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흥하게 할 방법도
우리 정부에 애국심으로 충만한 공직자들만 있다면 정부는 대성공을 할 것이다. 국가의 미래는 밝고 국민은 행복할 것이다. 애국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실하게 일하고 일하는 만큼 보상을 받는 원칙만 지켜진다면 정부는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애국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실종되고, 일한 만큼 받는다는 기본적인 노동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될까. 정부만이 아니다. 정치도 그렇다. 소위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데는 어디든 마찬가지다. 국가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고, 국민은 너무 멀어서 닿지 않는다.
‘이성과 본성’에서 썼듯이, 인간은 본성과 이성을 갖고 있는데, 그 둘은 적당한 탄력을 가진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성은 자리를 지키려 하고 이성은 나아가려 한다. 본성이 이성에 설득되어 따라나서거나, 이성이 탄성계수 내에서 움직이면 끈은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본성이 설득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성이 너무 멀리 가면 끈은 끊어진다. 끈 떨어진 풍선은 저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인간의 이기심은 본성이고 상수다.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려면 본성을 설득하거나 본성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 평생 아껴서 모은 재산을 익명으로 기부하는 행위는 본성이 더 큰 가치를 제시하는 이성에게 설득됐기 때문이고,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하는 행위는 조세 제도가 본성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설득이 안 되면 기부는 없고, 용인 범위를 벗어나면 상속세율이 낮은 나라로 이민을 간다.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은 사익을 추구한다. 공익을 추구하는 정부는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구성된다. 그 딜레마적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검증되고, 반박되는 과정을 거쳐 이론으로, 법칙으로 정립됐다. 먼저, 공유지의 비극이다. 특정 자원이 모두의 소유일 때,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원을 남용하고 결국 자원은 고갈된다.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부 예산에 대해, 각 기관은 최대한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 하고 그 결과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난다. 또한 정부가 관리하는 대기, 수질, 어업 자원 같은 공공자원은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내 것이라는 책임을 느끼지 않고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오염시켜 망가뜨린다.
다음은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다. 관료화된 거대한 조직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는 법칙으로, 일이 많아서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아서 일이 늘어나는 상황을 통계학적으로 증명했다. 업무가 업무를 낳고, 그 업무가 다른 업무를 또 낳는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사람을 고용하고, 그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또 사람을 고용한다. 일과 사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일을 늘리고, 일자리를 늘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더욱이 영문도 모른 채 그걸 밖에서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는 많은 일을, 많은 이들이 하고 있다고 정부는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파킨슨(Northcote Parkinson)은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영학자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해군 함대와 수병의 규모를 대폭 줄였다. 5년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투입하느라 국력이 소진되어 수병들에게 봉급도 못줄만큼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고, 마침 세계 평화를 이유로 지금의 핵확산금지조약과 같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군성에 소속된 직원의 수는 오히려 80%가 증가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영국의 식민지들이 대거 자치정부를 수립하면서 식민성이 관리해야 할 지역들이 계속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성의 직원 수는 매년 평균 5.89%씩 증가하여 1935년 372명에서 1954년에 1,661명으로 늘어났다.
업무량과 무관하게 공무원의 수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첫째, 부하배증(部下倍增)의 법칙 때문이다. 공무원은 업무가 늘어나면 스스로 야근을 하거나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 경쟁자를 늘리기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하 직원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둘째, 업무배증(業務倍增)의 법칙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늘어나면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지시하고 보고 받고, 또 부하 직원을 관리하고, 평가하기 위한 업무가 새롭게 발생한다. 셋째, 이 두 법칙이 맞물려 인간의 마음속에서, 업무의 현장에서 화학적, 물리적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일도, 사람도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다음은 파레토의 법칙(Pareto’s principle)이다. 80:20 법칙이라고도 한다.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의 20%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키며,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성과의 80%는 근무시간 중 집중력을 발휘한 20%의 시간에 달성되고, 전체 범죄의 80%는 범죄자 20%가 저지르며, 전체 주가상승률의 80%는 상승기간의 20% 내에서 발생하는 현상 등이 해당된다. 그에 대한 반박인 롱테일 법칙(Long tail principle)도 있다. 80%의 비핵심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으로, 책 진열에 제한이 없는 온라인 기반 아마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20%보다는 매출 그래프에서 긴 꼬리 모양으로 나타나는 한두 권씩 팔리는 책들이 매출의 80%를 달성한다는 것에서 착안해 만든 법칙이다.
