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by 다람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이들은 아주 잘 알겠지만 반드시 한번쯤은 벽보처럼 붙은 <사랑의 편지>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 역사가 꽤나 유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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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지하철 판 <좋은생각>이다. 훈장 선생처럼 작위적일 정도로 따뜻한 말들만 적혀있어 따분할 지경이다.


그러나 분명 소수의 누군가는 반드시 이에 감동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잡초 같은 생명력을 유지할테다. 필진들을 뽑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종교 인사들이 심심찮다.


그 어느 날도 활자중독처럼 우연히 글귀를 읽었다. 재미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읽게 됐던 것이다. 어느 목사가 썼다는 글에는 으레 그렇듯 링컨의 실패담이 적혀 있었다.


몇 살에 낙선, 몇 살에 낙선, 몇 살의 낙선 등등 온통 낙선 투성이로 얼룩진 삶을 세세히 기술했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그다지 신선하지도 않았다. 목사의 귀결은 뭐였을까? 링컨의 대통령 당선을 화려한 피날레로 장식하며 “결코 실패에 낙담하지 말라!”는, 정말이지 뻔하디 뻔한 진부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이 내용을 대체 얼마나 사골처럼 울궈 먹는 건가 싶었다. 내가 알기로는 링컨 낙선 드립은 여러 연설과 설교에서 족히 수십 년째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물론 글쓴이 목사의 ‘좋은 의도’와 ‘선한 의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형편없는 글솜씨의 얼개와 별개로 그는 아마 인덕이 충만한 우리네 좋은 이웃일 것이다.


그러나 지적으로 게으르다는 인상만큼은 끝내 지울 수 없었다.


링컨은 대통령 당선 전까지 과연 실패한 인생이었나 한 번쯤은 삐딱하게 의문을 가져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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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나이 기준으로 비교해보자. 물론 링컨이 개고생을 했고 기구한 삶이었던 것은 결코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를 만회하듯 37살에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전에 여러 번 낙선 경험을 했으나 그 불우한 시절에도 그는 자가 명의의 아주 넓은 집도 보유하고 있었고 결혼도 했고 애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변호사였다. 당시의 변호사 인식과 현재의 인식이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유사 이래 변호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인텔리의 영역이었다.


변호사 출신의, 토끼 같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다복한 가정을 가진, 넓은 평수의 자가 주택을 보유한 30대 중반의 청년은 현재 우리나라 기준에서도 꽤나 상위 수준이다.


그가 설령 선거에 무수히 낙선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논리적 비약을 가미하자면 당시 낙선한 링컨이 가진 엄청난 액수의 빚조차(이를 갚느라 몇 년 간 등골이 빠졌다는) “빚도 재산”이라는 한국식 표현에 따르자면 감히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자본 수준이라는 반증이 된다.


상습 대선 출마로 한때 ‘대통령병 환자’라는 악명을 가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약 끝끝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한들 그를 실패자라 말할 수는 없다.


대통령에 실패한 것이지 따지고 보면 인생으로 치면 꽤나 성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궤로 매번 대선 때마다 아까운 석패를 했던 이회창 전 총재 역시 단지 대통령에‘만’ 실패했을 뿐, 인생 자체는 그야말로 화려한 성공 끝판왕 그 자체였다. 이 전 총재를 두고 실패자라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를 빗대자면 우리가 가진 링컨의 삶에 대한 처참한 인식은 정작 사실과 거리가 좀 멀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그다지 불쌍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엄청난 연민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기 위안을 하는 것이다.


이 가스라이팅은 주로 목회자들과 전문 연설가들이 빈번하게 저질러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정작 낙선자 시절의 링컨보다 훨씬 불쌍한 게 나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따지면 내가 더 최악의 상황이다. 가령 예를 들어 만약이라도 언젠가 내가 코딱지만큼이나마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링컨보다 풍성한 스토리는 많을 것이다.


하다못해 암울한 서사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 떠나서 결론은 뭐냐. 사실 링컨은 초년운이 없기는 했지만 심각할 정도로 그렇게 불행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진짜 막장이었으면 선거 출마 이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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