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자음악단-서로 다른

by 다람

내게도 한 때 잠시나마 차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스틱 자동차가 아닌 오토여서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찌됐든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는 상징적 뿌듯함이 있었다. 아마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면 그 쾌감은 극대화됐을지도 모르나 안타깝게도 초년생 시절을 이미 훌쩍 넘긴 시기였다.


내가 오래도록 생각해왔던 차에 대한 이미지는 1950~60년대 미국의 인상이다. 영화 <백투더퓨쳐>처럼 사춘기 남녀가 차를 끌고 교외로 나가 청춘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대자유의 향연 말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미국식 청춘을 누리기엔 늙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미국식 드라이브-은 영원히 환타지의 영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글픈 일이다.

차가 생기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정작 콩나물 시루 버스 같은 대중교통의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보다는 음악을 풀볼륨으로 튼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자가용은 일종의 이동하는 콘서트장이었던 셈이다.


귓속에 리시버를 꼽아놓고 자폐적으로 감상하는 대신 한풀이하듯 차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음악을 틀고 다녔다. 대부분은 비틀즈나 섹스 피스톨즈, 핑크 플로이드 같은 클래식 록 음악이었다.


국산 중에는 서울전자음악단의 ‘서로 다른’ LIVE를 자주 들었다. 나는 신윤철의 기타 연주를 아주 좋아했다. 형 신대철은 속주와 기교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자아낸다면 신윤철은 침잠된 고요함을 가장한 이면에 아주 묵직한 진실을 밝히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기타 연주만큼 성격도 대비돼 신대철이 각종 사회 현안에 강한 목소리를 내는 반면 신윤철은 있는듯 없는듯 아주 조용한 삶을 산다.


개인적으로 신대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정작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색 때문이 아니라 단지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다. 그가 펼치는 논지나 주의 주장, 글쓰기가 잘 쳐 줘봐야 명민한 중3 소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그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는 음악가지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분명 음악가로서는 탁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음악가로서의 신대철은 존경하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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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은 신대철, 신윤철, 신석철 3형제를 남겼다. 신중현의 어머니는 일본인 생모다. 그러므로 신윤철의 친할머니는 일본인이라는 뜻이다. 정작 한국 록의 아버지라는 신중현 피의 절반이 일본 계통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아마도 그 역시 굳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출신이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특히 반일 감정이 최고조 광기에 달했던 과거를 상기한다면 말이다.

자가용이 있었을 때는 신윤철이 주축이 돼 만든 ‘서울전자음악단’의 ‘서로 다른’ LIVE를 항상 풀볼륨으로 틀어놓고 정처 없이 운전하곤 했다. 그걸 들으며 그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도로 위를 방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휘발유를 남김 없이 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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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아주 담담한 어조지만 동시에 폐부를 찌르는 통렬한 감정을 일으킨다. 부드럽게 밀고 들어와 서서히 점층되기 시작해 종국엔 모든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절정 부분 피 튀기듯 강렬하게 연주하는 기타 리프는 심지어 형이상학적인 인상마저 풍긴다. 한없이 따뜻하고 격정적인 음악을 들으며 매번 아픈 마음이 위무 받는 느낌을 받았다.


기타 연주가 인간의 눈물을 끌어낼 수 있는가? 나는 있다고 본다. 그것도 아주 충분히. 자가용에서 이 곡의 후주後奏 부분을 들으며 핸들을 부여잡고 종종 오열했기 때문이다.


억울함과 한으로 뒤덮인 감정이 끓어오르다가 절정의 멜로디에서 나도 모르게 결국 활화산처럼 터지고 마는 것이다.


그 흔한 컨베이어 벨트식 한낱 양산형 사랑 노래는 냉소와 조소만을 불러 일으키지만 ‘서로 다른’은 분명 진정한 본질적 진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윤철을 예술적으로 아주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도 신윤철의 형 신대철이 초등학교 시절 듣고 울었던 곡은 지미 핸드릭스의 ‘리틀 윙’이었다. 그러니까 신대철의 표현을 빌자면 내게 있어 ‘리틀 윙’에 상응하는 곡은 신윤철의 ‘서로 다른’이 되겠다.


동시에 아버지 신중현의 최대 발명품은 ADD4 시절 ‘미인’이 아니라 신윤철이라고 본다. 신윤철은 여전히 마이너의 영역에 불과한 한국적 사이키 델릭의 적통이다.


내가 만약 기타를 능수능란하게 칠 수 있었다면 반드시 이 곡을 연주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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