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34

by 꿈돌

< 참말로 가지 가지 >

7/8 월요일

오늘도 아침 일찍 출발한다. 쥬발리(Zubiri)까지는 22키로 미터. 너무 길면 14키로 지점에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문제는 거기까지 11시 28분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못타면 22키로를 다 걸어야한다.

7시 30분에 출발. 1시간에 4키로로 걸으면 4시간 동안 얼추 걷겠지만 산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또 어제도 나로선 하얗게 불 태웠기 때문에 남은 여력도 별로 없었다. 난 속으로 ‘택시라도 타야지,’ 했지만 택시도 상황이 어찌될지 모르는 터라 우짜든동 빨리 걸어야 했다.

언니야는 벌써 날아가는 폼이, 무슨 일이 있어도 완주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모든 일은 또 그분께 맡기고 일단 출발!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헉 헉'

어제 미사의 여운인지 처음 걸을 땐 성가를 부르며 따라갔다. 언니야는 훨훨 날아가다가 죽자사자 쫒아오는 나를 기다린다. 두 팔을 벌리고 스틱을 딛고선 폼이 멀리서 보니 완전 피터 팬 같다.

숨차게 걷다보니 미사의 여운은 사라지고 박자에 맞춰 잘 걸을 수 있는 노래로 바뀐다. 어두운 숲속을 혼자 걸을 땐 '정글 속을 건너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박자에 맞춰 스틱을 놀린다. 에고 손주들 생각도 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선 '악어 떼가 나올라 악..어 ..떼' 헉 헉 소리를 마치 악어 떼에 잡혀 먹기라도 하듯이 추임새로 넣으며 걷는다. 네 시간 넘어 산길을 쫒아 가다보니 이젠 기력이 다 한 듯하다. 앞에 언니야가 보이거나 말거나 내 페이스로 걷는다. '산..넘고..물..건너..바다 헉...건너서..뗏목...타고..가다가...헉 뒤집어... 져서.. 헉 모타... 보트..헉...타고...헉.... 가는.. 데.. 헉.. 모타..보트..헉헉 ..기름.헉.. 떨어져...서... 헉... 기냥...헉 헤엄쳐..헉... 셔,.. 셨셔러...헉헉... 셨셔셔... 헉헉헉'

기름만 떨어진 게 아니라 멘탈도 나갈 지경이다.


그때 언니야가 멀리서 손을 흔든다. 한참 만에 다가가니 쉬어가자고 한다. 복음이 따로 없다. 얼른 깔개를 깔고 주저앉았다. 자두 두개와 천도복숭아 두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바나나도 먹고. 발도 시원하게 하고 약도 다시 바르고 나니, 언니야가 말했다. 지금 출발해선 어차피 버스를 타기엔 늦었단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가 택시를 부르던지 아니면 다 걸어야 한다는 거다. 너무 힘들었지만 어쩌랴. 되는 대로 해야지.


마을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순례자 사무실이 보인다. 문짝에 보니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는데 20분 후에 우리 목적지인 쥬빌리로 가는 버스가 들어온다고 쓰여 있었다!!

땡큐 갓~~ 땡큐 소 마치.

와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쥬빌리로 들어왔다.

이번 숙소는 밥을 안주고 주방을 제공했다. 언니야는 슈퍼로 가서 감자 세알과 양파 하나 삼겹살을 좀 샀다. 냄비에 손질해서 넣고는 라면 스틱 두개와 고추 가루를 넣고 푹 끓였다. 소금 간을 해서 먹으니 오 마이 갓~~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사실 나는 돼지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특히 물속에 잠긴 돼지고기는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이었단 말이다. 이젠 그런게 어디 있나? 한 사발은 그냥 먹고, 또 한 사발은 컵라면의 국수를 넣어 두 사발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이곳 스페인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정말 많았다. 싱싱한 젊은 기운이 밝고 활기차다. 이 주방에서 저녁에 한국 젊은이들이 모이기로 했단다. 그때 어제 만난 신학생 한 분도 나타났다. 또 다른 한분은 어디있냐 하니, 다리가 아파서 하루 더 쉬고 쫓아 온다고 했다는 거다. 언니야는 벌써 찌개를 뎁혀서 밥과 함께 먹으라고 들이민다. 신학생은 엄청 맛있게 밥을 먹고, 언니야는 그당새 또 다리에 붙일 수 있는 T침과 파스, Vt.C, 유산균등등을 챙겨 한봉지 신학생 옆에 가져다 놓는다.


저녁나절엔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앞뒤로 침뜸을 놓아주었다. 보약이 따로 없다. 뜸을 뜨면 몸이 유연해지고 피로가 확실히 많이 풀린다. 뜸을 뜨느라 창문을 열어 놓았더니 파리가 한 열 댓 마리는 들어온 것 같다. 언니야는 인터넷이 되는 아래층 홀에 내려갔고, 나는 방의 창문을 닫고 파리를 잡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뒤집어 들고 한 열 마리는 잡았나보다. 다 잡았나 하고 보니 한 다섯 마리가 경사진 천정에 붙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거다. 천정이 너무 높아 때려잡을 수가 없어 이것들이 좀 내려오라고 슬리퍼를 냅다 던졌다. 파리들은 꼼짝 않고 슬리퍼만 앗! 붙박이 장롱 위로 올라가 버렸다. 장롱은 너무 높아 올라 갈 수도 없다. 슬리퍼가 없으면 숙소에서 굉장히 불편한 데 이를 어쩐 담. 언니야에게 얘길 했더니 나머지 한 짝도 같이 올려놓으란다. 나중에 누군가가 찾게 되면 한 켤레라야 신을 수 있다고. 나는 언니 말대로 나머지도 장롱 위로 던져 버렸다. 참말로 가지가지 한다.

내일은 팜플로냐로 간다. 우리의 여정이 일단락 끝이 나는 것이다. 언니야가 진짜 고생이 많았다. 진심으로 가슴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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