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22
< 배고픔은 슬픔이야 >
6/26 수요일
오늘 코스는 꽁끄에서 데까즈빌(Decazeville)까지 19키로 이다. 우리는 중간 지점까지 택시를 타고 가 9.5키로만 걷기로 했다. 꽁끄의 중심가는 좁기도 하고 택시가 들어올 수 없게 되어있어 우린 택시가 들어올 만한 큰 거리를 찾아 무작정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어떤 지뜨 앞에서 우리는 전에도 만났던 모자 (패트릭과 그의 엄마)를 만났다. 길에서 만난 사람을 또 만나면 왜 이리 반가운지. 우린 엄청 반가워하며 서로를 얼싸안고 난리 부르스 ㅋ 알고 보니 그들도 엄마의 깨진 핸드 펀을 고치기 위해 피작으로 가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이때다! 우버 택시는 잡기가 힘들고 동네 택시 운전사는 영어를 못하고... 이런 상황인지라 패트릭에게 우리 택시도 불러 달라 하였다. 패트릭은 흔쾌히 전화 통화를 해주었다. 결국 택시 운전사는 받을 요금을 다 받으면서 한 차에 우리를 다 태우고 출발 했다.
패트릭은 자신의 핸드 펀으로 네비게이션까지 켜서 운전사에게 보여주며 우리가 가기를 원하는 마을까지 인도해 주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길을 돌아가기 까지 한 것이다. 착한 패트릭! 엄마를 모시고 천천히 걸어가며 여행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패트릭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렇게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패트릭에게 우리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린 무게를 늘리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아니면 가져온 게 없어, 아무것도 줄게 없었다. 언니야 말대로 돈밖에 가진 게 없더라는.ㅋ 패트릭은 받지 않으려 할 게 뻔해서 르퓌에서 받은 팜프렛에 얼마간 돈을 넣었다. "여기 글과 사진이 너무 좋으니 꼭 읽어봐."하고 헤어질 때 선물이라며 주었다. 그리고 그의 인스타에 구독 신청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계속 받으면서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힘든 구간을 택시로 넘어왔기에 나머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 완만한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걸은 것 같다. 내 왼발은 4키로가 넘어가면 여지없이 불에 덴 듯 아파, 앉아 쉬어줘야 했다. 이제 다 와가나 하면 아직도 2키로 남았다하고, 이제 다 왔나 하면 1키로 반, 다시 1키로 반의 반 ㅋ 이런 식으로 길은 끝나지 않았다.
중간에 레스토랑이 있다해서 다른 과일이나 먹을 것을 챙기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있다는 레스토랑이 보이지 않아 점심도 굶고 걸어야 했다. 더구나 아침에 출발할 땐 항상 물병에 물을 채워야 하는데 나는 물 채우는 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언니야 물까지 바닥을 내고 말았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기운도 없이 마을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2시가 넘으니 시에스타로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말았다. 우린 물도 떨어지고 간식도 하나 없이 정말 아사직전이었다. 구글에 딱 한군데 영업 중이라고 되어 있는 곳이 있어 그 곳을 찾아갔다.
찾아간 곳은 레스토랑도 아니고 식료품점도 아닌 희안한 곳이다. 그나마 문을 닫으려는지 4명 정도의 아줌마 아저씨가 분주했다. 우리에겐 관심도 없다. 난 여기서 뭐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난 나도 모르게 안면 깔고 절규했다. "헬로우! 아임 베리 헝그리! 앤드 소 타이어드! 아이 원트 투 해브 섬씽 투 이트!" 하고 소리 쳤다. 그들은 영어를 거의 못했지만 처절한 나의 몸짓과 표정을 보았는지 아저씨 한 분이 갑자기 먹다 남은 커다란 주스 한 병과 1.25리터 물병을 가져다주었고, 한 아주머니는 자기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먹다 남은건지 작게 자른 소세지 빵과 비스켓 몇개를 주었다. 무조건 땡큐하며 앉아 주스와 물을 벌컥 벌컥 들이마셨다.
정신을 좀 차려보니 무엇을 하는 곳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이들은 돈을 내려는 우리에게 두 손을 내저으며 어떤 남자사진만 계속 가리키며 뭐라 뭐라 한다. 그러면서 밖에 있는 많은 푸어 맨들을 도와주라는 거다. 아무튼 고맙다하고는 차들이 지나가는 사거리에 벤치 하나가 있어 양말까지 벗고 퍼질러 앉았다. 4시에나 문을 여는 숙소를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고 가는 차들이 우릴 하릴없이 쳐다보았다. 영락없는 걸인이 되어 벤치에 앉아 얻은 물과 주스까지 다 먹어 치웠다. 빈 병들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쳐 앉아 있는데, 웬지 모를 슬픔이 아련히 밀려왔다.
'배가 고프다는 게 이런거구나.....'
나중에 찾아보니 그곳은 빈민구호소였다. 우린 완벽한 걸인이 되어 완벽한 장소를 찾아갔던 거다.
걸인과 걸인 아닌 것과의 차이는 참으로 종이 한장 차이다. 하지만 곧 먹을 수 있는데 배가 고프다는 것과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프다는 것의 차이는 차원이 달랐다.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좋은 체험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저씨가 가리키던 사진의 주인공은 그 구호소를 세운 분이셨던 거다.
헛웃음을 웃어대며, 우린 숙소로 들어섰다.
숙소는 꽃들이 피어있는 마당이 꽤 큰 단독 주택으로, 숙소주인인 남자는 나의 남편 젊었을 때 마냥, 잘 생기고 훤칠하며 과묵해보이는 아주 멋진 남자였다. (완전 내 취향이다.) 투 비 콘티뉴드 ......
(영어를 매일 하다보니 이제 영어가 저절로 나온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