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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아사우라 Dec 16. 2020

우주같은 마음으로 (그림이야기)

테리지노가 사는 집

'엄마 내가 종이를 많이 쓰면 환경이 오염돼서 동물들이 많이 아파? 그런데 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데'
아이는 보통 하루에 30장 이상의 종이를 소진한다. 물론 더한 날도 많다.
보드에도 그리는 그림을 합하면 아이는 정말 그리는 일 자체를  사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그림에도 아이만의 관찰(?) 시선이 묻어있다.
그림을 잘 그린다로 표현하는 일은 뭔가 좀 어색하다.  잘 그린 그림도 못 그린 그림도 없다. 아이의 마음과 내가 부여한 무한한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뒤샹 역시 작품을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것은 관객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는 열심히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아이의 그림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 그림은 상어들이 너무 사랑해서 꼭 붙어서 가는 모습처럼 보여 엄마 눈에는'
'회전목마는 높낮이가 너무 재밌다.'
'타조들이 토리 언제 오나 기다리는 모습 같은데'
'이 그림 속에 공룡 다리들은 다 화산을 피해 도망치는 건가? 슬픈 느낌이 들어'
'공룡들이 그림에서 튀어나오겠다. 공룡들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엄마는 정말 행복해'


그렇게 아이는  손에 펜을 든 집안의 무법자 시절을 거쳐
종이 한 장에 이야기와 마음을 담아내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27개월 무렵의 아이



33개월 무렵의 아이


48개월 무렵의 아이



51개월 현재





                           

상어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던 아이는 나와 남편에게 수없이 상어를 그려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밤낮으로 상어를 그렸고 아이는 눈을 떼지 않고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 와중에 어느 순간 펜을 든 아이가 스스로 상어를 그리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고 벽은 물론이거니와 소파와 냉장고 커튼까지 아이는 순식간에 접수했다. 매일매일 '안 돼 안 돼'를 외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가만히 앉아있다가 벽에 그려진 아이의 상어를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일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아이에게 집안의 반 쪽을 내어 주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침실과 거실 한쪽을 제외하고는 펜을 들고 어디든 그렸다. 안되는 곳만 존재하던 집에 되는 곳을 만들어주니 아이는 내게 늘 행복에 겨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웃는 얼굴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을까 싶어서 침실까지 내어 줄 뻔했지만 이성의 고삐를 놓지 않고,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지켰다.

생각보다 무법자 시기는 빠르게 막을 내렸고 아이는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그림에는 어떤 평가도 하지 않고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동그라미 그리는 방법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기보다 아이만의 그림을 그리길 바랐다.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는 아이보다 그림을 사랑하고 그림에 감정을 쏟아내는 아이이길 바랐다.


아이는 상어만 그리다가 타조만 그리다가 공룡만 그리다가 요즘은 회전목마만 그린다.(몰입은 그림과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시 심심해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들에겐 필요하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칩니다!) 다양하게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색칠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색을 좀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생각만 한다.

왜 다양하게 그려야 하고 색칠을 꼭 해야 하지? 하고 내게 반문하면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그림을 발달상황과 맞물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을 꽤 세밀하게 그려내는 아이니 발달상황적으로 소근육 발달이 좋고 눈과 손의 협응력이 좋다고 표현하며 두뇌발달이 잘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이는 아직 숟가락질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에디슨 젓가락질을 어려워한다. 단추를 끼우고 푸는 일은 나의 인내심이 지구 끝까지 닿으며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소근육 발달이 덜 된 아이일까? 잘 된 아이일까?


단편적인 면만을 바라보는 순간 아이는 단편적인 아이가 되어버린다.

우주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 무한한 아이들을 향한 우리에게 필요한 시선이지 않을까?                                              


51개월 지금 이 순간 아이의 그림 :)

                                                                                                                                                                                                                                                                                                 

'엄마 글 다 썼어요?'

'아직 쓰는 중이야 이번엔 토리의 그림 이야기에 대해 쓰고 있어'

'아 엄마 잠깐만'

.

.

'엄마 내가 팽이를 그려준 적은 없지? 내가 지금 그려왔어 엄마 글 쓰는데 좋으라고 어때?'

'완전 감동이야!'


나의 글을 지지해 주는 꼬마 구독자 덕분에 감동의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테리지노가 사는 집 새벽에 마이아사우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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