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찰나
‘엄마 하프 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잘 계실까?’
아이는 작년 겨울에 다녀온 영국을 추억할 때마다 하프 할아버지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내셔널 뮤지엄 앞에서 늦은 시간까지 회전목마를 바라보다가 지하철(언더그라운드)을 타러 가는 길에 하프 할아버지를 만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프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를 할아버지는 옆으로 불러 하프를 알려주셨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하프를 튕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다음 날 우리는 할아버지를 뵈러 또 갔다) 어느새 누군가를 그리워할 줄 알고 그리운 사람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한 뼘 더 자랐구나 싶다. 이런 순간이 올 때면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마음이 뭉클하다. 아마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아이의 어린 시절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아쉬운 기억들이 작동해서 일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엔 아이와의 순간에 힘껏 최선으로 살아가자 다짐하지만 어디 육아라는 게 다짐한 대로 말처럼 쉽던가-
하프 할아버지의 CD를 한동안 자주 들었다. 할아버지의 CD가 플레이어에서 뱅글뱅글 돌아갈 때마다 그날을 추억했고 어느 순간은 우리가 그곳에 있는 듯했다. 음악은 묘한 힘이 있어서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그 음악을 마음에 들여놓은 순간으로 저절로 나를 데려가 준다. 그리고는 아주 감동적인 어조로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주변의 공기가 온통 음악소리로만 가득 채워진 듯한 이 느낌은 내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찾아와 주는 것은 아니어서 반갑고 친근하면서도 흠칫 낯설다.
올여름 다시 그곳으로 가 할아버지를 만나 그 순간을 재현할 계획이었지만.. 우리 모두 전에 없는 코로나 상황으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불편하고 답답하다. 어느 날은 마음 안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화가 차오르기도 한다. 마스크를 쓴 채로 지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어른으로 불리는 사람으로서 이 상황이 정말 미안해진다.
잠시 숨을 고르고…
크리스마스 새벽이니 선물 같은 상상을 해본다.
온 집에 코로나안녕 주스가 배달되는 상상! 주스 앞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주스를 마시면 코로나바이러스는 화들짝 놀라 다 전멸함. 몸에 다시는 침투하지 못함. 부작용 없음. 완벽함.”] 맛은 사과 맛 (아니 좀 더 누구나 다 좋아할 만한 맛으로 하고 싶은데.. ) 이왕 상상이니 좀 더 판타스틱하게 그 주스 병은 손에 드는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으로 변하기로 하자. 주스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마법처럼 코로나로부터 안전해진다. 따뜻함을 지닌 사람들은 혹시라도 마시지 못한 이들이 있을까 싶어서 주스를 조금 남겨 가방에 휴대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묻는다.
‘코로나안녕 마셨어요?’ ‘당연하죠!’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고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 속에 흐르는 눈물을 서로 닦아준다.
우리는 잠시 멈추었던 일상 덕분에 돌아온 자연스러운 일상에 더욱 감사해한다. 그리고 대자연에 깊이 사과하고 욕심을 거두어들인다.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조금 불편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아침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집 밖으로 나와 아무런 말도 필요 없이 서로가 서로를 꽉 안아준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코로나안녕 -
상상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사과주스를 벌컥벌컥 마시고 트리 밑 아이의 선물을 바라보고 있다.
요즘 모든 것이 변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변할 수 없는 것들이 곁에 있어줌으로써, 삶의 풍경이 되어줌으로써 느낄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하며 소중함을 느낀다.
여전히..
메리 크리스마스!
P.S 지난밤에 산타 할아버지 간식을 준비하며 설레어하는 아이 모습에 나도 덩달아 산타 할아버지가 꼭 오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이 따뜻하길 바라본다.
다시 한번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