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함의 역설

by 다람


스티브 잡스를 천재가 아니라고 부정할 이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자수성가의 상징이자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자유로운 미국형 천재의 전형이다.


오래전, 전기 작가로 유명한 윌터 아이작슨이 집필한 잡스 평전을 읽으며 나는 도리어 유전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잡스의 생부는 시리아 출신이고 생모는 유대인이다. 그 둘은 유복한 집안의, 당시로서도 꽤나 고학력자 대학원생이었고 종교와 인종을 초월해 뜨겁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사랑의 결실이었던 잡스는 졸지에 입양아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겨우 20대 중반에 불과했던 어린 유대인 생모는 중요한 입양 조건을 하나 걸었는데 "양부모는 반드시 대학 졸업자일 것"이라는 단호한 신념이었다.


배움에 집착하는 천성적 유대인의 기질만큼은 결코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언제나 운명이 그렇듯 모든 게 순순히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어찌저찌하여 고졸이 최종 학력의 전부인, 그러나 누구보다도 선량하고 따뜻한 무지랭이 노동자 부부에게 입양됐다.


그들은 입양아 잡스에게 지식을 주지는 못했으나 누구보다도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무지랭이 양부모에게서 자라난 잡스는 어떻게 그런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부터는 환경이 아니라 유전자의 영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생부와 생모의 지능이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게 내 알량한 가설이자 추측이다.


잡스의 일화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스토리와도 같다. '출생의 비밀' 혹은 '막장' 따위 3류 드라마에 환장하는 한국민 정서상 입양아에서 천재 기업가로 거듭난 스토리가 너무나 드라마틱 하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서구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동양 사상과 히피즘에 영향을 받아 여느 청년처럼 21살의 잡스 역시 '정신의 나라' 인도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의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구축되는 경험을 했다. 그의 종교가 괜히 선불교인 이유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애플의 초기 기업 정신은 온전히 동양 사상과 히피즘에 영향을 받았다.

첨단 기술과 그 묘한 오리엔탈리즘적 이미지가 섞여 유행과 거대한 열풍을 일으켰고 끝내는 스마트폰 혁명을 통해 테크노 구루의 자리에 올랐다. 리드 대학 철학과 중퇴가 최종 학력인 잡스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언제나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했다.


이 여파는 세계적으로도 엄청나서 심지어 극동아시아 변방의 한국에서조차 뒷방 늙은이 퇴물 취급받던 인문학이 반짝 유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는 잡스의 동양적 자연주의가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고 생각한다. 대성공의 밑거름이기도 했으나 도리어 스스로를 죽이는 결과도 초래했기 때문이다.


말년의 잡스를 괴롭혔던 것은 췌장암이었다. 췌장암은 극악하기로 악명 높지만 의사들의 말을 따르자면 극초기에 발견하면 어느 정도 회복 가능한 병이기도 하다.


잡스가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수 억 원의 비용을 들여 유전자 스캔을 미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권유를 무시한 채 제 고집만 피웠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나름 생각한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방식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채식주의 자연식과 동양 대체 의학이었다.


현대 의학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훗날 그 결과는 우리 모두 다 잘 안다. 천수를 누리기도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천재의 역설' 말이다. 너무나 우수한 지능을 가진 천재는, 도리어 그 우수한 지능에 심취해 본인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오만의 착각에 쉽게 유혹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인가? 사방팔방 온갖 분야에 손댔던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현대 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이며 조악하기 그지없다. 제아무리 천재여도 그 시절은 한낱 고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IT 천재라 하여 현대 의학에 통달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인문학자가 난데없이 물리학을 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마도 잡스는 본인의 천재성을 대체 의학으로 확장했을 것이다. 뛰어난 지성에 기반해 볼 때 반드시 이게 맞다며 강력하게 확신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신념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잡스는 기업가지 병을 고치는 의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념이 아니라 똥고집만 부리다 저 세상으로 가버린 셈이다.

성공한 기업가 잡스 판단의 추동력은 언제나 '직감'이었다. 논리적으로나 수치적으로도 감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직감은 언제나 성공했고 이번에도 역시 감에 의존하다 개죽음만 자초했다.


비슷한 예가 어디 잡스뿐이랴.


한반도도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시대의 스승이자 고승으로 이름났던 성철 스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살아생전 사찰 법문에서 유리겔라의 초능력을 종종 거론했다. 불성과 초능력을 연관 지어 설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 사기꾼 때려잡는 제임스 랜디는 이미 유리 겔라를 처참하게 탈탈 털어댔다. 그리고 초능력자가 아니라 일개 마술사라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유리겔라는 완전히 몰락했다.


유리겔라를 거론하던 성철 스님 역시 그 순간만큼은 사기꾼에 까맣게 속아 버린 일개 범부에 불과했다. 그는 덕망 높은 고승이지 결코 과학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려가 과학을 운운하는 순간, 그것은 일종의 선을 넘은 행위와도 같다. 비록 윤리적 문제는 아니지만 성철 스님의 몇 안 되는 흑역사 중 하나다.


인생 멘토로 유명한 법륜 스님이 유사 역사로 판명난 <환단고기>를 들먹이는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디어와 담을 쌓고 사는 나지만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텔레비젼을 보면 연극 영화과 출신이 역사를 강의하고 코미디언이 고전을 강의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곤 한다. 성악과 출신이 인생 멘토로 등장해 명강연자로 유명세를 얻기도 한다.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전공이 온전히 그 인물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전공과 무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회 생활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다수가 전공과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해 설명하려면 최소한의 접점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주장을 설파하는 유명 인사라면 더더욱.


어설픈 지식은 언제나 틈이 있기 마련이며 이를 진짜 전문가가 본다면 굳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조악하기 짝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유명세만 얻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밀리언 셀러 <태백산맥>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조정래가 민족의 방향에 대해 시대의 선생처럼 이리저리 훈계하고, 정치와는 무관한 이문열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는 격이다.


장정일의 말마따나 책 10만 부가 팔리면 사회를 논할 수 있고 100만 부가 팔리면 국가의 대소사에 대해 이리저리 참견할 수 있다.


작가는 작가고 정치인은 정치인이며 사상가는 사상가일 뿐이다.


방송인이 본인의 유명세를 이용해 손쉽게 국회의원 되는 것이 꼴불견인 것처럼 특정 직업군이 유명세를 이용해 본업과는 완전히 무관한 분야까지 참견하는 모습이 다소 의아하긴 하다.


잡스가 제 천재성에 취해 전혀 다른 무지한 분야까지 오만하게 판단했던 것처럼 배울 만큼 배운 인텔리들도 종종 본인이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에 휩싸이곤 한다. 똑똑함의 역설이다.


전문 사기꾼들에 따르자면 가장 수월하게 속일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천치거나 의외로 인텔리들이라고 한다.


사기 피해자 중에는 심지어 사기꾼을 때려잡는 게 본업인 경찰, 법조인들도 있다 하니 중간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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