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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는

by THE RISING SUN

검찰, 법원 등 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들은 전통적으로 권력기관이다. 또한 특권층이다. 업무적으로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쟁, 갈등, 사건들의 최종 종착지다. 구성원들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며, 법률 해석이라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능력만 된다면 누구나 그 자리에 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발판 삼아 정치권으로 올라서거나,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전관 변호사가 되거나, 대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검사나 판사가 그저 기소, 재판 등 맡은 분야의 일을 하는, 다양한 분야의 공무원의 유형 중 하나일 뿐인 나라가 있다. 독일이다. 독일의 검사와 판사는 거의 대부분이 정년까지 일하고, 퇴직 후 변호사, 정치인, 대기업 임원 등으로의 이동도 없다. 특히, 변호사의 일은 검사, 판사와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평생을 검사, 판사로 일했던 사람이 퇴직 후에 변호사를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독일에서 검사나 판사는 특권층이 아니고, 퇴직 후에도 특별한 대접을 받지 않는다. 우리도 그런 맡은 바 업무에만 충실한, 전문성 높은 검찰을 갖고 싶다. 우리가 검찰을 바꾸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에서 썼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먼저, ‘대한민국은 만사가 인사다’에서 썼듯이, 검찰 인사 제도 전반에서 정치를 걷어내야 한다. 첫째, 검사라는 직업과 정치를 단절해야 한다. 현재 검사라는 자리가 갖는 상징성은 정의와 권력이다. 검사를 지망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의도를 갖거나, 검사라는 자리를 권력에의 수단, 즉 정치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후자는 모든 사건에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정치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따라서 검찰을 바로 세우려면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만 검사가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검사는 정년을 보장받고, 퇴직 후에도 심사를 거쳐 1년 단위 임금피크제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단 퇴직 후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금지된다. 임용 후 3년 이내에 퇴직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고, 다른 직업은 별도의 심사를 통해 가질 수 있다.


둘째, 검찰총장, 검사장 등 검찰 고위직 인사를 정치와 단절해야 한다. 검찰 조직의 제일 하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에 대한 정치로부터의 오염을 차단했으니, 다음은 제일 상부다. 현재는 대통령, 민정수석, 법무부장관으로 이어지는 라인에 의해 인사가 이뤄진다. 100% 정치적이다. 이런 구조에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 직무상 독립을 유지하기 바라는 건 난센스다. 검찰 조직을 지휘할 고위직에 합당한 인품과 실력을 누가 갖췄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누굴까. 바로 검찰 내부 구성원들이다. 후보자의 동료들이다. 검찰의 구성원들이 직접 검찰 조직을 지휘할 최고위 간부들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들의 집단지성이 결정에 참여하는 다면평가를 기본 골격으로 하되, 현재 검찰이 운영 중인 후보자추천위원회가 가진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 반영 기능, 미국 일부 주에서 운영 중인 검사장 직선제의 일반 국민 의견 반영 기능 등이 추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셋째, 검찰의 하부와 상부를 정치와 단절했으면, 다음은 조직 내부의 정치화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현재 정치적 라인에 의해 이뤄지는 검찰 내부 인사가 철저하게 성과에 따라 이뤄지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성과 평가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건을 상사들의 입맛에 맞춰 얼마나 정치적으로 처리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느냐가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또한 고위직 인사와 마찬가지로, 승진, 전보 등 내부 인사 전반에도 다면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는 가장 잘 아는 이들은 동료들이다. 업무 성과뿐만 아니라 봉사, 희생과 같은 인품에 대한 평가까지도 가능하다.


