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2

by 다람

내게 알량한 재능이 하나 있다면 그건 호기심이다. 사물이든 현상이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은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한 영역들이 대다수다. 무관심한 영역들은 대개 유행이다. 대중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든 주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한다. 천성적으로 다수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국민 스포츠로 전락한 정치에 혐오감을 갖는 까닭이다.


또다른 천성은 ‘컬트’다. 소수자들이 숭배하고 열광하는 그것말이다. 마흔에 이르러 깨달았지만 나는 컬트주의자다. 컬트가 대단히 특이한 것, 기괴한 것으로 여겨지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붓다도 한때는 컬트였고 맑스도 컬트였던 시절도 있었다. 끝내는 오늘날 내가 믿고 의지하게 된 예수마저도 결국 컬트의 영역이었다.


장담컨대 적어도 컬트에 있어서 나는 항상 빨랐다. 마치 달팽이의 촉수 혹은 바퀴벌레의 극도로 예민한 더듬이처럼 반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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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한때 한반도를 달궜던 아이폰 광풍 이전의 스티브 잡스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유명하지 않은 잡스를 열변했을 때 반응은 “재미도 없는 따분한 내용 술맛 떨어진다”는 냉소뿐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구질구질한 계집애들과의 멍청한 연애 이야기로 흘러 나는 대단히 실망하며 말없이 소주잔만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이를 비웃듯 그로부터 3년 뒤 전세계가 아이폰에 열광하고 잡스는 구루이자 교주로 등극하게 된다. 그때 주식을 사두었다면 지금쯤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국제적 사안들이 나를 미치게 했다. 3D프린터와 비트코인, 테슬라 등이 그것이다. 그 광풍이 불기 전 남들이 존재조차 모를 때 언제나 최소 몇 년 전부터 일찌감치 나는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다.


물론 광풍이 불기 전이었으므로 당시에는 한글로 번역된 내용이 극히 적어 어쩔 수없이 번역본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실낱같은 정보만 취할 수 있는 게 다였다. 내게는 영어를 해독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구글 번역기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경제적 멘토도 없었다.


오늘 외장하드를 뒤지다 우연히 카카오톡 기록을 발견했다. 그것이 남아 있는 까닭은 나는 대다수의 기록을 남기기 때문이다. 기록에 있어서 가히 편집증적이다. 마치 조선왕조실록의 사관처럼 디테일한 것까지 기록해서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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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3년도에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내용을 꺼냈다. 내가 투척한 문장에는 ‘재밌다’와 ‘사기같다’라는 대조적 반응이 엇갈린다. 사기 같다는 표현에는 2013년 당시 실제로 비트코인을 두고 한국은행의 “말도 같잖은 사기”라는 공식 입장을 수용함과 동시에 내심 예전에도 술자리에서 3D 프린터 이야기를 꺼냈다가 허황된 소리나 지껄인다고 질책을 받아 겁이 번쩍 났기 때문이다.


“사기같다”는 문장은 일종의 정서적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우리가 잘 알 듯 결론적으로 한국은행은 틀렸다. 외국 유수의 명문대를 졸업한 날고기는 천재들이 우글대는 그 집단마저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내가 처음 주제로 비트코인을 꺼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한번 사보라”는 것과 “도미노 피자가 먹고 싶다”라는 철저한 개무시였다. 비트코인에 도미노 피자라니? 이게 블랙코미디이자 컬트 아닌가?


그때 비트코인은 똥값이었다. 애들 장난질에 불과한 취급을 받았었다. 나는 부모님께 졸라 10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었고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한번 사보고 싶다고 했다.


반응은 차갑다 못해 철저한 무시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지지않고 계속 이를 주장하자 아버지는 화를 벌컥 내며 방으로 들어가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둘째치고 물론 다시 돌아간다 해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당시는 거래장도 외국에만 있었고 나는 영어 문맹이었으며 이를 구매할 방법을 물을 조언자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비트코인에 미쳐 있는 오늘날을 상기하면 그것조차도 블랙코미디이자 컬트다. 물론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모두가 비트코인에 미쳐있기에 이제는 비트코인에 관심이 없다. 드러나지 않은 소수에만 열광하는 유구한 컬트적 기질이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실망한 내가 (고학력의) 지식인들을 찾아 헤맨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이끌어 줄 조력자 혹은 지적 동반자를 얻기 위함이었다. 저 똑똑한 사람들은 그래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란 일말의 기대감과 한줄기 희망이었다. 이 얼마나 절박한가? 나는 절박하다못해 슬프다고 생각한다.


천신만고 끝에 접점이 닿게 된 지식인들은 너무나 허망했다. 그들은 지식만 많지 어떤 상상력도 기발함도 창의성도 없었다. 외려 오만하고 독단적이며 제 생각에만 갇혀 있는 자폐와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는 적지 않은 정서적인 민폐를 끼쳤다. 어디가도 내 편이 없구나라는 실망감만 얻었다. 특히 노인 지식인들이 그러했다.


너무나 불쾌하고 실망한 나머지 그들 대부분을 칼로 무자르듯 말없이 선을 긋고 차단을 해버렸다. 도움은커녕 기분만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중후한 노신사에 대한 동경이 그저 환타지에 불과했음을 드러낸 서글픈 현실이었다. 일말의 양심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생각에 대해 “그거 재밌겠다” “한번 같이 해볼까?”라고 답했던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괴짜 취급을 하거나 철저한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했을뿐이다.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었고 고독한 존재였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평생을 내가 틀렸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불혹에 이른 지금은 “내가 맞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대 20대는 남들의 반응 때문에 긴가민가할 수도 있다. 30대에도 그 번민이 이어진다. 그러나 40이 되면 생각은 조금 단단해진다. 시간과 정서적인 성숙이 좀 더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지미 핸드릭스, 짐 모리슨처럼 27살에 삶이 마감될지 알았지만 기어코 마흔살까지 살아냈다.

3D 프린터, 애플, 테슬라, 비트코인 모두 나를 비껴나갔다. 그러므로 나는 수혜자가 아니라 상상에만 그친 셈이다. 그러니까 몽상가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먼저 생각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저 조소만 불러 일으킬 뿐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말을 별로 믿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여전히 바퀴벌레의 더듬이처럼 또다른 컬트를 찾아 나선다.


구슬땀을 흘리며 삽으로 땅을 헤집고 흙과 씨름하는 이 순간에도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 종말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또 다른 기술혁명이 벌어질 것이라는 그런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다.


그런 생각마저 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우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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