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움직이는 두 가지 힘, 국민과 검찰
우리 공동체의 정상에 있는 건 정치다. 그만큼 우리 공동체에 가장 크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정치다. 그런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하나는 국민, 다른 하나는 검찰(檢察)이다. 원래는 군(軍)까지 세 가지였는데, 군은 봉인된 상태다. 공동체의 전체이자 그 자체인 국민이 공동체의 정상을 결정하고 교체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한 당위다. 한편 우리는 과거에 군이 힘으로 그 정상을 찬탈했던 사실을 알고 있고, 적어도 당시엔 그것이 가능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처럼.
그런데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늘 접하면서도 왠지 익숙지가 않다. 뭔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 느낌이다. 군은 혁명이라고 주장할지언정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검찰은 정치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을 뿐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단호하게 말한다. 또한 정치도 검찰의 독립을 훼손하는 시도 따위는 용납될 수도 없다고 역시 확신에 찬 어조로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익숙지 않아 하는 거고, 긴가민가 하는 거다. 물론 집권한 세력에 한정된 얘기다. 여야가 바뀌면 입장도, 공수도 당연히 바뀌는 것이다. 아무튼 군과 검찰 사이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계엄령에 따라 국회에 진입한 부대는 특수부대들의 특수부대였다. 국가급 대테러, 전시 참수작전 등을 수행하는 대한민국 최정예다. 그런데 국회의 의결을 막는 그 간단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일선 지휘관과 병사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도적으로 우왕좌왕하고 머뭇거렸다. 반면 계엄령 지시권자에 대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은, 일선 수사팀의 강력한 즉시항고 의견 피력에도 불구하고 최종 확정됐다. 검찰총장이 즉시항고 포기 수사지휘를 했기 때문이다. 군과 검찰, 둘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군의 힘은 최고통수권자로부터 시작되어 장관, 사령관을 거쳐 일사불란하게 전달되지만, 최종적인 행사는 초급 장교와 병사들에 의해 이뤄진다. 군의 정치성은 최고통수권자에서 정점을 찍었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줄어들고 초급 장교와 병사들에 이르면 아예 사라진다. 그들은 정치 같은 건 모르고, 오직 군 본연의 임무,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군의 힘은 그 성질상 최일선에서 최종적으로 행사되는데, 정치성이 없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최일선이 우왕좌왕하고 머뭇거리는 바람에 국회의 의결을 무산시키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명령이 무산됐던 것이다.
반면에 검찰의 힘은 계엄령 지시권자의 구속 취소라는 법원의 결정 앞에서 어떤 행사도 행사되지 못했다. 즉시항고는 포기됐다. 더욱이 해당 법원은 구속 취소의 사유인 ‘구속기간 산정’에 있어 그간의 관행을 깨고 처음으로 날짜가 아닌 시간을 적용했고, ‘수사기관의 수사 권한’에 대해서는 상급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아 둔 상황이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이 구속취소 결정에 항고하지 않는 자기부정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선 수사팀은 강하게 즉시항고 필요성을 피력했지만, 검찰총장은 즉시항고 포기 수사지휘를 했다. 검찰은 군과 달리 그 힘이 최일선에서 최종적으로 행사되지 않고, 가장 정치성이 높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에 의해 행사된다.
군과 검찰은 그 성질상 배타적인, 그리고 독점적인 강력한 힘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또한 강력한 힘의 통제와 행사라는 미션에 최적화되기 위해 상명하복, 일사불란한 조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한편 둘은 권력을 추구하고 획득하고 행사하는 정치와도 그 정체성을 같이 한다. 그런데 하나는 과거에 정치와 하나가 되어 행사됐었으나 지금 봉인되어 있고, 그 봉인을 강제로 해제해서 부활시키려던 정치의 시도는 무산됐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자기들의 거듭된 부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속 행사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실제로 자기부정을 통해 행사되는 모습을 드러냈다. 군과 검찰, 그 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군은 힘의 영역과 행사의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검찰은 전방위적이다. 평화시대에 군은 사실상 상징적인 힘이다. 훈련 시에만 작동하고 전시를 위해 대비태세를 유지할 뿐이다. 그러나 검찰은 국가의 활동, 국민의 생활 전반에 작용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최종적인 종착지는 수사이고, 그걸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곳이 검찰이다. 그 모든 사건들에는 당연히 정치도 포함된다. 사실상 검찰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군이 정치와 완전히 단절된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검찰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평시, 전시를 떠나 계속 행사되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힘이다. 특히 정치에 합법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데 결코 정치와 단절될 수 없는 딜레마적 힘이다.
