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5
< 개비하기 >
6/19 수요일
아침에 우리가 나스비날(Nasbinals 13km)로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루시와 그녀의 딸 줄리엣이 곧 뒤 쫓아 왔다. 모녀가 어찌나 잘 걷는지 보기가 좋다. 매년 휴가를 내어 걷나 본데, 이런 길이 가까이 있어 틈틈이 시간을 내어 걸을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오늘은 유난히 흰 꽃이 많은 것 같다. 푸른 들판과 흰꽃, 그리고 돌로 지은 성당은 언제 봐도 그림 같은 풍경이다. 가다보면 동네 어귀나 길가에 세워놓은 여러 종류의 십자가도 심심한 길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준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한적한 길에 십자가를 세워 놓았을까? 누가 무슨 염원을 담아 놓았던 것일까? 십자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뜨거운 심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나저나 내 발가락은 매일 드레싱을 하건만 5-6키로를 넘어가거나 경사를 만나면 아프다고 계속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얼른 깔개를 깔고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발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리곤 침을 놓기도 하지만 시간이 안되면 라밴다와 페퍼민트 오일을 바르고 오일이 마를 때 까지 두었다가 다시 통증에 바르는 스틱을 바른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면 또 그만큼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잘 걷는 언니야에 비해 발까지 아픈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하는 것 같아 이래저래 언니야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걷는 내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쌓으면 꽤 큰 십자가가 될 것 같다.
해가 살짝 구름 뒤로 들어가 날이 흐려도 들판은 여전히 아름답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들판과 함께 흐르는 베스 강위에 마흐샤스텔 다리가 무심한 듯 놓여있다.
드디어 목적지에 잘 도착해서 나스비날 동네 중앙의 성당 앞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진이나 영화에서 보던 노천 식사다. 식당 건물 안에서는 아예 손님을 안 받는다. 광장의 노천 카페라니. 이런 멋진 곳에서 우린 신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앉아 점심을 주문했다.
그때 아침에 만났던 루시와 줄리엣을 또 만났다. 우린 무슨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옆 테이블에 앉혔다. 그녀와 그녀의 딸은 내 발을 보더니 충고하나 해줘도 될까? 하고 물었다. 자기는 테라피스트고 딸은 간호사라며 신발을 두 사이즈 크게 신어야 하고 무얼 사서 어떻게 붙이라고 잘 설명해 주었다. 백프로 나을거라고 확신하며 말해주는 루시를 보며, 천사를 또 이렇게 보내주시는구나 싶었다.
처음 물집이 생겼을 때부터 언니야가 신발이 작은 거 아니냐고 했어도, 이게 큰 아들이 엄마 먼 길 간다고 사준 거라 내발이 잘 적응하겠거니 버텨왔는데 버틸 일이 아니었나 보다. 다행히 이 도시는 좀 큰 곳이었고 마침 숙소 가까이 규모 있는 슈퍼가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가 내 발보다 두 사이즈 큰 등산화를 일일이 다 신어보고 샀다. 언니야는 땀을 흘리면서도 내 발에 맞을 신발을 연신 가져다 날랐다. 르퓌에서는 긴팔 티와 얇은 패딩 잠바를 사고, 그리고 중간지점인 오몽 오블락에서는 매고 다니는 작은 배낭을 또 개비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부터 가져온 작은 배낭이 너무 가벼운 거에만 집중하다보니 매는 끈마저 너무 얇아 어깨를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곤 이제 등산화를 개비한 거다. 아, 또 언니야가 나의 얇은 바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여름바지도 개비했다.(내가 불편해 보였나 보다.) 남편 빼고는 다 개비한 것 같다. 제발 내 아픈 몸과 발가락도 다 개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