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수령은 지하철에서 책 보는 사람들의 유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책을 봤고 책이 아니면 타블로이드 신문, 하다못해 무가지라도 펼쳐서 읽었다.
이제 대중교통 내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종 수준을 떠나 멸종 위기종에 가깝다.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버스나 전철에서 책을 안 읽는다.
아니 못 읽겠다.
어찌 된 영문인지 집중이 안 된다. 스마트폰으로 기껏해야 쓰잘데기 없는 기사나 읽는 판국이다.
때문에 대중교통에서 책 보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앞서 밝힌 대로 일단 희귀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저열한 시대를 지탱하고 견인하는 훌륭한 교양인들이라고 생각한다.
1년 전 나는 아주 경이로운 불가사의를 경험했다. 2호선 전철에서 내 맞은편 여자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많게 봐도 열 살쯤 됐을까 누가 봐도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아이가 무려 데카르트를 읽고 있었다.
아동용 데카르트 만화였다면 아주 대견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 표지가 아동용이 아니라 무려 번역본이었고 심지어 아주 두꺼운 벽돌 책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방법서설』이었는지 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데카르트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워낙 어중간하게 읽어서 뭐라 말하기가 그렇지만 분명 내 기억에 스쳐 지나갔던 유명한 제목이었다.
“아니 저게 이해가 되나?”라는 생각에 나는 내심 마치 초능력자를 검증하는 제임스 랜디처럼 유심히 아이를 쳐다봤다.
놀랍게도 읽는 속도나 페이지 넘김이 너무 자연스러웠고 굉장히 꼼꼼히 읽는다는 인상이었다.
“너 이게 이해가 되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정말이지 다가가서 따져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차마 말을 못 걸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어린 초등학생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꽃처럼 예쁘장하기까지 해서 말을 걸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혹여나 주변의 오해를 살까 봐 겁이 번쩍 나서 두려웠던 것.
반면 아마 남자아이였다면 대번에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도 남았다.
묻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았다.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 많았다.
저 아이는 송유근이나 김웅용 같은 계열일까?(물론 그들은 실제와는 달리 신화화된 측면이 있다) 어쩌면 저 아이는 장차 한국의 한나 아렌트나 보부아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찌 됐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고 젊고 감각적인 2호선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나는 그것을 일상의 경이로운 불가사의로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