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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Jan 21. 2020

선을 넘는 사람들

(1) 선과 선

선을 넘는 사람들

(1) 선과 선



이건 말 그대로 선과 선에 대한 얘기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느낀 건 결혼에 대한 광적인 압박감이었다. 지금이야 ‘비혼’을 자연스럽게 언급할 수 있게 되었지만(받아들이는 쪽도 동일한 감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딸이 벌써 서른을 넘겼어? 근데 왜 아직 결혼을 못하고? 부모의 지인들은 공공연히 그런 말을 하며 나를 살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은 뒤 소곤대는 말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겉보기엔 말짱해 보이는데 왜, 직업이 없나? 자존심이 세? 뭔 사연이 있는 건 아니지?      


나는 어릴 때부터 일관되게 결혼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었다. 연애의 알콩달콩함은 즐거웠지만 생활과 공간, 현재와 미래를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풀옵션은 두려웠다. 아내나 엄마가 되는 일이 내 삶을 무료와이파이처럼 한정 없이 베풀어야 하는 일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결혼에 긍정적일 리 없었던 것이다.      



전공 관련 프리랜서가 되기로 작정하면서 내게 미래설계는 의미가 없어졌다. 일주일 밤낮을 투자해도 단 하루의 안락함조차 손에 쥘 수 없는 게 새싹 프리랜서의 일과였다. 커리어를 쌓고 자리를 잡은 선배나 선생들을 부러워하면서 매일 나를 다그치고 원망하느라 나는 늘 소란스러운 감정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 안에 들끓는 감정들 때문에 연애조차 버거워 헤어지기 일쑤였는데 결혼이라니. 나는 가볍게 코웃음 쳤지만 내 부모는 그러지 못했다.          


부모의 지인들은 사돈에 팔촌, 직장 후배, 지인의 지인의 또 다른 지인(그러니까 그냥 남)까지 죄다 끌어다 내 앞에 전시했다. 이 중 하나쯤 짝이 맞는 게 있겠지, 뭐 그런 계산이었을까. 나는 코인세탁기에 남겨진 양말 한 짝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채 그들이 변덕스럽게 끼웠다 빼는 무수한 양말짝들을 구경해야 했다.   

       

“선을 보라니까 보긴 하겠는데, 기대는 하지 마.”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 무엇도 방어할 수 없는, 체념에 가까운 말이었다. 부모와 선생(이들의 오지랖은 또 어찌나 넓은지!)들은 인자한 표정을 연기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럼. 우린 아무 말도 안 해. 마음에 들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요즘 젊은 애들이 어디 어른 말 듣나? 우리도 다 알지, 그럼.          



   





겨울 찬바람이 걷힌 시점에서 여름이 오기까지, 나는 거의 모든 주말을 선보는 데 낭비했다. 그것은 진실로 낭비였다. 그럴듯하게 나를 꾸미는 물리적인 시간은 물론 서로에게 적당한 호의를 가장하고 탐색하듯 대화를 나눠야 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 서로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합당한 거절사유를 찾는 부담까지 도무지 쉴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주말마다 매번 두 가지 마음을 품은 채 집을 나서곤 했다.           



비혼을 선언하고 일에 매진할까.
크게 모난 구석 없는 사람이라면 결혼해버릴까.           



그를 만난 때는 해가 진 뒤에도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김이 가시지 않던 여름 한복판이었다. 부모와 선생이 말하길, 새 사람을 만나기에 여름은 적절한 계절이 아니라고 했다. 봄이나 가을이 새뜻하고 평온해 만남에 순조롭다는 얘기였는데 이유가 어떻든 나는 모처럼 찾아온 평화가 반가웠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도 짧은 휴가로, 부모의 지인은 지치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왔다. ‘딱 한 번만 만나보라고 해.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 아까워서 그래.’ 그와 똑같은 말을 적어도 서른 번은 들었을 텐데 부모는 또 흔들렸다. 나는 데오드란트 범벅을 한 몸에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서야 했다. 명동을 선택한 건 그였고 전광수 커피를 선택한 건 나였다. 정작 테이블에 마주 앉자 그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말했다.         


  

“사람이 굉장히 많네요.”

“주말이니까요. 게다가 명동이고.”

“명동은 처음 와 봐요.”          

“그런데 왜 여기서 보자고 하셨어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간다길래요.”

“누가요?”

“우리 부장님이요.”           



그는 진한 남색 재킷에 파스텔블루 셔츠를 받쳐 입고 나타나 헤어질 때까지 재킷을 벗지 않았다. 땀이 날 텐데. 보고 있는 내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그는 무려 칠 년을 공부해 공무원이 됐다고, 시험에 내리 떨어지는 동안 세상과 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부끄럽거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고, 그냥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공무원다운 표정이었다.           



“이제 이 년이 됐어요.”

“뭐가요?”

“공무원이 된지요.”

“그러시구나.”          



“주말엔 보통 뭘 하세요?”

“무한도전을 봐요.”

“그리고요?”

“그게 단데요. 종일 봐요.”

“무한도전 회차가 그렇게 많았던가요?”

“본 걸 또 봐요. 재밌거든요.”

“그러시구나.”          



