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33
< 뜻밖의 만남 >
7/7 일요일
눈을 뜨니 여섯시가 아직 안되었다. 조용히 누워있자니 일찍 일어난 사람들이 오락가락 한다. 나도 일어나 다시는 안 올라올 준비를 다하고는 기어내려 갔다.
아침 해가 황금빛으로 떠오른다.
기온은 쌀쌀하다. 짐을 싸고 아침을 든든히 먹고 바로 출발하니 7시 30분. 오늘은 론세발레스(Roncesvalles )까지 20키로를 걷는다는데 이곳 오리손이 해발 770미터. 해발 1400미터까지 피레네 산맥을 올라갔다가 론세발레스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오전에 시원하고 컨디션 괜찮을 때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날이 시원하니 걷기가 좋다. 커다란 엄마 젖 무덤같은, 푸른 초원으로 덮인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사이를 얼굴만 까만 양떼들이 점점이 박혀 있기도 하고, 하얀 젖소들이 목에 단 방울을 댕강거리며 풀을 뜯어 먹기도 한다. 한참을 걷다보면 말들이 모여 있기도. 정적인 풍경에 이런 짐승들은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언니야는 멋진 광경에 홀려서 사진 찍고 영상 찍느라 저만치 뒤떨어져온다. 간만에 앞서 걷는데 늙수그레한 외국남정네가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건넨다. 한국이라니까 “오우 꼬레아!” 하며 반가워한다. 까미노는 처음이냐길래 그렇다하니 자기는 셀 수도 없이 왔단다. 프랑스 사냐고 물으니 이태리 밀라노에 산다고 한다. 굽이굽이 계속되는 오르막에 숨이 차서 말을 많이 안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인사하고 어디서 왔냐 하고는 먼저 가던지 뒤에 오던지 하는데, 이 남자는 계속 같은 페이스로 따라오며 말을 붙였다. 나는 낯선 남자가 말을 붙여 오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 문화가 아닌 곳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프란체스코다. 넌 이름이 뭐냐?” 하고 묻는데, 내 마음 속에서 ‘그게 왜 궁금하냐?’ 이런 소리가 들렸다. 할 수없이 속도를 냈더니 헉헉 거리며 따라온다. 그러더니 나를 세울 양으로 2키로만 더 가면 푸드 트럭이 있다는 거다. “그래? 그럼 빨리 가자!” 하니 그제서야 먼저 가란다.
피레네 산맥은 높아도 길이 사선으로 나있고 길이 넓고 좋아 앞서서 푸드 트럭을 향해 돌진했다. 하얀 푸드 트럭에서 산 따뜻한 티 한잔은 온몸을 훌륭하게 감싸준다. 홀짝거리며 있자니 이태리 남자가 왔고 곧이어 언니야가 왔다. 나는 “내 친구 초이야. 크리스쳔 네임은 안젤라고, 그녀의 남편 이름도 프란체스코지.”라고 얘기해주었다. 언니야는 “만나서 반가워.” 하더니 무관심한 표정으로 커피만 마신다. 난 얌전히 언니야 옆에 앉아 차만 홀짝 거렸다. 머쓱해졌는지 이태리 남자는 지나가던 어떤 여자를 보며 “모니카! 왜 커피를 안마시냐?” 며 끌어당기고, 스웨덴에서 왔다는 여자에겐, “카탈리나야, 넌 이정도 추위는 따뜻한 거지?”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먼저 가겠다고 하고는 일어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도, 무심할 필요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무뚝뚝하게 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말랑 말랑해 지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
언니야와 나는 다시 열심히 걸어 올라갔고, 다시 내려갈 지점에서 오리손 산장에서 준 점심밥 또르띠야를 먹었다. 또르티야는 맛이 없었다.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다 못 먹고 속만 발라 먹었다.
드디어 끝없이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산길 어딘 가에서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바뀌는 국경도 넘었다. 진창도 많고 돌도 많아 가뜩이나 내려가는 일이 힘든 나로서는 더 힘들었다. 발바닥도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거의 다와 가는데 언니야가 “여기 발 담글까?” 한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냉큼 깔개를 꺼내 앉아 발을 담그니 어찌나 차가운지! 발이 시려울 지경이다.
우리의 숙소는 옛날 수도원을 완전 리노베이션한 숙소로 9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예전엔 3층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서서 200명을 수용했다 한다. 오늘은 다행히 깨끗한 이층 침대의 아래층에서 자고, 뜨거운 샤워도 맘껏 할 수 있었다.
오후 6시에 들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주일미사를 보러 성당으로 달려갔다. 웅장한 오르간 소리와 남성 3중창단의 성가와 본당신부님의 멋진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가 마음을 울렸다. 봉헌식을 하는데 아는 성가가 울려 퍼진다. 우린 그냥 한국말로 불렀다.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 양을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
오소서 오주여 찾아오소서.
'내가 함께 한다'는 주님의 말씀 같아서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았다.
저녁식사 시간. 우리는 숙소에서 정해준 레스토랑으로 갔다. 네 명씩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한국의 젊은이 두 명이 왔다. 한국말하는 코리언 말이다. 어찌나 좋고 반갑던지!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말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대구교구의 신학생이란다. 4학년 끝나면 해야 하는 과제 중에 산티아고 행이 있어 과제를 하기 위해 여기로 왔단다. 정말 멋진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린 즐겁게 얘기하고 헤어졌다.
잠자리로 돌아오는데 언니야 하고 눈이 마주쳤다. 우린 서로의 마음을 말 안하고도 알 수 있었다. 젊은 신학생이라니 얼마나 배고프겠는가. 배고픈 거 그거 내가 해봐서 안다. 우린 엄마야의 마음이 되어 우리 아들들보다도 어린 그들을 위해 또다시 봉투를 찾아 얼마간의 노잣돈을 넣었다. 문제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물러설 우리가 아니지. 우린 문 앞에서부터 두줄로 놓인 침대 네개를 아래 위로 훑으며 그 건물 전체를 다 뒤졌다. 마침내 그들을 만났다. 깜짝놀라며 두손을 내젓는 그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난 정말 기도가 필요한 나약하고 두려움이 많은 형이하학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