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23
< 여자의 마음 >
6/27 목요일 (Rocamadour)
사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숙소 주인인 이 남정네는 혼자서 숙소를 관리했다. 키도 알맞게 크고 몸집도 날씬하지만, 힘센 팔로 우리의 10키로짜리 배낭을 한 팔에 하나씩 들고 성큼 성큼 걸으며 옮겨주었다. 우리가 잘 방을 보여주는데 깔끔하고 예쁘다. 우리가 만족해하며 기뻐하니, “디스 이즈 포 유.” 한다. 아이고, 이뻐라. 길게 죽죽 뻗은 두 다리로 계단을 두 세 개씩 오르내리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테이블 세팅도 나름 잘 꾸며 놓았다. 음식도 꽤 잘 요리해서 시간 맞춰 내왔다. 혼자서 말이지. 게다가 영어도 잘 할 줄 알았다. 크리덴샬을 찍어주고 숙소비용을 계산하면서, 다음 날 아침에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니 버스 정류장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스스럼없이 자기가 기차역까지 태워주겠단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무조건 땡큐!! 비용을 지불하겠다하니 멋진 목소리로 “마이 프레져” 하는 거다. 오 예~~그 순간 그는 오빠야가 되어버렸다.ㅋㅋ
저녁의 메인 요리로는 닭고기 조림과 감자 찜이 나왔는데 간도 잘 맞고 굴 소스가 들어갔는지 아주 맛있어서 로즈와인도 한잔 걸쳤다. 그는 테이블에 열 명이 넘는 손님들을 앉혀 놓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불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기다란 손가락을 흔들어가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체 손님들의 질문에도 아주 상세히 설명을 하는 듯 했다. 나는 알코올이 들어가니 눈이 살살 감기는데 프랑스 인간들은 웬 수다를 그리 떠는 지 식사 후 한 시간이 넘어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 거다. 그중에서도 오빠야가 젤로 길게 말을 하는데 불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당최 뮌 소린지도 모르겠고 에고~ 졸려라. 오빠야가 말이 너무 많아 틀렸다. 안 그러면 멋진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
자기 전에 졸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언니야가 “공짜로 차를 태워준다니 그림이라도 한 장 주던지..” 한다. 이것이 졸음과의 사투로 그린 건데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내 마음은 이미 돌아섰다. “됐어요. 마이 플레져래잖아요.”하며 하품을 해대었다. 순명하겠다 해놓고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게야. 아니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 이제 다른 소리가 안 들리는 거다.
담날 아침 그 젊은 애는(?) 벌써 아침 식탁을 정갈하게 차려놓고는 자기가 일을 마쳐야하니 우리에게 9시에 나가자고 기다리라고 한다. 오케이! 일상을 열심히 사는 젊은 청년(!)이 참 훌륭해 보였다. 우리의 언니야는 기다리면서 정원의 나무들에게 호수로 물을 주고, 나는 정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기다란 호수가 꼬일 때면 일어나 이리 저리 풀어주었다. 젊은이는 아침에도 두 팔로 배낭을 하나씩 들고나가 벤츠로 우릴 태워다 주었다. 이 젊은이가 아니었으면 우린 배낭을 앞뒤로 메고 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야할 판인데 이리 차를 태워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그림을 한 장 줄 걸 그랬나?’ 사람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왔다 갔다 한다. 우리를 태워주는 그 마음 씀씀이와 일상을 꿋꿋이 살아가는 그를 보며 우리는 엄마야의 마음이 되어 이쁘다는 소리를 연발 하였다. 산사태로 인해 기차가 안 오고 버스가 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가 놀라서 버스를 타고 중간 역에서 기차로 갈아탔다.
호까마두르(Rocamadour)역에 내리니 정말 개미새끼도 한 마리 없다! 자그마한 호텔이 역 건너편에 있어 가보니 문도 잠겨있고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린다. 우린 앞뒤로 멘 배낭 위에 우비를 뒤집어쓰고 영업 중이라는 뷔페 레스토랑을 찾아 걸어갔다. 호텔 여주인은 잘 못하는 영어지만 사이드 요리는 뷔페로 직접 갖다먹고 메인으로는 소 혀 요리라며 자기 혓바닥을 길게 빼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소 혀 요리라니! 약간 자신 없었지만 일단 오케이! 그런데 막상 나온 요리는 우리 입엔 전혀 맞지 않았다. 언니야가 못 먹으니 나는 아예 입을 안 데는 게 상책일 듯. 대충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불러 달라하여 호까마두르의 숙소로 왔다.
여긴 규모는 작아도 완전 호텔이다. 호텔!! 두껍고 하얀 수건이 큰 거, 작은 거 뽀송뽀송하게 두 장씩 나오는데 말이다. 여장을 풀고 시간이 여유가 있어 입은 옷에 잠이 들었다. 낮잠을 두 시간은 잔 것 같다. 낮잠을 즐긴 우린 어슬렁어슬렁 나가 눈이 번쩍 뜨이는 호까마두르의 전설을 만났다.
호까마두르는 이름도 생김새도 신기한 얘기 투성이다. 호까(Roc)는 바위란 뜻이고, 마두르는 이곳에서 수행하던 수도자 아마두르(St. Amadour)의 이름을 딴 합성어라고 한다. 이곳에서 은둔하며 수행하던 아마두르는 시체가 썩지 않은 체 1166년 노트르담 성당 출입 문 벽에서 발견되었단다. 소문을 듣고 순례자들이 찾아들었고, 스페인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순례자라면 반드시 들러야하는 성지가 되었단다. 사람들은 성인의 유해를 보고 소원을 빌거나 병이 낫는 기적을 얻기 위해 온몸을 쇠사슬로 묶고 성당으로 향하는 216개의 ‘순례자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랐다고 한다. 암벽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벽으로 삼아 건물을 지어 마치 성당이 절벽에 박혀 있는 모습이다. 절벽의 중간에 성 미카엘 성당, 노트르담 성당, 성 소베흐 성당과 크고 작은 경당이 7개가 모여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어메이징~~ 기가 막힌 장관에 할 말을 잊었다.
돌계단을 수도 없이 올라가 돌 벽을 깎아 만든 노트르담 성당에 모셔진 검은 성모상 앞에서 기도드리며 초를 봉헌 했다. 이곳의 검은 성모상은 프랑스 앙주 지방 백작이었던 영국 왕 헨리가 검은 성모상에 기도한 후 병이 나았단다. 그 후 순례자의 발길이 더 잦아졌단다. 우린 저녁에도 올라가보고, 담날 아침에도 올라가 미사를 드렸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성당 안에서 청소년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몸을 떨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곧 선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가서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청소년들도 성당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모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다. 여러 명의 선생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성당을 보여주고 있었고, 기도하겠다는 아이에겐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잘 볼 수 없는 광경이라 마음에 새겨졌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미카엘 대천사에게 받았다는 기사 롤랑의 칼이 그 절벽에 꽂혀 있다는데, 그걸 못보고 온 게 좀 아쉬웠다.
저녁으로 우린 태국의 컵라면에 우리의 라면 스프를 넣어 컵라면을 먹었다. 익숙한 수프 국물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리고 빵과 과일로 저녁을 때웠다. 여긴 아홉시가 넘어도 날이 훤하다. 비가 오려는지 습하고 더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