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8

by 꿈돌

<나, 순례자야.>

6/12 수요일

르퓌에서 산티아고까지는 약 1600km로 르퓌(Le Puy-en-Velay)는 프랑스 남부를 통해가는 GR65 순례길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순례자답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2세기에 지어졌다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달려갔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기 때문이다. 유월 중순임에도 아침은 쌀쌀했다. 얇은 패딩 잠바를 꺼내 입고, 스카프를 둘렀다. 감기에 걸리면 곧바로 천식으로 발병하는 내게 추위는 금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멋진 성당은 마을에서도 보였다. 그만큼 높이 있다는 얘기다. 숨을 헐떡이면서 올라가 미사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미사를 보고 있는데 눈앞에 하얀 뭔가가 폴폴 날아다녔다. 뭐지? 하며 손으로 휘휘 저었다. 눈감고 미사를 드리다가 눈을 뜨면 또 하얀 게 눈 앞에 날리고 있다. 나중에 보니 내 오리털 패딩 잠바에서 삐져나온 털이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엄청 분심이 들었다. 10년도 더 전에 등산 잠바 안에 입는 이너용으로 산 싸구려 패딩 잠바였다. 다들 순례 끝나고 입던 옷을 버리고 온다기에 오래된 옷을 갖고 왔는데, 좀 창피스러웠다. 눈을 질끈 감고 미사에 집중했다. 불어로 하는 미사인지라 뭔 뜻인지 몰랐지만, 전례는 다 기억하기에 우리말로 따라했다.

나는 주님께 인사했다. ‘주님, 저예요.’

성가를 허밍으로 따라 부르는데 주님이 웃어주시는 것 같다.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께서 순례자들을 제대 앞으로 불러세워, 각 나라 별로 축복을 해 주셨다. 가슴 속에서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내가 이 순례자 행렬에 낄 수 있다니! 곧이어 순례자 증명서인 ‘크리덴셜’을 사고, 맨 앞 빈 칸에 스탬프를 딱 찍으니, 이마에 무슨 표시라도 단 듯 왠지 뿌듯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노트르담 성당의 계단에서

노트르담 성당(로마네스크 양식의 주요기념물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고 엄숙하면서도 따뜻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제대 앞에서 다섯 걸음쯤 뒤로 나오면 신자들 앉는 의자 사이에 커다란 격자 무늬의 대문이 바닥에 놓여있다. 미사가 끝나면 이 대문이 바닥에서 열리는데, 그 밑으로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르퓌 마을 전경이 보이는 것이다. 이른 아침 햇살에 빛나는 주황색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어디론가로 공간 이동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 난 공간 이동을 했지.’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얼굴을 쓰다듬는다.

성당 맞은 편 산꼭대기 암벽 위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시는 엄청나게 커다란 성모님(16m)이 마을을 내려 보고 있다. 이 성모상은 크림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대포 213개를 녹여 만들었다니. 무게가 110톤에 달한다고 한다. 재료는 어찌되었든 간에 씩씩 거리며 올라가 보니 그 크기가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성모님 속으로 계단이 있어 올라가게도 되어 있었다. 다 올라가 보니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성모님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마을 전체가 보일 뿐이다. 마을 어디에 서 있어도 성모상이 보이니 마을이 평화로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

또 10세기에 바위 산위에 건축한 생 미셀 데길레 교회에도 가 보았다. 바위산에 지어진 작은 교회 안은 꼬불 꼬불 계단을 올라가며 아름답게 지어져 당시 사람들의 신앙심이 그대로 보여지는 듯 했다.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등산용품 파는 데가 있어 들어갔다. 얇지만 폭신한 잠바를 새로 하나 샀다. 긴팔 티셔츠도 하나 샀다. 솔직히 긴팔 티셔츠는 별로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언니야가 사라해서 샀다. 내 맘으로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 언니에게 모든 것을 (아니다, 웬만하면 거의 모든 것을) 순종하기로 내 맘 속으로 서약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누가 나같이 잘 아프고 성한 데 없는 사람을 이런 길에 데리고 가려 했겠는가 말이다. 그것도 모든 일정을 내게 다 맞춰주면서. 기왕 언니 여행에 따라 나선 것이니 언니의 모든 계획과 의도에 맞추겠다고 결심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