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날의온도 Jan 21. 2020

언니는 안녕하시다

(1) 내가 왜 니 언니야?



나는 ‘언니’라는 호칭이 싫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과 학생의 경계가 명백해서 좋았다. 차갑게 식은 학교 복도를 걷다가 미간이 어둡고 주름진 얼굴과 마주치면 무조건 선생님, 하고 부르면 끝이었다. 간혹 선생이 아닌 이도 있었겠으나 선생이라 불린 이들은 대개 적절히 응수하고 떠나갔다. 나를 향해 돌아서서 돌연 ‘내가 왜 니 선생이야?’ 따져 묻는 이는 없었단 얘기다.      


선생이란 호칭은 사회에 나와서도 전방위로 활용되었다. 나는 신분을 알 수 없는 이, 신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으나 나와의 관계는 불확실한 이, 나보다 나이는 많은데 직급이 낮은 이, 그다지 사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은 이 모두를 선생이라 불렀다. 그들은 나와 교과서 한 쪽 넘겨본 적 없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 호칭을 받아들였다. 선생이라 부르기에 너무 젊은 이에겐 선배란 호칭을 붙였다. 선생이든 선배든 내 앞으로 그들의 자리를 쭉 밀어놓으면 지탄받을 일이 없었다. 나는 늘 학생 같은 태도로 그들을 대했고(데면데면하게 대했단 소리다) 후배의 위치에서 그들의 말을 들었다(입 닫고 그들이 마음껏 떠들게 내버려뒀단 소리다).


조금 지나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선생이든 선배든 그들이 나보다 몇 발짝 앞서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 딱히 틀린 호칭은 아닐 거라고. 그들은 나보다 먼저 태어났고 먼저 돋은 앞니로 사탕을 오도독 오도독 씹었으며 나보다 먼저 거북목과 S자로 휘어진 척추뼈를 얻었고 먼저 세상을 향해 씨발을 외쳤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삶이 어떻든 간에 그들에겐 먼저 선先자를 붙일 자격이 있었다.     



난감했던 건 ‘언니’라는 호칭이었다.      



때로 친근하게 다가와 내 겨드랑 아래 팔을 쑥 밀어 넣으며 몸을 붙여오는 이들이 있었다. 경계심 없이 정수리를 내보이며 내 어깨에 다정히 붙어 이렇게 물어보는 이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그래, 그러렴, 언니라고 불러, 따위의 말들을 주워섬겼으나 왼쪽 뺨과 눈가를 뻣뻣하게 굳히곤 했다. 입가 근육에 얼마간의 의지를 불어 넣어야 미소 지을 수 있을 지 계산해야 할 정도였다. 그들이 내비치는 달짝지근한 친근감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들이 그로부터 채 석달도 지나지 않아 내게 쏟아낼 말들을 미리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진짜 ‘언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어요.”     


우리가 그 정도로 돈독했다고? A가 무한한 신뢰를 가장한 눈으로 내게 호소할 때 나는 진심으로 의아해하고 있었다. A는 그녀가 내 지적, 사적 재산들을 그야말로 허물없이 써댄 이유가 나를 '진짜 언니'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말로? 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A의 귓불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귓불에서 필사적으로 찰랑이는 눈꽃모양 큐빅이어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전 남자친구가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내게 선물한 것이었다. 나는 남자친구와 봄이 오기 전 헤어졌고, 서로에게 선물했던 소소한 것들은 너무 소소한 탓에 각자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그와 나누었던 물건들 대부분이 버려졌으니 그녀는 내 동의없이 전 연애의 유물을 찰랑이고 있는 셈이었다. 그건 또 언제 가져갔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처음엔 모나미 플러스펜이나 립밤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언니, 이거 좋아요? A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물건들을 살폈다. 대개 내 선택을 칭찬하는 말들이었으니 경계심 없이 물건을 빌려주고 나눠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에는 내 폴리스 재킷이나 전공도서, 레포트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언니, 지난 학기에 이 강의 들었다고 했었죠, 혹시 레포트 내셨어요? 참고만 할게요, 진짜 참고만.


돌이켜보면 A는 '진짜'를 남발하는 성격이었구나.


