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장 경험이 짧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재직했던 직장의 사장들은 이상스러울만치 고학력자였다.
어느 소도시의 의료 재벌이었던 사장은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명문 의대 출신이었고 그다음 직장의 사장,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아주 악랄하기 짝이 없었던 노인은 서울대 출신이자 유신 정권 장학생으로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시절에 일찌감치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이었다.
오늘날로 굳이 비유하면 삼성 장학생으로 보면 될 것이다. 마지막 직장의 사장은 아예 와세다대 유학파 출신이었다.
놀랍게도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천우신조, 특출난 머리로 그 자리까지 올라온 자수성가형 인물이라는 점이다.
나는 어렸을 때 자수성가형 인물들에 대한 일말의 동경과 환타지가 있었다. 빈궁한 처지에서 열심히 노력해 성공했다면 분명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같은 처지의 약자들을 이해하리라는 희망 말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정작 현실은 정반대였다. 가난했던 경험의 트라우마 탓에 인색하기 짝이 없었고 본인이 그런 환경에서 성공했다는 자만감에 직원들을 하대하기 일쑤였다.
도리어 "나는 이런 환경에서도 해냈는데 왜 니들은 못하냐?"는 심보다. 뭐 그런 사고방식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내 복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박약했다.
타인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고된 시집살이를 경험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더 악랄해진다는 옛 속담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반면 타고나길 금수저 출신들은 참 희한하게도 상대적으로 너그럽고 관대했다. 진짜 서울 토박이들은 소위 4대문 안 출신들이 많은데 그들을 제외한 천만 서울 시민들의 대다수는 사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의 자손인 경우가 태반이다.
조상 때부터 4대문 안에서 자라온 이들은 태생부터 윤택한 삶을 경험했기에 타인에게도 본인같이 그렇게 대접하는 스타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말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된 가난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겪은 몇몇 경험들을 감히 칼로 무 자르듯 일반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건 기존의 신념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촉매제가 되기는 했다.
예컨대 "힘없는 약자는 언제나 선하다"라는 식의 그 말도 안 되는 고정 관념 말이다. 논리적으로 봐도 선과 악은 가진 힘과는 그다지 별 개연성이 없다. 사실상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불과한 것이다.
재벌 3세가 무조건 악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선하다고도 볼 수 없는 경우와 같은 이치다.
동사무소 말단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들이 직업에 가장 회의감을 갖는 순간이 차상위 계층이나 장애우들의 갑질을 맞이할 때다.
이제 갓 들어온 신입 직원이 그들의 고성방가와 상식을 초월한 추태에 충격을 받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니 오죽하면 반농담조로 사회복지사를 극한 직업이라고 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약자라 해서 반드시 다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닐게다.
여튼 직장 경험의 탓일까? 어쩌다 우연히 자수성가형 인물을 마주칠 때면 나는 무턱대고 그의 대단함을 칭송하기보다는 먼저 뿌리 깊은 의심부터 들곤 한다. 어떤 본능적인 직감처럼 말이다.
진정한 자본주의의 비극은 단순히 부와 가난의 격차가 아니라 자본이 인성마저 만든다는 서글픈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