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람

태평양 전쟁-대동아 전쟁 때 일본군의 포로로 전락한 미군이 종전 이후 수용소에서 풀려나면서 울분을 쏟아낸 적이 있다. “일본놈들 그 개자식들은 인간말종”이라며 “동물도 안 먹는 종이떼기를 연거푸 먹이며 우리를 학대했다”는 것이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학을 뗐다. 훗날 밝혀졌지만 미군 포로들이 먹었다는 종이는 ‘검은 종이’, 사실은 어이없게도 ‘김’이었다. 김을 난생 처음 봤던 당시 미군 입장에서는 마치 해괴한 종이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 웃지 못할 비극은 역설적이게도 2차 대전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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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포로들이 학을 뗐던 검은 종이를 가장 많이 먹는 곳은 우리집일 것이다. 반찬에 김이 빠지는 법이 없다. 김은 마법이다. 시쳇말로 아무 매력이 없는 사람을 밥맛이라고 하는데 밥 자체는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 데서 비롯된 의미일 것이다.


밥은 반찬을 위해, 반찬은 밥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아무 맛없는 맨밥에 단지 김 한 장만 걸치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몇 그릇이 금세 사라지니 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인가?

김의 기원이 중국 혹은 일본이라는 설도, 한반도라는 설도 있지만 분명한 건 인구 대비 김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특히 남조선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이 방한할 때마다 남대문에서 김을 한 보따리 사가는 이유가 결코 우연은 아닐테다.


상식적으로 그 의미는 일본 김보다 한국 김이 더 맛있다는 뜻 아니겠나. 단지 호기심으로 이국적인 맛에만 끌렸다면 이토록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치만큼이나 중요하게 홍보해야하는 것이 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김의 인지도나 성장세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 김은 수준이 참혹할 정도로 저질이고 일본 김은 밋밋해서 매력조차 없지만 한국 김은 아주 탁월하다. 김에 무려 들기름을 바를 발상을 했던 이름을 알 수 없는 옛사람의 세련된 미식은 알아줘야 한다. 들기름과 소금, 김의 조합은 맛에 있어서 마치 핵분열처럼 엄청난 화학적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김 양식뿐만 아니라 섭취 역시 친환경적이다. 해초들은 사실상 세계 각지에 무제한으로 널려있다. 고래처럼 멸종위기종도 아니다. 도리어 어느 나라에서는 무섭게 불어오르며 증식하는 해초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남조선은 이를 아예 먹어서 생태계를 조절한다. 김은 전세계 바다 도처에 널려있다. 기아와 빈곤을 비롯한 동물 사육 환경 파괴 논쟁으로 뜨거운 서구 세계에서는 다음 시대 미래 먹거리로 곤충과 해초를 꼽았다.

우리는 메뚜기를 먹어왔고 때때로 과거의 어린이들은 시큼한 개미 똥구멍을 핥아왔으며(농담이 아니라 고전 문학에도 적혀있는 내용이다), 여전히 번데기를 먹고 있다. 심지어는 말벌주라는 독특한 술까지 발명했으므로 곤충 섭취는 현재진행형이다.


미역과 파래를 비롯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수한 해초들도 한반도에서는 상식常食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김은 최고봉이다. 서구인들은 미역 특유의 질감과 미끈거리는 점성에는 질겁을 하지만 김은 스낵처럼 바삭거리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걔들이 김 맛을 아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사실상 무제한으로 널려 있는 해초들을 김으로 만들면 세계 빈곤과 기아 타파에도 굉장히 효과적일 것이다. 그야말로 김은 세계 평화의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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