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35
< 산 페르민 축제 >
7/9 화요일
오늘은 팜플로나 (Pamplona )로 들어간다. 원래는 18키로를 걸어야하는데,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두 정거장 앞에 내려 한 5키로 정도만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버스는 급행으로 바로 팜플로나까지 간단다. 우린 할 수없이 바로 팜플로나로 갔다. 9시 30분경에 버스에서 내리니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흰옷에 빨간 스카프나 빨간 모자 또는 빨간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산페르민(San Fermin) 축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 오전이었지만 사람들은 다 흰옷에 빨간 띠를 두르고 있었고, 버스 대합실엔 그냥 바닥에 널부러져 자는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성도 있었다. 어떤 젊은 남자는 부러진 발에 깁스를 한 체 목발을 짚고 부축을 받으면서도 흰 옷에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대성당을 찾아가는데 온 거리마다 지린내가 등청을 했다. 정말 숨을 쉬고 싶지 않다. 축제도 좋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술을 마시며 노는 축제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마시고는 그냥 노상방뇨를 하는 모양이다. 간이 화장실도 많이 준비해 놓았지만 역부족인가 보다. 우린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성당을 찾아 나섰다.
대성당의 뒷마당은 아주 넓고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한적했다. 뒤로는 성벽도 보이고 나무도 많아 공기도 좋다. 성당은 겉에서 볼 때는 별로 커 보이지 않았는데 들어가 보니 엄청 큰 성당이었다. 커다란 아치를 이루는 굵은 기둥이 성당안의 공간을 삼등분 하고, 제대 앞과 뒤로도 각각의 성인들을 위한 제대가 따로 있고, 성체거양을 하는 제대도 따로 있었다. 아주 큰 멋진 파이프 오르간도 있다.
실컷 구경하고 기도 하고 나와 성당 뒤뜰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점심도시락으로 싸온 또르띠아를 사과와 천도복숭아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다시 중심가로 내려오면서 보니 커다란 소방차가 몇 대씩 와서 굵은 호수로 거리를 씻어내고 있었다. 씻겨 진 거리는 확실히 냄새가 많이 걷혔고 오후부터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자기 동네(?)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하면, 그 뒤를 군악대가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 댄다.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면서 춤을 추고 즐거워한다. 음악에 맞춰 옛날 옷을 입은 커다란 인형 넷이 빙글 빙글 돌며 행진하는 뒤를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골목에선 한 가게에서, 오는 이 가는 이에게 맥주를 주기도 한다. 우리가 지나가는 어떤 곳에선 아예 테이블을 붙여놓고 노인네들에게 볶은 밥을 주기도 했다.
‘뭔가?’, 하고 쳐다보고 있던 내게 볶은 밥 한 컵을 퍼 주길 레, 그 옆에 고추도 달라고 해서 숙소로 갖고 와 고추장 넣고 저녁밥으로 먹었다. (언니야는 두 컵 받아왔더라는.)
흰 옷에 빨간 스카프는 멋지고 눈에 잘 띈다. 빨간 스카프는 사실 성 페르민의 죽음을 의미한다는데, 종교적인 의미에서 시작한 축제가 현재는 종교, 문화, 오락을 결합한 독특한 이벤트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소몰이 같은 스릴 넘치는 이벤트는 위험한 요소도 많아 찬반 의견도 뜨거운 모양이다.
밝고 즐거운 수천 수만의 스페인 사람들. 축제로 인한 즐거움. 풍악을 울리며 행진을 하고 그 뒤를 따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과 댓병짜리 술을 병째로 들고 마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보며 내 맘 속엔 두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하나는 너무 좋다. 발랄하고 활기차고, 경직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그 표정들도 너무 좋았다. 반면에 도가 지나친 즐거움은 좀....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내게 지나침은 두려움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붉은 X가 켜졌다. '그냥 즐기라고 해. 넌 어차피 여행자잖아. 너도 그냥 즐겨.'
그래. 균형을 맞추며 노는 일은 그들의 몫이고, 나는 지나는 객일뿐. 깔아준 판을 내나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말을 탄 경찰관도 멋졌다. 여자 경찰관도 있었는데, 사진 찍어 달라 하면 포즈를 잡아주기도 했다. 지역합창단이 한쪽에선 공연을 해서 거리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헤밍웨이가 왔었다는 이루다 카페엔 사람들이 너무 몰려 우린 갈 엄두도 못 냈다. 축제는 축제다.
내 슬리퍼나 사러, 아까 지나가다 본 자라 매장으로 갔다. 마침 세일을 한단다. 거기서 마땅한 샌들을 하나 만원주고 샀다. 득템이다. 2시가 되니 시에스타 시간이라고 다 나가라고 쫒아내다 시피 한다.
우리도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왔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걸은 거리가 9키로 정도 나왔다. 샤워하고 하얀 시트에 몸을 누이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하얀 옷보다는 하얀 이불이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