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보행

by 다람

인간의 육체는 효율이 좋다.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라 아주 탁월한 연비를 자랑한다.


적은 양을 섭취하고도 초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동물은 자연계에서 인간만이 유일하다. 가장 빠른 치타조차 인간만큼 초장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다. 신체의 탁월한 연비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등극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례로 북미 어느 인디언들의 사냥 방식은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가다가 제풀에 지치면 그제서야 도살을 하는 방식이다. 그 이동 거리는 무려 300km가 넘었다고 한다. 원시 인류가 어떻게 사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참새를 두고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했던 마오쩌둥에 혹했던 인민들은 본격적으로 참새 사냥에 나섰는데 방식이 아주 원시적이기 짝이 없다.

그저 무식하게 참새가 지칠 때까지 쫓아가거나 쫓았다. 인간 특유의 집요함에 넌더리를 낸 참새들은 이내 자취를 감췄다. 지치지 않는 체력, 그것이 인류다.

인간 신체의 탁월한 연비의 기원은 이족 보행에 있다. 두 손은 놀고 두 발만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자연스레 칼로리 소모량이 줄어들었다. 먹이감 사냥에 탁월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손아귀에 무기까지 쥐게 되면서 자연계에서 대적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


신체 활동량 대비 적은 칼로리 소모량은 원시 시대에는 축복이었겠지만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는 저주가 됐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 아직까지 잔존한 극소수의 희귀한 수렵채집민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300km를 걷거나 뛰는 현대인들은 거의 없다.


게다가 풍족한 고칼로리 음식이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는 이 시대엔 비만과 당뇨를 위시한 성인병이 가장 큰 고민으로 자리잡았다.


이족 보행이 칼로리 소모가 적다면 역으로 사족 보행은 어떨까?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스무살 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왔었다. 사족 보행을 하면 두손두발 다 사용하기에 완전한 전신 운동에 가깝다. 손이 놀지를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허리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 되므로 디스크에도 도움이 된다.

내부 장기들 역시 다시 재정렬하는 기회를 갖는다. 온전히 중력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두 다리의 부담은 두 팔로 전이되므로 관절염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 치질을 위시한 기타 항문 질환도 자세가 바뀌면서 당연히 혈류가 바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에 대한 효과에 반신반의하는 과학계조차 확실히 인정하는 부분은 분명 이론적으로 이족보행보다 사족보행의 칼로리 소모가 2배 내지는 3배 이상은 더 많다는 것이다.


막말로 2시간 걷거나 뛰는 것보다 2시간 기어 다니는 것이 인체의 부담도 덜 하고 더 확실한 다이어트 방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거칠게 표현하면 사족보행만 하면 적어도 다이어트에 있어서는 어떤 복잡한 운동 기술도 필요없다. GYM에 가서 고액을 지불하고 구태여 스쿼트나 데드리프트 같은 고차원의 자세 기술까지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스쿼트와 데드리프트 자세는 그저 단순해 보이지만 숙련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이다.

달리기는 체중 부하로 인한 무릎 부담이 아주 크고(물론 러너들의 무릎 관절은 건강한 경우들이 많다), 걷기는 명상적인 정서에 좋긴 하나 운동 및 다이어트 효과가 크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사족보행은 이 단점들을 모두 상쇄시키고야 만다.


그러나 항암효과와 자양강장의 으뜸인 마늘의 유일한 단점이 ‘냄새’라면, 사족보행의 유일한 단점은 꼴이 아주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보기에 아주 기괴하기에 그것 하나에 모든 장점들이 묻혀버리고야 만다.


나 같은 남자는 그러려니 해도 젊은 여성이 사족보행을 하기에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팔보다 다리가 길기 마련이고 사족보행을 하면 자연스레 엉덩이가 위로 치솟는다.


마치 묘하게 후배위 자세를 연상케 한다. 젊은 여성이 길가에서 그렇게 운동하다 보면 분명 몹쓸 인간들에 의해 성추행을 비롯한 성범죄의 표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사족보행을 두시간 정도 해보고픈 욕망이 있다. 현재 비만인 내 육체를 갖고 한번 실험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사족보행이 다이어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 가설이 맞을지 몹시도 궁금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까닭은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라 세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할 깡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기괴한 볼거리로 쳐다볼 시선이 공포스러운 것이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어록은 김영삼이나 홍준표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나 같은 심약자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겁이 덜컥 난다. 사족보행은 아방궁이 아닌 이상 집에서는 할 수가 없다. 공간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야외에 나가 마음껏 활보해야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아주 많이 늙어야 그제서 비로소 초연해질 수 있을까? 마치 길거리에서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방귀를 뀌어대는 어떤 노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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