A의 유일한 철칙은 내 식권은 가져갈지언정 돈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뭐가 다른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너 좀 너무하지 않니? 내가 묻자 A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게 말했다.



“언니, 나는 언니가 진짜 내 언니라고 생각해서 믿고 의지했는데, 언니한테 우리 사이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어요? 언니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고 야박해요?”






“언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요?”     


B는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아니, 그건 따지거나 묻거나 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B는 내 입이 열리는 걸 기다리지 않고 다음 말을 쏟아냈고, 내 답과 상관없이 또 다음 말을 쏟아냈다.      


“이건 어쩌다 주머니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얘기했잖아요. 어떻게 언니는 내 말을 안 믿고 사장님 말만 믿어요?”      


주말 아르바이트가 막 끝난 참이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서다 누군가 가방끈을 확 잡아채는 바람에 뒤로 나동그라졌다. 탈의실 문을 가로막고 선 이는 B였다. B는 만 원짜리 두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움켜쥔 채 허공에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돈에서는 축축하게 젖은 것들이 풍기는 특유의 물비린내가 났다.      


나는 그 습기의 정체를 알았다. B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들의 돈을 자주 빼돌렸고, 포스기 옆 메모꽂이에 영수증인 척 지폐를 슬쩍 눌러두었다가 옆에 놓인 길쭉한 플라스틱 통 안에 쑤셔 넣곤 했다. 플라스틱 통 안에는 B의 칫솔 치약이 담겨 있었다. B는 치아 교정 때문에 수시로 화장실에 가 이를 닦았고 이를 닦는 김에 구겨진 지폐도 주머니에 옮겨 넣었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적어도 세 번은 목격했다.      



“언니가 사장 편에 서서 나를 이렇게 엿 먹일 줄 몰랐어요. 치사하게, 언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래요?”          






나는 그들이 내게 ‘언니’라는 호칭을 붙임과 동시에 기대하는 무한한 아량과 절대적인 신뢰, 열성적인 편들기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선후배나 동료 정도로 서로를 인식했을 땐 문제되지 않던 것들이었다.    

  

내게 몸을 붙여 팔짱을 끼고 캐러멜 시럽이 듬뿍 든 커피를 나눠 마시고 이마를 맞댄 채 서로의 남자친구나 반려동물 사진을 들여다본 뒤에, 그러니까 그들이 나를 '언니'라고 부르게 된 뒤엔 무엇이 바뀌는 걸까. 나는 왜 돌연 “언니라고 부르라더니!” 내지는 “넌 언니도 아니야!” 같은 비난을 받으며 관대하지 못했다고, 책임져주지 않았다고, 공범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공격당한 걸까.


나는 언니라는 호칭이 내게 강요하는 맹목적인 애정의 정체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늘 저 호칭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건, 내게 한 때 ‘진짜 언니처럼’ 나를 챙겨주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니답게 내게 조언을 해주고 어른스럽게 어디든 앞장서 걸었다. 그러나 그들은 때로 언니답지 못하게 정도를 벗어났고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바닥에 주저앉아 어른스럽지 못하게 펑펑 울었다. 어른과 아이를 바쁘게 오가고 단정한 형태를 가장한 극도의 혼란을 힘껏 겪어내고 있는 그들을 나는 스스럼없이 언니라 불렀다. 그들 누구도 내게 '내가 언니야?' 따져묻지 않았다. 동시에 내가 부르는 호칭에 구속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진짜 언니처럼 당당하고 자연스럽고 허술했다. 적어도 내게 '언니'는 그런 의미였다.



나는 언니라는 호칭이 싫다.

그럼에도 때로 나는 ‘언니’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절대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지 못해도 좋을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 먼저 걸어본 길에 대해선 가차없이 평가할 수 있고 모르는 것, 두려운 미래에 대해선 망설임없이 불안해하고 싶다. 내 감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연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언니라도 괜찮다고 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진짜 언니, 가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수십 번 되묻다 보면, 일상을 쉼없이 뒤적이고 기억과 희망을 연결 짓다 보면 어느 날은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되고 싶은 언니라는 존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