나는 그러시구나를 반복했고 점점 그를 알 수 없어졌다. 뭐지, 이 어색하고 친근한데 속 터지는 느낌은. 그는 커피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가 권하자 커피를 못 마셔요, 했다. 더 묻기도 뭐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하고 좀 걸을까요. 카페를 나선 그가 남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므로 나는 기겁을 하고 물었다. 어디를? 어디를 걷죠? 남산이요. 그가 태연히 대꾸했다. 나는 코가 뾰족한 내 하이힐을 내려다봤다.        

   

“왜 하필 남산을? 아니, 왜 걷죠, 이 여름에?”

“원래 그런 순서잖아요. 차 마시고, 식사하고, 주위를 산책하고 집에 모셔다드리고.”

“누가 그래요?”

“우리 누나가요.”          



나는 땀에 쭐떡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나를 집에 데려다줘야 한다고 우겼으나 내가 ‘내 부모가 말하길’ 첫 만남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자 금세 수긍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부모에게 그와 나눈 대화들을 일러주었다. 아주 착한 애라던데. 부모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내가 왜 거절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저녁에 성실한 내용의 문자(집에는 잘 들어가셨나요? 오늘은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괜찮으시면 다음 주말에 영화 한 편 어떠신가요)를 보내왔고 나는 거절했다.        

 

그가 딱히 싫어서가 아니었다. 거기 앉아있던 그의 무관심한 얼굴이 나와 지나치게 닮아있다는 게 무서웠다.  아마도 부모와 가족일 타인의 말에 휘둘려 그 자리에 나왔을 테고, 딱히 모난 구석 없는 여자라면 그냥 해버릴까 결혼, 그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렇게 해서 갖춰지는 건 과연 누구의 삶일까.


적어도 내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건 선을 본 다음 주 주말이었다.           




“우리 애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서요. 좋아도 좋다고 표현을 못하고 낯을 가려서 말도 잘 못하고 그래요. 그런 애가 아가씨한테는 연락을 세 번이나 했다더라고요.”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녀의 말을 들었다. 영화를 거절한 이후에도 그에게 두어 번 문자가 온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라는 게,           



[저는 지금 퇴근하는 중입니다. 온도씨는 하루 잘 보내셨나요.]

[(뜬금없이 흥국생명 앞 <해머링 맨> 사진을 찍어 첨부한 뒤) 출퇴근길에는 늘 이게 보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이게 전부였다. 해머링 맨 사진을 받았을 땐 날 한 대 치고 싶다는 은유적 표현인가 싶어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아무 맥락도 없는 행보에 교과서를 읊는 듯한 말투라 나는 두 번 다 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는데(시험에 다섯 번째 떨어졌을 때에는 그만하고 취직준비를 하자고 내가 그랬죠. 그런데 또 시험을 봐서 기어코는 붙더라고요. 걔가 그렇게 노력을 해요, 세상에. 책임감은 또 남달라서……) 그것들은 아무리 들어도 주말에 종일 무한도전을 재탕하고 직장상사와 누나의 말을 신봉하는 사람의 얘기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그래서 말인데, 라며 운을 뗐다.        


   

“다섯 번은 만나봐야지 않겠어요?”

“네?”

“선을 본 이상 다섯 번은 만나야지. 그게 예의지. 어른들이 다 이렇게 저렇게 가늠해보고 둘이 잘 맞겠구나 판단을 내려 자리를 마련한 건데, 딱 한 번 만나보고 거절하면 어른들 체면은 어떡해? 그런 신중하지 못한 태도는 아가씨 부모님한테도 폐가 돼요. 다행히 우리 애는 마음이 있다니 내일 다시 만나 봐요.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런 건 약과야.”     


친구가 열변을 토하는 내게 냉수를 밀어놓고 팔짱을 꼈다. 나는 그의 어머니라는 사람과 통화를 끝낸 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가 답을 하기도 전 그의 어머니 전화번호가 다시금 내 폰에 떴다. 나는 그와의 대화를 포기했다.          


“우리 신입은 이번에 어머니가 친히 납셔서 사표 내셨다. 팀장 차장 다 건너뛰고 대뜸 대표실로 찾아가서, 우리 애가 업무과중으로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아랫사람들 관리 잘 하라고 일갈하시고는, 사표 던지고 쿨하게 가심. 그런 세상이야.”

“너네 신입은 스물여섯 살이라며. 그 사람이 열 살은 더 많아.”

“나이가 문제가 아니야, 그런 사람들은. 예순 일흔까지 그러고 살 걸.”

“그땐 부모가 죽고 없잖아?”

“그땐 마누라가 있지.”

“마누라가 죽으면?”

“자식이 있겠지. 그리고.”          


친구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한반복재생되는 무한도전이 있잖아. 그것만 있어도 행복하게 잘 살 걸?”           




나는 그 길로 선보기를 중단했다. 부모는 이후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으나 더 이상 휩쓸릴 마음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기함하게 했던 건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상황들이 있었고 마주앉아 커피 몇 모금을 마신 것조차 후회되는 사람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나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점에 기겁해 돌아갔겠지. 선을 보는 데 여러 가지를 낭비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나를 소비하는, 내 자신의 중요한 무언가를 소멸시키는 시간에 가까웠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갖고 싶은 시간은 남산 타워 아래 카페 테이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책상 위에 있는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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