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나라

by 다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교수는 가히 도서계의 인플루언서다. 기가 막히게 돈을 잘 버는 사람이다.


평생 학문에만 정진하고도 제대로 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골방에서 아사餓死하는 학자들이 태반인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MZ 세대'라는 해괴망측한 신조어를 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해도 MZ세대의 연령층을 곰곰히 따져보면 말도 안되게 포괄적이다. 부모와 자식을 한 세대로 싸잡아 버리는 아주 기괴한 묶음인 것이다.


나는 이 기준이 도대체 어디서 기원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재미있는 건 김 교수가 발명한 'MZ 세대'라는 단어를 언론이 일말의 여과없이 무지성적으로 받아 썼다는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두메 산골 개척 교회의 목회자 설교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정재계 인사들까지 그야말로 개나소나 남발하는 시대의 단어로 자리 잡았다.


애시당초 외국에서는 그런 표현을 쓰지도 않으니 온전히 한반도용 단어에 국한되지만 사실 그게 뭐 대수인가? 사람들은 그러든 말든 그것에 큰 관심이 없다. 대중은 언제나 진실보다는 유행을 좇기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김 교수의 히트작은 <트렌드코리아>다. 매년마다 발행되는데 언제나 교보 베스트 셀러를 놓친 적이 없다.

마치 봄만 되면 징그럽게 울려 퍼지는 '벚꽃엔딩'처럼 <트렌드 코리아> 역시 아마 그에게 적지 않은 쏠쏠한 연말 연금이 될 것이다.


잘 팔린다는 것은 대중의 욕구를 반영했다는 증거다. 그는 굉장히 영리하기에 이미 이 나라의 성향을 충분히 간파했고 덕분에 히트작만 엄선해서 쏟아낸다.


유행에 미친 나라에서 <트렌드 코리아>가 잘 팔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오죽하면 그의 전공이 소비자 학과이겠는가? 그 누구보다 대중의 니즈를 가장 잘 아는 작가다.


이 나라 도서의 흐름을 내가 처음 인식한 건 아마 여섯, 일곱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정식 스님이 아니었던 석용산 승려의 <여보게 저승갈 때 뭐 가지고 가지>나 지금 봐도 유치한 김진명의 애국주의적 소설 따위가 90년대를 뜨겁게 달궜다.


우리 집 서가에 그 책이 꽂혀 있었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더불어 인도를 정신의 나라로 여기던 오리엔탈리즘(이미 서구 세계에서는 몇 물 가버린)도 유행해 류시화나 홍신자 풍의 책들도 많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도서계에는 언제나 그런 대중의 알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오늘날은 재테크나 주식, 말랑말랑한 귀여운 에세이, 자기계발서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시대다.


물론 이제는 그것조차 단물이 조금씩 빠져 나가는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세 등등한 것은 사실이다.


그 틈새 시장에서 고전팔이들이 등장했다. 쇼펜하우어 열풍 따위라든지 뭐 그런 부류들 있지 않나? 조금만 대충 훑어보면 고전의 탈을 쓴 사실상 자기계발서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어떻게 살아라!" "어떻게 해야 이롭다!" 식의 처세서 같은 느낌이다.


쇼펜하우어는 시대의 지성이긴 했으나 굉장히 기괴한 인물이다.

헤겔에 대한 질투심으로 본인이 기르던 애완견에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심심하면 화풀이로 걷어차질 않나 여성은 멍청한 동물이라는 여혐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사창가를 매번 들락거리며 동물적 욕구를 풀었던 인격적으로는 쓰레기에 가깝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전공자 외엔 거의 없다. 도리어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한 현자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쇼펜하우어 자체가 굉장히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염세적인데 어떻게 이것을 자기계발서로 만들었는지 나는 오히려 이를 말랑말랑하게 변주한 저자들의 창의성에 경의를 표할 지경이다.


미니 포켓북 같은 쇼펜하우어는 읽어도 정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은 이는 거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쇼펜하우어를 안다고 자처한다.


내가 어릴 때는 쇼펜하우어가 거의 디오게네스 급으로 다소 마이너해서 도덕 교과서에서조차 10줄 이내로 간략하게 기술했으니 오늘날의 열풍이 참 신기한 측면도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내가 사이비 고전팔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마치 그것을 바이블처럼 추종하는 태도 때문이다.


물론 고전은 여전히, 그리고 굉장히 중요하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지나친 현실 정치 감각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듯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전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어느정도 견지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대를 초월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시대의 한계도 안고 있는 것이 고전의 필연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대단한 당대의 천재도 시대를 완전히 초월한 인물은 없다.


천재 중의 천재인 아리스토텔레스나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같은 인물조차도 차마 시대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매번 이 나라 위정자들이 종달새 마냥 읊어대는 <목민심서>는 사실 이 시대 민주주의에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대중을 '사고하는 시민'이 아니라 '어리석고 불쌍한 백성'으로 여기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분명 정약용의 본 의도는 좋았겠지만 21세기에는 맞지 않다.


예컨대 어느 정치인이 정약용 마냥 대한민국 국민을 일컬어 "어리석고 불쌍해서 연민이 든다"라고 지껄인다면 그 여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는 코흘리개 삼척동자도 안다.


내 처지가 아주 빈궁한 터라 혹시나 고소당할까봐 굳이 특정하지는 않겠지만 고전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작가가 몇 있다.

그저 알량한 판단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의 주장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일컬어 "누구나 지껄이지만 정작 그 누구도 읽은 적은 없는 책"이라는 희대의 독설을 날렸다.


사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마크 트웨인이 조롱하고 혐오했던 그런 치에 가깝다. 이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대중들이 가진 고전에 대한 '정답 환타지'는 외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리학자들이 그 어려운 양자역학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해도 안되고 잘 모르니 역으로 뭔가 대단한 게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심리와 비슷하다.


정작 고전을 통해 부자가 된 이는 거의 없는데 책 쓴 저자만 왕창 떼돈을 벌었으니 '고전으로 부자되기'가 아예 거짓말이나 헛소리는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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