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부시

by 다람

어른들이 고전과 명작을 읽으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정말 놀랍게도 걸작들은 세월이 흐를 때마다 다양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10대 때 읽었을 때와 30대에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이다. 그 시절엔 좀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며 색다르게 해석이 된다.



연륜의 가장 큰 장점은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명작은 그 결말을 알면서도 또 본다는 말이 있겠는가?



어디 비단 텍스트뿐이랴. 명작 영화나 명반 역시 동일하다. 나 역시 10대 때 들었던 핑크 플로이드와 지금 듣는 핑크 플로이드는 완전히 다르다.



어느 한 인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지독하게 혐오했던 사람이 반대로 지금은 좋아질 수도 있다. 상전벽해가 반드시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게다.



아들 부시, 그러니까 조지 워커 부시가 내게는 그런 케이스다. 철없던 중학교 시절 나는 사실상 한국판 홍위병이나 다름없었고 조지 부시를 미 제국주의의 수괴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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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제3세계를 착취하는 미국판 히틀러라 생각했다. 도리어 북괴를 미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민족의 자존심처럼 추종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를 위한 조금의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나뿐 아니라 애고 어른이고 모두가 그랬다.



조지 부시를 조롱하는 조지고 부시고라는 조악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버젓이 학급에도 나돌았고 대략 비슷한 시기 벌어진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들불처럼 번진 반미주의에 그야말로 기름을 쏟아붓는 격이었다.



전교조 교사들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외려 독려했던 기억마저 남아있다.



심지어 다음 까페에 '김정일 팬 까페'가 버젓이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이건 결코 농담이 아니다.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인 호쾌한(물론 가증스런 연기에 불과했지만) 모습은 브라운관을 통해 한국민에게 적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급기야는 팬 까페까지 등장했다.



당시 화기애애한 남북 분위기에 휩쓸려 국가보안법도 그다지 큰 힘을 쓰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라크와 리비아, 북한을 악의 축으로 여기며 조지겠다 으름장 내던 조지 부시를 많은 국민들이 혐오했다. 어디 우리 국민만 그랬나? 가히 전 세계적인 반미 열풍이 불었던 시기다.



조지 부시는 정말 전 세계인들이 극도로 미워하던 인물이었다. 내가 2007년 런던을 여행했을 때도 오죽하면 부시의 얼굴에 콧수염을 그린 히틀러 패러디 포스터가 도시 곳곳에 붙어 있을 정도였다.



욕먹으면 장수한다는데 그때 먹은 욕만 모아도 거의 수 억 년은 살 기세다.



그저 사탄의 자식쯤으로 여기던 조지 부시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퇴임 후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서였다. 대외적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대단히 선량한 인물이었다는 것.



악의 축 발언 역시 독실한 청교도인 부시가 북한 인민의 참상을 보고 도저히 분에 못 이겨 쏟아낸 발언이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며 달리 보이게 됐다.



게다가 정작 선량한 부시의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호전적인 정책들이 모조리 네오콘 세력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웠다.



부시는 소아 시절부터 ADHD를 앓았고 대통령이던 부친의 거대한 그늘에 압박감을 느껴 청년기 내내 방황하며 마약과 알콜 중독 증세에 시달렸다. 자애롭고 품격 있는 현명한 로라 부시 여사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사랑하는 그녀 덕분에 그는 돌아온 탕아가 됐다. 비로소 사람 구실하게 된 것이다. 개딸들 말대로 조진웅이 아니라 부시가 진정으로 개과천선의 가장 훌륭한 사례다. 역시 남자고 여자고 간에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세 가지다. 부시는 후임 대통령 오바마의 취임식에서 영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마치 아기처럼 뒤로 포옥 안긴다. 서로 다른 정파를 가졌음에도 정말 세련되고 격조 높게, 그리고 귀여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화합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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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칼춤 추는 듯한 극단적 긴장의 한국 정치사에서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 반드시 죽여야만 살아남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 부시의 장례식에서의 모습이었다. 아들 부시는 추도사에서 아버지를 일컬어 "아버지는 완벽한 인물이었지만 다 완벽하지는 않았다"며 "쇼트 게임은 형편없고 춤 실력도 별로 없었다"고 드립을 날린다. 청중들은 피식거리며 박장대소한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아버지는 채소를 잘 못 드셨습니다. 특히 브로콜리를요." 끝없는 드립의 향연이다. 한국 정서상 울고 짜고 곡을 하며 엄숙해야만 하는 장례식장에서 그네들의 웃음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말미에 아들 부시는 아버지를 기억하며 "위대하고 고귀한 분, 최고의 아버지"라고 울먹이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세 살 때 죽은 동생 로빈의 일화까지 대단히 슬픈 기억들을 소환한다.



참석자들을 웃겼다 울렸다 들었다 놨다하는 부시의 추도사는 그 자체가 예술이며, 서두에 깔아 둔 가벼운 유머는 되려 슬픔을 극대화시킨다.



"유머는 언제나 슬픔과 비극에서 나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변주하자면 "슬픔을 고양시키는 것은 역설적으로 유머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부시의 추도사를 보며 미국이 괜히 초강대국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감히 내 평생 저렇게 품격 있는 슬픈 유머를 목도한 적이 없다.



게다가 이 나라 3류 정치인들처럼 작위적이지 않고 너무나 감동적이다. 유머와 진솔함, 거기서 파생된 역설의 슬픔은 대단한 고품격의 예술이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영미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조선 반도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장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아주 단순한 생각을 가진 치들로 가득한 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시는 퇴임 후 유화에 빠졌다. 여가 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처칠의 영향을 받았다. 색감도 독특하지만 날이 갈수록 회화 수준이 일취월장한다.



심지어 그는 재임 시절 은근한 대립각을 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직접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손수 그린 노무현 초상화를 선물하기도 했다. 대단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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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에게서 카터 대통령의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카터는 대통령으로는 철저히 실패했지만 퇴임 후 왕성한 봉사 활동으로 오히려 지지율이 높아지는 기현상을 일으킨 적이 있다.



부시 역시 재임 기간 내내 각종 실언과 무지를 드러내며 온갖 구설수와 맹비난에 시달렸지만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비로소 인간 부시의 진면목이 드러나며 대중들의 호감을 샀다.



비록 대통령감은 아니었을지언정 개인으로서는 이보다도 훌륭한 인물이 없다. 전임 대통령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그렇고 그런 추잡한 성 추문에 휩싸였던 것과 비교해 부시는 여자 관계로 일절 문제가 없었다. 평생 한 여자, 처 로라 부시만 사랑했던 애처가였다.



어려서부터 지독하게 혐오하던 부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무려 25년이 걸렸다. 25년은 한 아이가 태어나 학창 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아주 장구한 시간이다.



나는 부시의 경험을 통해 어떤 한 인물을 관찰할 때 단편적으로만 판단하지 않게 되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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