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
<지워진 버킷 리스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고 싶다는 소망은 나의 지워진 버킷 리스트였다.
그러니까 15,6년 전, 내가 50대 초반이었을 때 남편은 나에게 인터넷에 걷는 동호회가 있으니 그걸 가입해서 내게 같이 걷자고 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하던 내게,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이 것뿐인 것 같다며 궁여지책으로 권했던 것이다. 아들 두 놈은 거의 다 키워놓은 상태였지만, 집에는 5년 이상 와상으로 누워계시는 시어머님이 계셨기에 나는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간병하는 아주머니가 외출을 안 하시는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도보 동호회를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걷기를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주말이면 남편과 걸으며 접하는 자연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 회원 중의 누가 스페인에 있는 순례길을 갔다 왔고, 그 후에 또 누구누구가 갔다 왔다고들 하며 부러워들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 길이 있는 줄.
'아, 그런 곳이 있구나, 나도 열심히 걸으면 갈 수 있을까나....'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 당시 버킷 리스트가 유행하였는데, 나 역시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맨 위에 떡 하니 써 놓았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까미노 걷기'
아무튼 그 후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7년 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좀 자유로워진 듯했는데, 어느 날 팔과 등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차를 마시려다 가스 불이 옷에 붙어 일어난 일이었다. 넓적다리의 피부를 베어내어 팔과 등에 이식 수술을 해야 했다. 그 후 한 1년 간, 살이 쭈글쭈글해지지 말라고 탄력이 엄청 센 쫄쫄이 옷을 입고 살아야 했다.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땀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걷기 운동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된 것이다. 화상이 다 치료가 되어갈 무렵, 이번엔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발목이 부러졌다. 또 입원해서 발목에 철심을 9개나 박는 수술을 했다. 한동안 휠체어도 타고, 목발도 짚다가, 발목에 밴드를 하고 걷는 연습을 했다. 일 년 반을 그리 살다가 이제 좀 걸을 만하니 갑자기, 정말 갑자기, 두 다리가 올라가지 질 않는 거였다. 코끼리 다리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 이 다리로는 도저히 계단을 못 올라가겠는 거다.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녀봐도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떤 분이 신경과를 가보란다. 신경과에서는 여기저기 진찰해 보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며 추천서를 써주었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근위축증'이 의심된다고 쓰여있었다. 이는 루게릭 같은 병으로 근육이 점점 위축되다가 5-6년이면 하늘나라로 가는 병이었다. 기가 막혔다. 한 이틀을 멍하니 지냈나 보다. 병원 예약한 날까지 일주일 동안 많은 걸 정리했다. 옷과 신발을 정리해 보니 몇 박스가 나와 보낼 때 다 보내고, 그릇도 며느리 보고 쓸만한 것 있걸랑 다 가져가라고 했다. 책도 보낼 수 있는 것은 다 보내고 버리기도 숱하게 버렸다.
유서도 썼다. 아주 비장한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서 최후통첩을 받으면,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 다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혼자 가는 길, 식구들도 힘들 텐데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후에 갈만한 요양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병간을 나와 함께 10년 이상 한 남편에게 내 병간까지 하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내가 갈만한 요양원을 찾을 숙제만 남겨 놓은 것이다.
다리가 불편해지면서 기도하기를 75세까지 만이라도 살게 해달라고 했는데, 75세는커녕 60대 중반까지 밖에 못 살게 생겼다. 그것도 점점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가면서 말이다. 늘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노년이 될까 봐 불안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은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울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내가 받은 많은 것들을 헤아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해보고, 아들도 둘씩이나 낳아보았고, 한 놈 결혼도 시켜봤고, 남편 사랑도 받아 봤으니..... 이제 되었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해 봤으니 되었다. 이제 가도 억울할 것도, 슬플 것도 없다. 하는 마음이 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버킷 리스트고 뭐고 그런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