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정치에 철저히 무지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말한다.
홍준표 전 시장에 대한 내 감정은 꽤나 양가적이다. 좋아하는 부분도 있고 싫어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홍 시장은 이대남들의 우상이다. ‘홍카콜라’라는 말처럼 시원시원한 발언이 이대남들의 심금을 울렸다.
기존의 기성 정치인들은 아주 저열하거나 뻔뻔하다. 위선자마냥 그저 듣기 좋은 맹탕같은 말만 옹알이처럼 지껄이거나 혹은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의심케 할 정도의 폭언을 서슴치 않고 쏟아낸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역겨워하는 것이다.
반면 홍 시장은 막말은 해도 나름의 해학이 있다. 분명 표현이 거칠기는 한데 속 시원하게 내지른다.
게다가 적당히 탄탄한 논리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의 (누군가에게는 똥고집처럼 여겨질) 곤조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남 눈치에 광기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한국 사회 특성상 홍 시장의 거침없는 입담에 일종의 카타르시스 내지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더불어 정말 입만 열면 똥만 싸지르는 저학력 무지성 극우 유튜버와 다른 점은 그가 정식 루트를 밟은 인텔리라는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은 언제나 인문계 끝판왕이다. 배운 사람 입에서 나오는 시원시원한 발언이 가지는 파급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파워는 “웃기다”는 점에 있다. 얼핏 꼰대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인데 그냥 꼰대라고 막연히 치부하기엔 말을 너무 재미있게 한다.
적어도 그가 방송계에 출연하면 최소 몇 번 이상은 게스트를 빵빵 터뜨리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호불호를 떠나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누가 뭐라든 쌩까고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점에 대해서 일말의 ‘간지’마저 느껴진다. 이건 결코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홍 시장에게 갖는 호감이다.
반면 그는 요설妖說을 많이 한다. 유시민 전 장관을 일컬어 요설만 한다고 조롱했던 이가 정작 본인마저 요설을 하는 것이다.
유 전 장관도 요설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홍 시장과 함께 도찐개찐이다.
말도 안되는 궤변을 아주 그럴듯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수능란하게 넘어간다. 정치판에서 수십 년간 구른 연륜과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이 한몫할 것이다.
오른쪽에 홍준표 시장이 있다면 왼쪽에는 박지원 의원이 있다. 둘 다 교활한 늙은 여우들이라는 점에서 데칼코마니다.
언젠가는 한번 어느 3류 종편의 <강적들>이라는 프로그램에 홍 시장이 출연했다.
그는 김문수 전 장관을 디스하며 “원래 좌파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말한다. 김 장관이 운동권에서 보수로 돌아 선지는 강산이 세 번 바뀔 정도의 아주 오랜 시간이다. 홍 시장은 여전히 출신에 연연한다.
무조건 시작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장관이 전광훈 무리와 어울려 다니는 극우건 말건 시작점이 좌파면 죽을 때까지 좌파라는 논리다.
마치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식이다. 말도 같잖은 소리다.
예컨대 가톨릭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며 신학 체계를 세운 아우구스티누스는 청년기 마니교 신자였다. 홍 시장 스타일대로라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을 때까지 마니교 신자로 여겨져야 한다.
너무 먼 옛날 고릿짝 시절 이야기 같나? 반인반신이라 여겨지며 한국 보수의 아버지 격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신은 남로당이다.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박정희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빨갱이인가? 이게 말도 같잖은 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내가 더 어처구니없었던 건 그 프로그램에 모인 패널들의 반응이었다. 기라성 같은 언론인, 나름 똑똑한 척하는(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이미지의 어느 개그맨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이에 대해 반론은커녕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마치 선생님 앞 조신한 학생처럼 그냥 듣는 거다. 그들이 정말 몰라서 말을 안 하는 건지 알면서 그냥 분위기 따라 넘어가 준 건지 모르겠는데 그 태도들이 참 석연치 않았다.
정작 홍 시장 본인도 피해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자서전에 적었던 돼지 발정제 사건이 그것이다. 추잡한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성에게 돼지 발정제를 먹였던 건 홍 시장이 아니라 타인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를 미워하던 언론은 마치 홍 시장이 범죄의 주범인 것마냥 왜곡과 호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당연히 그 책을 읽었을 리 없는 대중들은 홍준표라는 이름 대신 ‘홍발정’이라는 더러운 별명을 지어줬다.
내가 당사자라면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참았다. 그 마인드 만큼은 존경한다.
그러니까 자신도 왜곡의 피해자면서 어떻게 타인을 왜곡할 수 있는가라는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사실 홍 시장의 잔재미는 궤변과 요설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드립으로 천연덕스럽게 때우는 부분이다.
언어의 기예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밉거나 역겹다는 생각조차 안든다.
오히려 호감마저 드니 그건 가히 초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