다음은, 검찰이 가진 독점적 권한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첫째,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다. 현재 검찰은 재판에 넘길지 결정하는 권한인 기소권과 사건을 조사하는 권한인 수사권을 모두 가지면서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 따라서 기소청과 수사청을 완벽하게 분리해야 한다. 독일 검찰은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이 가장 잘 지켜지는 사례로 인정받고 있는데 수사는 경찰이 맡는다. 검찰은 필요시 수사지휘를 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기소만 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경찰청이 일부 수사 기능을 갖고 있지만, 수사 역량 부족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기소와 수사를 분리하는 대원칙 아래 수사 역량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검찰에 대한 외부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검찰은 우리나라 제일의 사정기관이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기구다. 모든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그래서 견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정기관에 대해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다. 유일한 견제 장치는 대검찰청 감찰부장이다. 검사장급 개방형 직위로 외부 전문가를 채용함으로써 공정한 감찰기능을 유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내부 통제 장치는 무력하고 무용하다. 특히 우리 검찰과 같이 폐쇄적인 상명하복 체제에서, 내부 고발은 역설적으로 견고한 조직의 벽을 확인하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실제로 전직 감찰부장의 감찰 조사 무마 압력 폭로도 있었다. 반드시 외부 통제 장치가 있어야 하고, 옥상옥이 되는 추가 기구 설치보다는 기존 조직 활용이어야 하고, 검찰과 외부 통제 기관의 결탁 가능성은 철저히 차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삼권분립이 행사된 현장을 통해 목도한 바 있다.


셋째, 검찰총장의 권한 축소 및 다원화를 추진해야 한다. 당초 검사의 독점적 권한인 기소권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검찰 정치화의 핵심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은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에서 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찰총장이 검찰 전체를 장악하는 구조를 혁파하는 분권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검찰 조직 체계의 공정성을 인정받는 독일은 연방 검찰청과 각 주의 검찰청이 상호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도 적절한 규모의 권역별 지역 검찰청 체계로 개편하여 각각 독립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분권화해야 한다. 모든 권력은 견제하고 나눠야 한다.


다음은 검찰이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달성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사안들이다. 첫째, 미국에서는 검찰이 대배심(Grand Jury)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소 여부를 검찰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판단토록 하는 것이다. 현재 검찰이 운영 중인 ‘영장심의원회’, 법원이 운영 중인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제도다. 검찰이 담당하는 사건의 상당수가 국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사안들임을 감안할 때 중요한 판단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다. 꼭 배심제도가 아니더라도 현재 보안 유지 등을 이유로 베일에 가려진 사건 처리 과정 전반이 어떤 식으로든 감시·감독을 받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프랑스 검찰(파르케, Parquet)은 행정부 소속이 아니라 사법부 소속이다. 따라서 대통령, 법무부 등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검사와 판사가 사법부에 소속된 동일한 신분으로 상호 견제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건 처리에 있어서도 중대한 사안의 대해서는 별도로 지정된 수사판사(Juge d’instruction)가 수사를 담당하고 검사는 기소만 담당한다. 검찰을 1차적으로 행정부와 분리시켜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고, 2차적으로 사법부 내에서 판사와 균형을 이루게 하여 공정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다시 독일이다. 독일의 검사들은 산처럼 쌓인 사건 서류들 사이에서 혼자 일한다. 우리처럼 보좌하는 다수의 인력을 따로 지원받지 않는다. 독일에서 검사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한 사람의 공무원일 뿐이다. 또한 검사의 임명, 승진, 전보 등 인사 전반은 모두 공개 모집 같은 투명한 절차로 진행된다. 기소라는 중요하고 민감한 권한을 가진 자리이기 때문에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대륙법계로, 입법부가 만든 성문법의 엄격한 해석과 적용을 중시한다. 판결을 통해 새로운 법 원칙을 형성하는 판례 중심의 영미법계와 대비된다. 영미법계는 대영제국의 정치적 지배에 의해 확산되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이 따르고 있고, 대륙법계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륙에서 뿌리를 내렸으며,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거쳐 도입됐다. 법계(法系, legal system)는 인종, 민족, 문명권에 기초를 둔 법질서의 계통으로 사법체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와 독일의 검찰이 같은 대륙법계이면서도 조직의 정치화에 있어서는 극단적 차이를 드러내는 현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검사에게 퇴직 후 전관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정치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물으면,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하지”하는 듯한 눈빛이 돌아온다. 지금 우리의 검찰은 권력의 화신이자, 총체적 정치화, 최고위 특권화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놓고 정의 구현에 앞장서는 검사,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검사가 되기를 바라는 건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 독일 검찰의 바람직한 모습은, 분명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별이 전혀 없는, 육체노동자라 할지라도 숙련되면 마이스터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직업은 단지 개인의 자질과 선호도의 차이를 나타낼 뿐인 독일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검찰개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직업의 귀천이 없고, 자신의 자리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오직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그런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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