사항을 빼곡하게 적어 작가님께 조심스럽게 검토를 요청한다.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단순 줄글로만 된 글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문장의 흐름만 잘 살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간혹 편집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타가 나오더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읽고 이해하는 데 문제만 없으면 충분히 애교로 넘어가 줄 만하다.


그런데 비교적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비문학 도서나 교재의 경우는 다르다. 원고 검토나 교정 과정에서 누가 봐도 답이나 해설이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그냥 놓칠 수 없다. 그런 것들이 하나 둘 모이면 학습자의 시험 성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그와 관련된 전공지식이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면 수월하겠지만 대부분의 편집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온갖 수단을 활용해서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찾은 후 작가에게 검토를 요청한다. 가끔 아무리 검색을 하고 뚫어지게 쳐다봐도 모르겠을 땐 한숨을 가득 담아 그냥 이렇게 남긴다.


'작가님, 이 부분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찰떡 같이 만들어 주겠지만 개떡 같이 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편집자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오타, 오류 사항들을 잡아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친절한 작가는 자신이 쓴 글을 직접 교정까지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작가 1명에 편집자 2명이 붙게 되는 꼴이라서 글의 퀄리티는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원고를 제시간에 주지 않는 작가들이 지천에 널렸는데 교정까지 봐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래서 편집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함에도 작가들은 이를 개의치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어떤 작가는 편집자가 들으면 혀를 내두를 만한 말들을 자주 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어떻게든 책은 나오겠죠'라는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귀찮은 교정 작업은 건너뛰고 그냥 원고 그대로 편집디자이너에게 넘겨서 조판만 한 상태로 책을 낸다면 원고만 다 써도 곧바로 출간이 가능할 것이다. 대신 책의 퀄리티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교내 문학지 보다 못하다는 평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개떡 같이 써와도 찰떡 같이 만드는 게 편집자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편집자라도 작가의 생각을 100%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글을 쓰려거든 마감 기한 내에 쓰고, 수정 사항을 문의하면 빠르게 검토를 해주기 바란다. 그 두 가지만 해주면 나머지는 뼈를 갈든 영혼을 갈든 찰떡 같이 해줄 수 있다. 사정상 그게 정 어렵다면 하다 못해 '고생 많으십니다. 편집자님' 하고 한 마디라도 해주기 바란다. 내용도 모르고 똑같은 글을 몇 번씩이나 들여다보며 교정을 보는 편집자들을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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