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21
< 울뜨레야, 전진1 >
6/25 화요일
에스페이락에서 꽁끄(Conques) 까지는 12키로라 하니, 다 걷기로 하고 출발했다. 이제사 이정표가 제대로 눈에 들어와 거의 틀리는 일 없이 잘 걷는다. 이제 발가락은 완전 적응했는데, 이번에는 왼쪽 발바닥이 못살게 한다. 물집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4-6키로를 넘어가면 불이 나듯 뜨거워지면서 어찌나 아픈지 걸을 수가 없다. 왼발만 양말을 두 켤레 신어 보았다. 효험이 좀 있는 것도 같다.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우린 후식으로 나오는 바게트와 치즈 덕분에 내 평생에 먹은 치즈보다도 더 많은 치즈를 먹었지만 문제는 어찌나 방귀가 많이 나오는지. 걸으면서 발자국을 띨 때마다 뀌기도 하고, 둘이 있는 방안에서는 그냥 막 뀐다. 심지어는 자면서도 뀐다. 근데 우리만 뀌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다. 걷다보면 앞에서도 뒤에서도 실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ㅋㅋ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 중의 또 다른 하나는, 겉치레를 하지 않게 된다는 거다. 그저 내 발밑만 보면 되니 남을 의식할 겨를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식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다. 더구나 이 길은 사람이 많지 않아 더 더욱 신경쓸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늘 보는 숲과 목초지라 감동이 처음 같지 않다. 햇빛이 쨍쨍 내리 쬐는 아스팔트를 걷자니 노동요가 필요한 듯해서 한 곡조 불렀다.
'낙양 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 몇 이뇨.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무덤 될 터인즉, 에라 만수~ 에라 세신이야'
아침부터 동네 묘지를 두 번이나 만났더니 나오는 노래 가락이다. 그래, 방귀를 좀 뀌면 어떻고, 안 뀌면 또 어떠하랴. 방귀 좀 뀐다는 영웅호걸도 절세가인도 지나고 나면 다 소용없는 것. 춤도 덩실 덩실 쳐본다. 동네 어귀나 성당 마당에 아름답게 산소를 마련하고 십자가와 꽃과 사진 등을 갖다 장식해놓은 묘지는 아름답지만 역시 슬프다. 그래도 이리 가까이 두고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안 그래도 할머니 한 분이 꽃을 놓고 어떤 산소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우릴 보고는 조용히 나가셨다. 나는 그 할머니가 나가신 한참 후에 길을 나서면서 무거워진 마음을 좀 가볍게 해보려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죽음은 어쩌면 여행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처럼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는 그런 것.
우린 들판과 숲을 지나 드디어 꽁끄(Conque)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콩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물이 가장 많은 동네라 한다. 고풍스런 돌집이 정말 아기자기하게 붙어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기념품 가게조차 옛스런 자그마한 집에 어찌나 섬세한 나무공예품이 진열되어 있는지, 21세기에 존재하는 집 같지가 않다. ‘옛날 옛날에....’하면 펼쳐지는 동화의 나라를 보고 있는 듯하다. 이곳엔 2백 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마을을 편리하게 고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살기로 결정했단다. 마을이 너무 아름다워 그 자체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 같다. 꽃이 피어있는 그 자체로 찬미가 되듯이.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포야 성당은 돌로 지어진 엄청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다. 날이 제법 더웠는데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례 신부님과 네 명의 수도자들이 그레고리안 성가로 미사를 봉헌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미사보다는 자꾸 성가에 몰입되었다. 아마도 불어를 못 알아 들으니 더 그런 거겠지. 하지만 그레고리안 성가로 드려지는 미사는 또 나름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었다. 마지막엔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합을 맞추어 성가를 하니, 몸과 정신이 붕 떠서 천정으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너 잘 하고 있다.’고 칭찬받는 기분이랄까? ㅋㅋ (순례를 하면서 아주 긍정적이 되어가는 내 자신을 본다.)
우리의 숙소는 중세의 수도원을 개조한 곳으로 방도 많고 묵는 사람도 많았다. 저녁 식사시간, 식당 안에는 70명이 넘는 사람이 식탁에 앉아 있었고, 곧이어 신부님이 나와 엄청 긴 인사말을 하셨다. 그리곤 기타를 치면서 순례자의 노래를 함께 부르도록 지휘도 했다. '오, 예. 순례자의 노래, 이 거 내가 아는 거다.' 안젤라 수녀님덕분에 입술이 부르트도록 부른 노래가 아니던가.
"울뜨레~이야 울뜨레에 이야, 에수스에이야~ 데우스 아 듀바노스." (전진, 전진, 신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네.)
신부님 다섯 분이 이 수도원겸 숙소와 성당을 운영하시는 듯 하다. 저녁 잘 먹고, 침놓고 뜸뜨고 바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