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9
<뒤늦은 깨달음>
6/13 목요일
르퓌에서 두 밤을 자고, 아침에 느긋하게 도리아송(Saint-Christophe Sur Doliason)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우린 도리아송에서 걷기 시작해서 생 프리바 달리에(St. Privat-d’Allier)까지 갈 예정이다. 25km의 거리를 14km로 자른 것이다.
도리아송 마을 중심에는 성당이 서있고, 성당 정문 앞에는 철탑형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계셨다. 돌로 지어진 단단해 보이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서늘한 공기로 가득 차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아치로 둘러싸인 제대 뒤에는 아름답게 조각된 초록색의 단이 있었다. 십자가는 제대 앞에 있는 아치 위에 걸려 있다. 나는 벽돌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아치의 둥근 선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주님, 저 왔어요......’ 이 말 안에 나의 두려움과 나의 바램이 다 들어 있었겠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내 맘을 다 보여드렸고 그 분께선 주의 깊게 내 얘기를 다 들으신 듯 하다.
자, 이제 등산화 끈을 매고, 스틱을 부여잡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이 길엔 현무암이 많아 돌담도 많고 돌집도 있다. 우린 꼭 제주도 같다며 웃으며 걸었다. 넓은 초원엔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생각날 정도로 넓은 밀밭과 야생화가 펼쳐졌다. 길을 가다보면 돌 십자가도 여기 저기 많이 세워져 있다. 물이 흐르는 미나리 깡엔 미나리 꽃도 피어있네. 중간 마을에서 쉬기도 하고 땡볕에 한 십 키로 이상을 걸었다. 땀도 나고 종아리도 딴딴해 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걷기 시작한 첫날인데, 비로소 나는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이렇게 매일 30일을 걷는 거야......'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발가락이 몹시 아파 신을 벗고 보니 오른 쪽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이런~~ 이런 일은 계획에도 없었는데.... 나와 한 몸인 두려움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 설 순 없다.'
'하는 데 까지 해보는 거야.'
'정 안되면 난 먼저 택시 타고 가서 기다리고, 언니야는 천천히 걸어 오라고 하던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놀러 왔으니 놀다 가는 거지.'
내 자신을 얼르고 달랬지만, 그래도 심각하게 보였으리라.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발도 아프고 하니 언니야가 택시를 불렀다. 만일에 대비해 우버 택시 웹까지 다운 받아 온 것이다. 언니야의 준비성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사이 벤츠 택시 도착!
무사히 생 프리바 달리에에 도착했다. 숙소는 아주 예쁜 집으로 그 날 손님이 우리까지 모두 8명이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혼자서 음식을 만들고 집을 관리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썼지만 2인실의 방은 아늑하고 창문으로는 볕이 쏟아 졌다. 저녁식사로는 여러 가지 야채가 들어간 카레 맛이 나는 수프를 한 사발 주고, 닭고기와 볶음밥을 푸짐하게 주었다. 디저트로는 사과를 갈은 것 같은 달달한 과일즙(?) 이었다. 나는 고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기름이 많지 않게 오븐에서 구운 닭은 맛있었다. 확실히 먹을 땐 아무 걱정이 없다. 더구나 땡볕에서 하루 종일 걷고 나서 먹는 따뜻한 수프와 가정식 음식은 먹는 데 몰두하게 한다. 배가 터질까봐 걱정이지, 다음엔 무엇을 주나 기대하게 된다. 문제는 여덟 명이 함께 밥을 먹는데 두 시간여를 얘기하며 먹는 거다.
출발 전에 나는 언니야에게 ‘난 영어 못한다. 나에게 영어를 기대하지는 말라. 난 언니야만 따라 다닐 거다.’라고 말했고, 언니야는 분명히 '알았다.'고 했다. 그랬건만 숙소에 들어가면서부터 언니야는 내게, 빨래 어디다 너는 지 물어 봐라. 와이파이 번호가 뭔지 가서 물어 봐라, 저녁밥은 몇 시에 먹는지 등등 다 내게 시켰다. 꼼짝없이 가서 물어봐야했다. 웬만하면 순명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구나 8명이 식사하는데 대화를 해야 하는 건 더 끔찍했다. 나는 사실 한국말도 잘 안하는 사람이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외국어도 잘한다. 나는 영문과를 나왔지만 영어를 못한다. 그리고 영문과 나온 지 40년이 넘었단 말이다!! 하지만 언니가 손가락으로 “자 대변인 말해 봐” 하면 그때부터 머리를 굴리며 ‘이 말이 영어로 뭐였더라’ 해가며 통역을 해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2 교과서라도 한 번 읽어보고 왔을 텐데. 다행히 다른 순례자들도 영어를 잘 못해서 우리는 몸짓과 표정으로 아주 재미나게 얘기를 했다. 함께 사진도 찍고, 주인 할아버지는 특별히 나와 사진을 찍겠다고 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 영어로 이리 많은 말을 해보기도 처음이다. 어차피 상대방도 잘 못했지만 그럭저럭 재미나게 얘기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웃고 떠들고 얘기하는 일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의미 있는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동참하며 즐거워하면 된다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못 먹는 포도주도 마셨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니 왜? 여긴 프랑스야!" 하며 자기네들이 너무 아쉬워하길래 할 수 없이 장단 맞추느라 한잔 마셨다.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9시가 되어 방으로 들어오니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알코올이 들어간 내 가슴은 쿵쿵 뛰어댔고 내 다리의 통증은 나를 망치로 두드리는 듯 했다. 나는 발가락을 소독하고 물집을 바늘로 뚫어 물을 짜내고 테이프로 감았다. 그리고 다리에 침을 놓고 뜸을 떴다. 침을 빼고 나면 다리를 주무르면서 근육통에 바르는 젤로 정성껏 마사지를 했다. 내 다리가 어찌나 소중한지, 이리 중한 줄도 처음으로 체험했다. 맛난 음식과 통증은 나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켰다. 아니, 두려움이 들어설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잠에도 밀려나, 어느 순간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