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0

by 꿈돌

<오늘을 살면 되는 거야.>

6/14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멀쩡하다. 그리 아프던 통증이 온데간데 없다. 다만 물집난 발가락만 잘 버텨주길 바랄 뿐.

생 프리바 달리에에서 쏘그(Sagues) 까지는 18km이다. 우리는 가는 데까지 가서 택시를 타던지, 아니면 다 가던지..... 이러면서 출발했다. 이정표를 따라 좁은 산길을 이리 저리 내려가는데 달팽이들이 많이 나와 있다. 민달팽이는 거의 10cm가량 되는 굵은 것도 있는데 색깔이 시커멓다. 어느 곳에서는 주황색 민달팽이도 보았다. 너무 징그러워 달팽이 요리는 이제 못 먹을 것 같다며 투덜대었지만, 스카이라인이 왼쪽에서 부터 오른쪽 저쪽까지 쭈욱 펼쳐진 푸른하늘과 초록의 초원은 너무 아름다워 노래가 절로 나왔다.

중간 도시인 모니스트롤 달리에에 도착하여 에펠 다리 앞에서는 기분이 좋아 막춤을 추며 다리를 건넜다. 우리가 너무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으니 춤이 나올 수 밖에. 사람도 없어 나는 스틱을 아래 위로 흔들며 춤을 추었고 언니야는 기막혀하며 웃어 주었다. 에펠 다리는 에펠 탑을 설계한 바로 그 사람이 설계한 다리라 에펠 다리라고 부른단다. 다리 건너 카페가 있는데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우리는 여세를 몰아 다음 마을에 가서 밥을 먹기로 하고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순례자가 거의 없어 우리는 나름 표지판을 잘 읽어가며 걸어야했다. 여기서 의지할 수 있는 건 표지판 밖에 없다. 계속 내리막길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우리는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잡초는 키가 커서 허리 위로 올라와 팔이며 다리며 마구 할퀴었다. 길은 점점 숲속으로 들어가며 없어져갔다. 한참을 가다보니 저 멀리 보이는 옆으로 철로가 놓여 있었다. 철로가 보이는 것을 보면 마을이 있지 않을까, 하며 계속 걸을 수밖에.

우리는 말 수도 적어져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계속 숲을 헤쳐 나갔다. 드디어! 큰 길이 나오고 그 큰 길을 따라 걸어오니..... 세상에나! 아까 보았던 그 에펠 다리가 눈앞에 딱~~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지랄65 맞네. (언니야의 남편께서 붙여주신 GR65의 별명이다.)

할 말을 잊었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산길만 20여 키로, 걸은 거리를 다 합치니 30여 키로가 다 되어 간다.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다리를 다시 건너가 카페 밖에 있는 의자에 반 눕다시피 퍼져앉았다. 3시가 넘어가니 점심시간도 훨씬 지난 것이다. 빵을 주문하고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진이 빠져 이제 더는 때려죽여도 못 걷겠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리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더듬어 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언니야는 우버 택시를 부르는데, 계속 기다리라더니 결국 지원을 못한다고 한단다. 배가 고파 웬만하면 맛있을 파니니는 또 왜 그리 맛이 없는지,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남겼다. 이 난관을 어찌해야하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때였다. 우리의 언니야갸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리고는 카페 주인장에게 슬픈 눈을 하고, 내 친구가 발이 아퍼 도저히 걷기가 힘드니, 제발 도와 달라고 했단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장은 “노 프라블럼”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나, 언니야는 밖으로 나와 처져있는 내게 걱정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십 분 후에 동네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딱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조그마한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우리는 부랴부랴 그 차를 타고 그날의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선 저녁을 엄청 풍성하게 잘 차려주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주방에서 나오는 맛나는 냄새가 우리의 노고를 보상하는 듯 하다. 태어나 한꺼번에 그리 많은 햄을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치즈도 내가 이제까지 평생 먹은 치즈보다 더 많이 먹은 듯. 커다란 냄비에 고구마를 쪄서 불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만 하게 작고 네모난 프라이팬을 하나씩 주면, 우린 앞에 놓인 여러가지 치즈 중 하나를 그 프라이팬에 올려 고구마 냄비 밑 불 위에 올려서 굽는다. 치즈가 녹으면 고구마나 빵 위에 얹어 먹는데,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여러 번 구워 먹었다. 햄도 맛났다. 모든 종류의 햄을 다 먹어 보았다. 하몽도 먹고...... 너무 배가 불러 우린 밖으로 나가 저녁 산책까지 좀 하고 들어왔다.

지친 몸이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다리와 발을 아로마로 맛사지 해주고 침과 뜸으로 달래주고는 침대에 누워 기도했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하! 많이 걸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걸까? 내일에 대한 걱정은 내일 해라. 미리 걱정해봐야 소용도 없다. 주어진 하루를 순간 순간 해내면 된다. 걱정은 그때가서 해도 된다.' 이런 교훈을 초장에 가르쳐주시려 했나 보다. 이런 생각을 언뜻 했지만 나는 내가 해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다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표지판을 잘 봐야겠다고만 다짐하며 기절하듯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