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4

by 꿈돌

< 경험들>

6/18 화요일

페흐뤽스(Ferlux 13km)로 가는 길 위의 하늘은 색이며 구름 모양이 가히 명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녹색의 목초지 위로 펼쳐지는 높고 파란하늘과 흰 구름의 퍼포먼스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가끔 만나는 소들도 평화로운 자태로 엎드려 있고,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나지막한 돌담과 그 옆으로 난 붉은 길들은 한 폭의 풍경화다. 우린 그 풍경화 속을 걷고 있는 거다. 하지만 바람소리마저 없는 끝없는 길을 계속 걷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해서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사다리를 건너는 패트릭

그 때 갑자기 길을 막고 둘러쳐진 철조망을 만났고, 우린 철조망 위로 놓인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건너갈 수 있었다. 아마도 소들이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철조망 같다. 나는 뒤에서 영상을 찍느라 늦는 언니야를 보며 천천히 사다리에 올라 철조망을 건너갔다. 건넌 후에 언니야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랜만에 다른 순례자 두 사람이 사다리 쪽으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그들 역시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는 엄마와 아들이었는데, 엄마는 좀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아들은, 두려워하며 올라갈 엄두를 못내는 엄마가 혼자서 잘 해낼 수 있도록 격려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나는 그 엄마를 위해 다시 사다리로 올라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발 모양과 몸의 방향등을 설명하며 몸으로 보여주었다. 패트릭(그의 이름이다.)의 엄마는 그제사 조심조심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고, 뒤늦게 합류한 언니야와 나는 잘한다고 연신 외치며 격려했다. 패트릭의 엄마가 사다리를 다 넘고 나서 우린 만세를 부르고 호들갑을 떨며 환호했다.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가 호들갑을 떠는 일인데 그땐 진심으로 기뻤고, 칭찬 받는 패트릭의 엄마도 기뻤겠지만 칭찬하는 사람도 기쁜 일이었다. 길에선 별 것 아닌 작은 해프닝도 즐거운 일이 된다.

패트릭과 그의 엄마는 파리에서 왔단다. 패트릭은 유투버 크리에이터로 엄마를 모시고 천천히 이 길을 걸으며 촬영도 함께 하고 있었다.

걷는 도중에 만난 성당, 이제까지 외는 다르게 돌이 아니 예쁜 색으로 칠해진 성당이다.

숙소에선 더한 해프닝도 있었다. 저녁 식탁엔 열두 명의 순례자와 남녀 주인장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이곳의 저녁식사는 기본이 2시간이라 우린 항상 그 시간이 좀 부담스럽다. 대부분 프랑스어로 말들을 하기에 우린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열 두명이나 되면 통역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열심히 먹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앉았다. 두시간이 빨리 지나기기를......

다행히 옆에 앉은 여자가 이름이 루시라며 어디에서 왔냐고 영어로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너무나 반가워한다. 자기 옆을 가리키며, 얘는 자기딸 줄리엣인데, 자기 아들 루이는 대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단다. 우리가 '서울 오면 연락하라고 그래라' 했더니, 더 좋아 하면서 내 전화번호와 주소, 이메일까지 다 적었다.

(나중에 루시는 남편과 함께 아들을 만나러 서울에 왔고, 우린 재회하여 청계천을 걸었다. 그녀의 아들 루이는 두달 후에 우리집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귀가했다.)

루시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언니야와 우리 부부가 한옥마을에서 찍은 사진


코리아가 자꾸 대화에 오르내리니, 또 다른 한 아줌마가 자신의 쌍둥이 두 딸이 한국에서 입양한 딸이라고 했다. 37년 전에 한국에 가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원래는 한명만 입양하려했는데 쌍둥이라고 해서 둘 다 입양한 거란다. 너무 놀랍고, 반갑고, 감사했지만, 왠지 좀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 37살로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잘 살고 있단다. 약간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사람들은 진지하게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앗,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하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순간 회로가 멈췄다. 그때 언니야가 너무 반갑고 또 고마운일이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한잔씩 사겠다고 했다. 와우, 언니야, 짱!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로서는 너무 놀랍고 기뻤다. 갑자기 분위기가 업 되면서 모든 이에게 메르치와 땡큐 소리를 듣게 되고, 뜻하지 않게 많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갑자기 화제의 중심이 되면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는 나이가 어떻게 되며, 왜 그리 피부가 좋은지, 무슨 비법이 있냐며 (이들 눈에는 우리 피부가 굉장히 좋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신상을 탈탈 털리는 것은 물론이고, 별일 아닌 일에 웃고 떠들며 포도주를 마셨다.

엄청 내성적인 내게 이 여정은 많은 첫 경험을 선사한다. 살만큼 살아서 이제 웬만한 일은 다 경험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더 경험해 봐야 쓸데없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아닌것 같다. 누가봐도 나는 이미 엄청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일것 같다. 이젠 아무하고나 덥석 덥석 허그도 잘도 한다. "하이!"하고 인사할때 옥타브도 한옥타브는 족히 올라간듯 하다.

게다가 며칠째 나는 계속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여긴 프랑스라고! 프랑스에서는 포도주지!”하며 포도주를 안 먹겠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프랑스 사람들. 그들 덕분에 이 길이 끝날 때쯤이면 아마 나는 술꾼이 되어있을 지도 모르겠다. 방에 들어와 간신히 침뜸하고 그림 한 장 그리고 잤다. 아무래도 술을 줄여야할 듯하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엔 걸을 때 몸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