정부에서는 어떨까. 정확하게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 앞서 공유지의 비극과 파킨슨의 법칙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공익을 추구하는 정부는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구성되는데, 하는 업무들은 본질적 필요에 의한 것들이 아니고,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비본질적 업무들을 위해 고용된다. 애국이라는 고귀한 가치의 추구도, 일하는 만큼 받는다는 기본적인 노동의 법칙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모두가 열심히 할리는 만무하다. 영전, 승진, 성과급, 국비 유학, 표창 등이 걸려있을 때, 또한 그것들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상사들의 지시가 있을 때, 그때그때 개인의 이기심에, 사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일을 한다. 그래서 전체 인력의 20%가 80%의 업무를 처리하고, 전체 업무의 20%가 실질적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성과를 내고, 전체 예산의 20% 정도가 실제 필요한 곳에 투입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거래비용 이론(Transaction Cost Theory)이 있다. 정부에서도 시장과 마찬가지로 거래비용이 발생하는데, 정책 집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승인 절차, 규정 등이 업무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공공 조달사업에서는 중간 단계가 늘어나 비용이 증가하고 부패 가능성이 커지는 등 특히 관료제는 이러한 거래비용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킨다. 또한 관료 예산 극대화 모형(Budget Maximization Model)에 따르면, 관료들은 자신의 기관 또는 단체의 예산을 최대화하려는 동기를 가지며, 정치인들에게 과장된 예산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관료와 정치인의 결탁이 발생하고 불필요한 예산 지출이 발생한다. 한편 마태 효과(Mattew Effect)는 기존에 많은 자원을 보유한 조직이나 개인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조직이나 개인은 소외되는 현상으로, 특정 기관이나 분야, 인물에게 정책이나 예산이 집중되고 나머지는 소외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 모두가 지극히 비실용적인 반면 지극히 정치적인 공공의 실태를 증명하고 있다.
행정이든 정치든, 공익이나 공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자부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업무도 조직도 예산도 그렇게 눈덩이처럼 계속 커진다. 구조적으로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 즉 사익, 사적 가치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습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 것은, 그런 공공의 비효율, 비실용, 불공정 등을 지적하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면서 또 법을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사업을 만들어서 예산을 투입한다. ‘국정과제의 탄생’, ‘세금에 대하여’,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 ‘지방자치제도’, ‘정부업무평가’ 등에서 썼던 바와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도, 조직도, 예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큰 눈덩이가 된다.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의 가장 부정적인, 대표적 케이스다.
문제의 원인이 공공과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과의 단절이라면, 연결하면 해결될 것이다. 또한 문제의 근원인 이기심을 아예 제거해 버리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디로 방향을 잡느냐가 중요하다. 방향을 잘 못 잡으면 여태 그래왔듯이 또 엉뚱하게 법 만들고, 인력, 예산 쏟아붓게 된다. ‘애국의 조건’에서 고귀한 가치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는 것이 인간이라고 썼다. 또한 ‘이성과 본성’에서 본성이 어떻게 이성의 설득에 의해 움직이는지 썼고, ‘대한민국은 인사가 만사다’에서는 <맹자>의 인재를 얻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가까이서 직접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썼다.
정치의 경우 이기심과 무관하게 만드는 방안이 있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이 특권이나 처우 때문이 아닌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보람과 성취감 때문에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북유럽의 시의원들이 무보수 명예직인 것처럼 말이다. 고액을 무기명으로 기부하는 독지가들처럼 말이다. 행정의 경우엔 본성이 이성에 의해 설득되는, 즉 영향을 받는 방향으로 각종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이를테면 인사에 다면평가를 도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체제를 바꿔야 하는데, 체제를 바꿀 권한이 그 체제를 현재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의원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인정하고, 여기저기서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책임 총리제 등을 거론하면서도 헌법 개정 등 실질적 행동은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현 체제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가 바뀌면 무언가를 잃게 되거나, 최소한 더 얻을 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행정 혁신이니 행정 효율성 제고니 하면서 자꾸 엉뚱한 일만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제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