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

by 다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느 초등학교를 막론하고 구령대 옆 돌판에 깊게 각인된 훈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 유명한 '지덕체'가 주인공이다. 마치 집단적으로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듯 다 똑같다.

ghffhgfhgf.JPG

칙칙한 재색 빛 양복을 입은, 당장 내일 쓰러져도 그다지 이상할 법 없는 늙다리 교감은 그 추운 엄동설한의 겨울, 천지분간 못하는 코흘리개 아이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며 항상 지덕체를 강조했다.


그놈의 맹탕 같은 말이 얼마나 긴 지 한번 시작하면 20분은 기본이었다. 이제 갓 여덟 아홉 살 된 햇병아리들이 도대체 뭘 알겠으며 또 코흘리개들이 본인 말에 심취하리라고 오판하는 그 교감은 어떤 의미에선 지독하게 한국적인 교육자였다.


지덕체가 뭔가? 몸보다 덕이 먼저고 덕보다 아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그가 뭘 알고 떠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남들이 좋다 하니 앵무새 읊듯 똑같이 지껄였을 확률이 높다.


원래 한국인들은 그렇기 때문이다. 내 평생의 경험상 한국인들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는 인물이 극히 드물다.


무지성적으로 "옛 어른들 말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며 힘 빠진 방귀 소리처럼 맥없이 읊조리는 노인들과 다를 바 없다.


하다못해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제아무리 위대한 서적이라도 반드시 비판받을 부분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 땅은 정치고 사상이고 종교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그저 덮어놓고 맹신하는 교조주의에 충실한 곳이다.


그 기원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지능과는 무관한 교육의 문제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식이 덕보다 먼저'라는 지덕체 사상은 아주 오랜 기간 한반도의 정서를 지배했고 우리는 그 후과의 부작용을 통렬하게 겪고 있다.


지식을 무기로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는 배운 악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 좋은 머리로 세상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개인적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것이다.


내가 생각한 건 뭐냐? 오히려 지덕체가 아니라 덕체지였다. 단지 순서만 바꾼 것이다.


지식보다 덕이 중요하고 그 덕을 올곧게 유지하려면 반드시 체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덕이 먼저며, 그 덕을 지탱할 몸, 최후의 마지막이 지식이다.


"악을 묵인하는 것도 악에 동조하는 것"이라던 김대중 씨의 표현을 내 스타일대로 변주하자면 덕이 없는 지식은 악이다.


훗날 알게 됐지만 정말이지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고종 황제와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이 그 주인공이다.

다운로드 (21).jfif

역사서에 따르면 고종 황제와 안창호 선생은 '덕체지'를 강조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누가 장난질을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덕체지가 소리 소문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덕체로 바뀌어 버렸다.


옛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통찰력은 적어도 현대인보다 훨씬 앞서 나간 셈이다.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인물 중 한 명은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는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선배 과학자였던 패러데이처럼 겸손했으며 재기 발랄하고 장난끼가 넘쳤다. 게다가 권위주의를 지독하게 혐오했다.


파인만은 호기심도 재능이라고 말했다. 남들은 숫자놀음에 익숙한 수학 능력이나 해박한 지식을 재능이라고 여기는데 오직 파인만은 달랐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파인만을 흉내 내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회로부터 우습게 취급받는 재능들을 비로소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염치다. 재능이라는 것은 뭔가? 그것은 대개 희소성에 기반한다. 적반하장에 몰염치한 인간들이 천지인 이 세상에서 염치는 도리어 엄청난 재능과도 같다. 부끄러움조차 없는 인간들이 태반이다.


내 짧은 인생 경험상 염치 있는 덕자를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나를 아는 이들은 어느 정도 대강 짐작하겠지만 사실상 예스맨에 가깝다. 처음 마주한 낯선 상대에겐 우선 일부러 원하는 대로 받아준다.


정말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웬만해선 요구를 다 맞춰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두세 번 그렇게 하다 보면 슬슬 인간 그릇의 사이즈가 나온다. 비로소 본성이 보이는 것이다.


사람을 호구로 보거나 혹은 은혜로 받아들이는 인간형이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 그런 식으로 호의를 베풀면 95%의 인간이 만만한 호구로 취급했다.


나머지 5%만이 그 고마움을 인지한다. 그러니까 덕이 있는 인물들이라는 뜻이다.


당연하게도 95%의 몰염치한 인간들은 걸러 버린다. 대판 싸우거나 지지고 볶을 필요도 없이 조용히 차단 버튼을 누른다.


괜한 에너지 소모에 지칠뿐더러 애초부터 인간성이 글러 먹은 그런 치들은 제 잘못을 지적받으면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앙심을 품고 치졸한 복수를 하기 마련이다.


굉장히 피곤해지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불상사를 막고자 말없이 연락을 끊고 쌩까는 편이다.


애석하지만 물론 정작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부지불식간에 민폐를 끼치며,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악인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내가 나를 잘 안다는 말만큼 위험한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전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