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2

by 꿈돌

< 거리두고 바라보기>


6/16 일요일

빌레흐에서 르 폭스(Les Faux) 까지는 21. 5 km다.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내리는데 하얀 꽃 노란 꽃 보라색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야말로 꽃길만 걸었다. 드넓은 초원인 푸른 목장에 소들도 있고,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에 넋을 잃고 걷는다.

푸른 초원을 수놓는 작은 꽃들을 보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다가 숲이 나오면 그늘에 앉아 납작복숭아도 먹고 사과 쥬스도 먹고 바나나도 먹었다. 무게가 꽤 나가는 과일을 메고 걷다가 길가에 앉거나 숲에 앉아 먹는 과일은 왜 그토록 귀하고 맛있는지. 우리는 항상 국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달게 먹었다.

나태주 시인의 노래가 절로 나온다.

걷다가 만난 르 호쉐 성당은 돌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성당으로 규모도 크지 않고 소박했지만, 돌 벽돌을 둘러 만든 둥근 천장과 제대 앞을 받치고 있는 아치형의 기둥은 단순해도 아름다웠다. 돌 벽돌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기도가 스며 들어서 일까. 정말 아름답고 경건한 분위기에 녹아든다. 저 돌 벽돌들은 이미 돌이 아니다. 많은 이들의 숨결과 눈물과 하소연과 기쁨으로 점철된 편지들이 쌓인 것이다. 촛불을 봉헌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특히 내가 떠날 때 기관지염을 앓았던 손녀딸, 하윤이(임마누엘라. 내 맘대로 세례명을 지었다. 이번 여행의 제목처럼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의미로)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손녀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도 어느 돌 벽돌 하나에 스며들어 저장될 것이고, 그 분은 잊지 않을 것이다.


숙소는 가정집을 개조한 지트여서 깔끔하고 여주인도 친절했다. 저녁 식사는 어릴 때 동독에서 살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는 늙다리 아저씨와 함께 셋이서 밥을 먹었다. 우리가 걷는 GR65는 프랑스 남부의 길이다 보니 영어를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불편함이 많은데, 이 분은 영어를 하는 분이여서 다행이었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33세 된 아들을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보냈단다. 마약을 해서 그런 일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슬펐단다. 아들이 힘들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돕지 못했다는 게 너무 괴로웠단다. 마약이라니! 얘기를 듣던 우리도 너무 놀랐고, 우리 역시 자식을 가진 에미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은퇴해서 산티아고만 7번째 나섰고, 로마에서 이스탄불로, 이스탄불에서 터키로 걸었단다. 다시 터키에서 이스라엘을 가려고 했는데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아 이 길을 걷기로 했다는 것이다. 걸을 때만이 아무 생각 없이 평화롭단다. 자기는 솔직히 아무리 예쁜 꽃을 보아도 느낌이 없단다. 왜 안그렇겠는가. 비슷한 나이의 모르는 남자와 밥을 먹는 일이 처음엔 몹시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어느새 눈물까지 글썽이며 얘기에 몰입했다.

나도 둘째 아들놈을 키울 때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너댓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늘 잘 아프던 아이였지만 잘 견뎌냈었는데, 그때는 열이 올라 거의 40도까지 올라갔다. 해열제를 먹이고 주사를 놓고 좌약까지 넣어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사흘 밤낮을 아이에게 매달려 숨을 쉬고 있나 들여다보며 머리에 찬 수건을 갈아 대었다. 사흘째 되는 밤, 열이 내리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나는 울면서 기도했다. '주님, 주님이 주셨으니 주님이 데려가신 들 어찌하겠습니까? ' 꺼이 꺼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거지. 그 절망감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울다 지쳐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기적처럼 아이의 열은 내려 있었고, 늘 아플까봐 조심스럽던 아이가 그 후부터 건강하게 자리잡으며 커갔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아이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그때부터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그러면서도 살아오며 그 사실을 얼마나 자주 잊어버렸는지...... 나중에 침대에 누워 생각하니 우리의 아들 딸들이 부족한 부모 밑에서 그저 건강하게 잘 살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한 축복인지 새삼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을 힘껏 사랑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두아들과, 언니야의 아들, 딸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내 발가락의 물집이 아픈 건 그리 큰 일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걸을 땐 발가락 아픈 것이 제일 큰일 같았단 말이지.

여행하면서, 내 삶을 거리 두고 객관적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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