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 편집디자이너 = ???

전문 출판인으로 불러야 하나...

by 데어릿

편집자와 편집디자이너는 분명 다른 영역이지만 그 둘은 컴퓨터로 따졌을 때 본체와 모니터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본체는 모든 업무를 혼자 처리하지만 그 처리한 결과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모니터는 모든 결과물을 보여주지만 그걸 수정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법을 모른다.


이론적으로 생각해보면 편집자가 일적으로 가장 많이 부딪혀야 하는 사람은 단연 작가다. 작가의 입장에서 워드로 쓴 자신의 원고가 책의 형태로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편집자와 연락하는 것이다. 원고를 교정하고 교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글이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작가들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물론 내가 겪은 바로는 그런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럼 실제로 편집자의 업무는 어떨까? 편집자는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전혀 새로운 느낌의 원고가 탄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편집자들은 작가의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 때문에 교정교열 단계에서는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만 손을 보고, 그 문장이나 단어가 눈을 거쳐 머리에 들어오기에 흐름상 이상하지는 않은 지만 신경을 쓴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자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내가 의도한 형태로 책이 잘 나왔냐는 것이다. 날것의 글을 책의 형태로 만들었을 때 폰트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지, 자간이나 행간은 적절하게 벌어져 있는지, 책을 펼쳤을 때 상하좌우 여백은 적당한지 등에 신경을 크게 쓴다. 원고를 쓴 작가가 따로 있는 만큼 책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내용을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편하게 읽을 수 있을지는 편집자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실무를 하다 보면 편집자는 작가보다는 편집디자이너와 더 많이 부딪힌다. 편집자가 생각했던 폰트와 행간이 있었는데 편집디자이너가 그대로 반영해주지 않으면 그 작업은 애초에 하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둘의 업무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한쪽의 생각을 다른 쪽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둘의 대화는 길어지고 작업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 편집자 vs 편집디자이너


편집자와 편집디자이너의 가장 큰 차이는 다루는 프로그램에 있다. 편집자는 워드, 한글, 아크로뱃과 같은 문서 프로그램을 주로 다룬다. 프로그램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편집자는 글자 자체를 가지고 노는 업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통상 원고와 교정지(LP)를 주로 다룬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편집자는 책 제본 형태로 만들어진 PDF 파일을 출력한 교정지를 들고 빨간색, 파란색 펜으로 교정 부호를 표시하고 단어와 문장의 흐름을 수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각 급(제목, 본문, 페이지 번호 등)에 맞는 폰트를 결정하고 그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고 폰트 크기는 어떤지 등을 결정하는 것들이 편집자의 영역이다.


이에 반해 편집디자이너는 인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과 같은 디자인 프로그램을 주로 다룬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편집디자이너는 편집자가 교정을 보기 위한 교정지를 만들어 낸다. 편집자가 정해준 판형, 폰트, 행간 등의 디자인 요소를 적용해서 워드나 한글로 쓴 원고를 실제 책과 동일한 형태로 작업을 하는 것이 편집디자이너의 주된 업무 영역이다. 여기에 더해 필요에 따라서는 본문에 그림을 넣거나, 내용에 따라 그래프, 도형 등을 넣어야 할 때도 있다. 이를 통틀어 보통 '컷'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어디에 어떤 컷이 들어가는지는 작가 또는 편집자가 결정할 몫이지만 그 컷을 직접 그리는 작업을 하는 것은 오롯이 편집디자이너의 몫이다.


편집디자이너가 디자인 요소를 직접 결정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작업을 진행할 경우에는 특정 부분에서 한계점이 찾아온다. 바로 책에 대한 이해의 정도이다.


편집자는 교정을 보기 위해서라도 싫든 좋든 원고의 내용을 읽어야 한다. 읽다 보면 이해를 하기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그 책의 분위기를 알게 된다. 그 분위기에 맞는 디자인 요소를 사용해야만 가독성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편집디자이너가 아닌 편집자가 디자인 요소를 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디자인 요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편집디자이너가 마치 초월 번역가 같은 능력을 발휘해 책 내용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디자인 요소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집디자이너가 아무리 공을 들여서 예쁘게 디자인을 하더라도 책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게만 보면 편집자와 편집디자이너는 견원지간처럼 서로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막상 실무를 하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 편집이라는 작업하에 두 작업자가 마주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오히려 간극이 있다기보다는 겹쳐 있으면서 꼬여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따라서 둘은 서로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편집디자이너로의 길


나의 본업은 편집자이다. 정확하게는 자격증 시험 교재를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편집자는 소설이나 에세이, 인문학 저서 등을 편집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금 와서 교재 편집을 배운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자격증 교재는 그 나름대로 여러 그래프나 학습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줄글로만 나열된 일반 단행본에 비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교재 편집을 먼저 배운 것이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보통은 한 명의 편집자가 한 권의 책을 담당하고, 그 편집자와 작업하는 한 명의 편집디자이너가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 편집자는 교정을 볼 시간이 필요하고 편집디자이너는 그 내용을 반영할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일정을 관리할 때에는 편집자와 편집디자이너가 작업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편집자로서 편집디자이너와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답답한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가장 빈번한 경우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편집디자이너가 반영을 마쳐 놓지 않는 경우이다. 마감일은 정해져 있고 나는 지금 당장 다음 교정을 봐야 하는데 아직 이전 내용이 반영이 되지 않았다면? 그 이후 작업은 당연히 멈출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가뜩이나 시간은 모자란데 편집디자이너가 교정 내용을 제대로 반영도 안 해줬다면? 더 이상 얘기했다간 화가 날 수도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자.


