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경우를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정작 그 위대한 이들조차 자식 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예수는 어차피 독신으로 33살에 생을 마감해 후손이 없어 논외로 치더라도 공자나 붓다, 소크라테스 모두 실패한 아버지였다.
사람들은 안회나 자로는 알아도 공자의 아들이 누군지는 잘 모른다. 인지도가 처참한 수준이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씨는 계속 퍼뜨려 대만인가 중국인가에서는 대대로 대접을 받았다카더라.
붓다의 아들은 라훌라인데 사연 자체가 기가 막히다. 라훌라는 팔리어 혹은 산스크리트어로 장애라는 뜻이다. 붓다는 그저 수행에 장애물이 된다는 의미로 하나뿐인 자식 이름을 ‘장애’라고 지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다.
이런 판국이니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물론 라훌라도 아버지를 따라 승려가 되기는 하지만(그마저도 읍소해서 제자가 된 것) 다른 기라성 같은 제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그냥 ‘붓다의 아들’ 수준의 포지션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의 자식들은 당대 어느 인물의 냉혹한 표현에 따르자면 “그저 저능아”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명성을 따르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일반인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적 수준을 가졌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만 이쪽의 경우는 지적 게으름이나 방탕함이 아니라 실제 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천성적으로 조금 모자라게 태어난 케이스라 연민만 든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역시 가정을 내팽개친 채 거리에 나가 사람들과 논변하며 노닥거리기만 했으니 결코 좋은 가장이나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희대의 악처로 여겨지는 크산티페가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그녀는 결코 악처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오에 겐자부로는 단순히 명성을 떠나 인간적 존경심을 갖게 만든다. 붓다가 사지멀쩡하게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라훌라, ‘장애’라고 지었다면 겐자부로는 자폐아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히카리, 그러니까 ‘빛’으로 지었다. 눈물겨운 부정이다.
모든 자식들은 라훌라와 히카리 사이에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라훌라가 될 수도 히카리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