둘째, 군과 달리 검찰은 카르텔적 성질을 띤다. 과거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일부 정의로운 군인들이 진압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번에도 일선 초급 지휘관과 병사들이 최고위층의 명령에 반하는 행동을 했었다. 군의 힘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어 있고 봉인되어 있는 데다가, 구조적으로 분산까지 되어있어서 자체적인 견제와 균형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단 하나의 칼이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으로 똘똘 뭉쳐있다. 폐지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검찰 전체를 지배한다.
원래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찰사무 처리에 신속성, 통일성, 공정성 등을 기하고, 검사들이 기소에 관한 독점적이고 막강한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사로 하여금 정의와 진실에 복무하기보다는 상사의 명령에 충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철저하게 정치화된 조직 앞에서 개인의 신념은 무장해제 된다.
검사는 검찰권을 가진 ‘단독 관청’이지만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여 각급 검찰청 검사장 및 지청장의 지휘감독권에 의하여 상명하복의 관계에서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조직체의 일부로 기능하며 계층적으로 결합된 피라미드형의 구조를 형성한다. 검찰총장은 검찰사무를 총괄하고, 검사는 검찰총장, 검사장의 지휘, 감독에 복종해야 하는데, 이는 독립된 한 명의 검사가 담당하는 사무를 검찰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검찰총장, 검사장, 지청장 등 지휘부에 부여된 직무승계권과 직무이전권을 통해 구현된다.
셋째, 군의 힘은 외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성질인데 반해 검찰의 힘은 철저하게 감춰줘 있다. 군이 직접적, 객관적, 물리적 힘이라면, 검찰은 간접적, 주관적, 화학적 힘이다. 군의 힘은 직접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할 수 있고 미리 예방할 수도 있고 완벽하게 진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의 힘은 은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포착도, 예방도, 진압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군의 힘은 직접적인 물리력의 행사인데 반해, 검찰의 힘은 법률적 해석이다. 전적인 재량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신이라고까지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검찰이 죄라고 하면 죄가 되고, 죄가 아니라고 하면 죄가 아니다. 그래놓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고 딱 잡아떼면 방법이 없다. 실제로 검찰은 보안을 이유로 수사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만 공개한다. 어떤 사건은 바로 착수하고 또 어떤 사건은 몇 년씩 캐비닛에 넣어두기도 한다. 역시 그 이유도 밝히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를 삼지 못하고, 바로잡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건들은 검찰로 모이는데, 모든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는 우리 공동체의 정상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검찰은 국민을 제외하고 그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검찰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강력한 힘이다. 그런 힘이 우리 사회의 모든 사건들이 모이는 수사를 담당하고, 조직은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서 내부적 견제나 자체적 자정 작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그 성질상 철저하게 감춰져 있어서 어떤 적발이나 통제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힘의 추구, 획득, 행사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정치와 검찰이 때로는 지배하고 또 때로는 지배당하면서 한 몸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큰 권력은 더 크게 부패한다. 그래서 권력이 강할수록 그 이상으로 강한 견제와 균형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의 정상의 지위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와 공동체 전반의 모든 사안들에 대한 합법적 관여 수단인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이 결탁한다. 그리고 그 결탁은 합법적으로 은폐된다.
각각이 그 자체로 최고의 권력인 정치와 검찰, 그것도 상호 보완적 기능까지 수행하는 둘이 서로 연결된 한 몸이 됐다. 정상을 차지한 힘과 전반을 장악하는 힘, 가장 공개된 힘과 가장 감춰진 힘, 그리고 피상에 넓게 드리운 힘과 가장 깊게 찌르는 힘이 합쳐져 구조적, 기능적 완벽을 실현했다. 절대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부패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자웅동체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그래서 반드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당위 명제에 정면으로 반한다. 첫째, 정치와 검찰을 구조적으로 분리하고, 둘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기제를 만들고, 셋째, 그 모든 과정에 투명하게 객관적으로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 체제를 바꿀 권한은 그 체제의 수혜를 받는 내부자들에게 있는데, 그들이 체제를 바꿀 리는 만무하니 우리가, 국민이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