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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과 부잣집

부자가 됐는데 불행해졌다

by THE RISING SUN

가난한 집에서는 콩 한쪽을 나눠먹으면서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부잣집은 빌딩을 한 채씩 나눠가지면서도 더 갖겠다고 소송을 불사한다. 왜 그럴까. 상대적 박탈(relative depriv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절대적 상황보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상황을 기준으로 만족이나 불만족을 느낀다. 가난한 집은 자원의 총량이 적고, 비교 대상인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진 게 없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편 외부의 다른 집들과도 비교를 하게 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만, 이는 내부 결속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적(unifying enemy)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 외부의 적 효과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현상들이다. 우선 내가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경쟁자들을 살피고 그들과 를 비교한다. 다음은 우리 공동체가 존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을 살피고 내부 결속을 다져야 한다. 본성이 생명체로서 자연스럽게 내재하고 표출하는 성질이라면, 이성은 고도의 사유 능력이 전제된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성질이다. 인간의 선택에는 본성과 함께 이성도 개입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인간 선택의 기제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본성의 힘이 강해서, 가장 본성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한다. 둘째, 본성과 이성이 상호 협상 과정을 거쳐 양자가 합의한 것을 선택한다. 셋째, 이성의 힘이 강해서, 본성은 사실상 배제된 전적으로 이성의 판단이 반영된 것을 선택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사안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본능에 굴복했다’, ‘의지가 강하다’ 같은 말들이 바로 그런 기제를 나타낸 표현이다.


겉으로 드러난 범죄의 양상이 동일한 경우에도, 순간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경우가 있고,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에 의한 경우가 있다. 전자는 본성이 폭발하여 이성이 감히 개입할 여지조차 없는 상태에 해당하고, 후자는 본성이 욕망의 실현을 위해 이성을 끌어들인, 즉 본성과 이성이 상호 협상한 결과에 해당한다. 만약 이성의 힘이 강했다면, 본능에 충실한 본성을 철창 속에 잡아 가둬놓고 범죄의 유혹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기부행위도 마찬가지다. 평생 모든 막대한 규모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한 푼도 물려주지 않는다. 또한 적당한 수준에서 기부 규모를 결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한데, 기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재산을 늘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악착같이, 그런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더 불행해졌다. 경제와 행복, 객관과 주관 사이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상관관계를 부인할 순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살률 순위는 20년이 넘도록 1위를 지키고 있다. 공고한 1위다. 10만 명당 24.3명으로 2위인 리투아니아(18.5명) 보다 월등하게 높고, 2000년 이후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서 자살률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현상과도 대비된다. 그리고 저출산율도 세계 1위다. 반면 객관적 삶의 조건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 정도를 보여주는 우리나라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조사에서는 OECD 38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또한 최근 UN(국제연합)의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 143개국 중 52위다. 행복지수는 소득(1인당 GDP), 사회적 지지, 기대 건강수명,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인식 정도 등 6가지 지표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 순위(25위), 기대 수명(3위) 부문에서 매우 높은 순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행복지수는 143개국 중 52위에 그쳤다.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지원(83위), 제약이나 차별이는 공정한 대우와 관련된 사회적 자유(99위) 등이 평균보다 낮았다.


외부로 표출된 현상의 내부적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또한 삶의 질, 행복지수 등에 대해서도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라고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는 객관적 지표다. 자극적인 표현이지만 살고 싶지도 않고 아이를 낳고 싶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 어떤 핑계로도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평가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체의 본능에 정면으로 반하는 현상으로, 이성이 강력한 힘으로 본성을 배제하고 내린 선택의 결과다.


부잣집 현상이다. 상대적 박탈(relative deprivation)이다. 공동체가 가진 자원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도 커졌다. 거기에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시간으로 남과 나를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실재와 가상이 혼재되면서 비교에 비교를 더하고 차이에 차이를 더하는 트렌드는 폭발했다. 달리기를 하고 평가를 하고 성취감을 얻는 운동장에서, 절대적 가치는 사라지고 상대성의 크기, 그 상대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대화됐다.


어쩌면 선천적으로 남과 비교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유례가 없는 급성장을 견인했던, 특유의 남과 비교하는 성향은 그 방향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리면서 이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외부의 적(unifying enemy) 효과로, 선진국들과 비교하며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똘똘 뭉쳐 단합했던 것이, 막상 잘 살게 되자 우리 안에서 서로 비교하며 불공정, 불평등 같은 온갖 부정적 이슈들을 생산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단합은 깨져서 산산조각 났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지역, 계층으로 쪼개지고, 성별, 연령으로 쪼개져서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정치는 그걸 조장하고 이용하고 있다. 국민들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고, 국가의 분열을 조장한다. 그리고 그 갈등과 대립, 분열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권력을 쟁취하고 정권을 잡을 궁리만 한다.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 공학만 남았다. 상처를 키우고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다. 국민들의 슬픔에 찬 울음, 아픔을 참지 못한 비명이 들리지 않는가.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앞에서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걸 이용할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가난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부자가 됐지만 여전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도 있다. 아니 오히려 더 행복해지는 게 정상이다. 부자가 됐다면 가족 간에 모든 것을 나누며 더 화목해지고, 과거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더 큰 보람과 성취를 느끼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상대적 박탈(relative deprivation), 외부의 적(unifying enemy) 같은 본성의 영역을 벗어나서 자존감 등 절대적 만족의 기준을 확립하고 인류애 같은 이성이 이끄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4년 제시한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 이론이 있다.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때 객관적인 기준이 부족하면 타인과 비교하여 판단한다는 것이다.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는 자신보다 뛰어난 대상과의 비교로 동기부여라는 긍정적 영향, 열등감과 좌절감이라는 부정적 영향이 가능하고, 하향 비교(downward comparison)는 자신보다 낮은 대상과의 비교로, 자존감 상승이라는 긍정적 영향, 교만이나 타인 비하 같은 부정적 영향이 가능하다.


행복의 작동 기제를 알았다면,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단순히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자신만이 가진 강점,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절대적 기준을 내재하고, 경쟁보다는 협력에 무게 중심을 둘 수 있다.


그다음은 우리 정치의 순서다. 우리 사회에 불공정, 불평등이 실재한다면 해소하고, 심리적, 감정적 측면이 있다면, 그 역시 해결해야 한다. 국민의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릴 것이 아니라 치료하고 예방해야 한다. ‘패스트 팔로워와 퍼스트 무버’에서 썼듯이 이제 우리에겐 여유가 생겼다. 앞만 바라보고 뛰기보다는 뒤를 돌아보고 그간 덮어놓고 지나쳤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내야 한다. 허술한 기초를 다지고, 무너진 성벽을 보수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 다시 앞으로 나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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