이게 내가 편집자로 일을 하면서 편집디자인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다. 내가 조판을 해서 교정을 보고, 그 내용을 또 내가 반영하면 적어도 다른 누군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내 편집디자이너의 소질을 회사 업무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우리 회사에는 편집디자이너가 따로 있고 그들이 있는 한 내가 굳이 나서서 시간을 써가며 작업을 할 필요는 없다.


대신 편집디자이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는 형이 정부 지원을 받아 울산에서 출판업을 하고 있었기에 그 형에게 부탁해 내가 직접 편집디자인을 맡겠다고 했다. 서점에 나오는 그런 책이 아니라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시나 행사를 위해 제작되는 책이었지만 편집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갈고닦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인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3권의 책을 작업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 편집자 + 편집디자이너 = 전문 출판인?


나는 우선 받은 원고를 인디자인으로 전체 조판을 진행한 후에 PDF 파일로 변환하여 태블릿으로 전체 교정을 진행했다. 원고의 내용을 복사해서 그대로 붙여 넣었으니 원고가 틀리지 않은 이상 조판이 잘못될 일은 없었다. 이 마저도 다른 편집디자이너가 작업했다면 어떻게 원고를 인디자인으로 옮겼는지 알 수 없으니 일일이 원고 대조를 하는 작업도 거쳐야 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웠던 점은 문제는 원고를 그대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교정을 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편집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편집디자이너가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조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문단과 문단 사이의 간격이나 본문과 대사 사이의 간격은 편집디자이너가 임의로 정하기 애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령 유능한 편집디자이너가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조판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원고에서 그만큼의 간격을 조절해 놓았던 게 아닌 이상 '원고를 임의로 변형하여 조판한 편집디자이너'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는 일이다. 대신 편집자는 그런 부분까지 다듬을 만큼 충분한 영향력이 있다. 어디까지나 가독성을 높인다는 전제하에 작가 본인 또는 편집자가 원하는 선에서 얼마든지 디테일한 부분을 추가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그냥 인디자인으로 조판을 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교정을 함께 진행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정지를 인디자인으로 보는 것과 PDF 또는 출력물로 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인디자인에서 작업을 하면서 '이 정도 간격을 띄우면 충분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PDF로 보니 간격이 너무 넓은 경우도 있고, 특정 디자인 요소들을 개별로 봤을 땐 괜찮았는데 다른 본문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쯤 되면 편집디자이너는 편집자가 정해주는 대로 작업만 해주는 조판 기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분명 편집디자이너가 편집자의 지시 사항을 반영해주는 건 맞지만 유능한 편집디자이너라면 편집자가 놓치는 부분까지 모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본문과 대사 사이에 1.5줄만큼 간격을 띄워달라는 편집자의 요청이 있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편집자가 모든 본문과 대사 사이에 '간격 높임' 표시를 하고 교정지를 편집디자이너에게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교정지를 받아 보니 표시가 안 된 부분이 있다면 편집디자이너는 인디자인으로 그런 부분을 쉽게 찾아내 통일성 있게 반영을 할 수 있다. 또 막상 1.5줄만큼 간격을 띄워놨지만 간격이 너무 넓다고 판단한 경우 편집자에게 간격을 조금 좁히는 것은 어떻겠냐며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편집자 겸 편집디자이너로 작업을 진행했기에 내 마음속에서 컨펌이 이루어진다면 이런 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이외에도 편집자와 편집디자이너를 겸하면 여러 모로 장점이 많지만 결국은 편집 업무와 디자인 업무를 완전히 겹침으로써 편집자와 편집디자이너 사이에 꼬여있는 매듭이 전혀 없다는 장점으로 수렴한다. 재밌는 점은 두 가지 업무를 한 사람이 함으로 인해 자괴감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편집자는 '내가 왜 이 부분 교정을 보지 않았지?'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편집디자이너는 '내가 왜 이 부분 반영을 하지 않았지?'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건 단순히 한 가지 업무에서 느끼는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다는 단계를 넘어선다. 워드와 아크로뱃, 인디자인과 클립스튜디오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출판과 관련된 실무에 있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여기에 작업 전에 필요한 기획력과 작업 후에 필요한 마케팅, 재고 관리 능력까지 겸비된다면?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1인 출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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