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여러 사람들을 겪어 왔지만 단언컨대 우리 집안 같은 지독한 유교 가풍은 본 적이 없다. 아마 평생 살아온 서울이 아니라 향촌 사회였다면 우리 집은 마을의 정신적 중심 유지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을 대소사를 묻기 위해 으레 찾아가는 격조 높은 어른 말이다.
어린 시절 기억하던 엄마의 모습은 칠흑같이 까만 밤, 주황색 스탠드 아래 논어나 맹자 따위를 읽거나 동양 고전들을 손 글씨로 열심히 필사하던 장면이었다. 살인적인 노동 속에서도 틈만 나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그렇게 옛 글을 읽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녀의 청춘기가 풍족한 환경이었다면 분명 박경리 선생이나 박완서 선생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으리라는 신념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혜린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천성적으로 궤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가 엄마의 한계다.
인류 최고의 천재 니콜라 테슬라는 생전 발명가의 꿈을 이식 시켰던 어머니를 기억했다. 그의 모친은 당시 천대받았던 여성에, 초등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던 일개 농군에 지나지 않았지만 탁월한 창의성과 독보적인 발명 실력을 갖고 있었다. 테슬라의 위대함은 모계 유전에 가깝다. "만약 어머니가 풍족한 환경이었다면 분명 나보다 더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을 것이다" 테슬라의 회고담이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석함, 그리움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나 역시 테슬라와 동일한 감정을 갖는다.
유교가 결코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학계의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조선의 패망은 상당 부분 성리학에 있었다는 점이 지배적이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이 조국의 멸망을 앞당겼다. 물론 리콴유 말마따나 유교 자본주의도 있지만 그건 특수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집은 한 마디로 일종의 서울 속 '작은 조선'이었다. 실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상의 감각적 트렌드와 담쌓았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갑갑한 부모님이라 청소년 시절 으레 가질법한 고민들을 어디다 토로할 곳 없이 온전히 스스로 고민하고 삭혀야만 했다. 그런 면에서 내게는 그다지 좋은 부모님은 아니었다.
종종 내가 나름 기발한 발상이나 상상력을 신나게 이야기하면 부모님은 으레 "허황된 생각을 하지 말라"고만 다그쳤다. 내 생각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우리 집은 애초부터 환타지나 만화, SF가 발아하기 힘든 척박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창의성과 발랄한 상상력이 없던 집. 심지어 웃는 소리도 천박하다고 웃지 못하게 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계급장 떼고 따지고 보면 유교의 교조인 공자만큼 허황된 생각을 가진 이도 드물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이었던 춘추전국시대 그는 대동사회를 꿈꾸었다. 허황의 끝판왕이다. 그는 정치적 환타지를 꿈꾸었다. 심지어 사후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동사회는 오지 않았다. 이상주의적 상상력을 펼쳤던 공자야말로 완벽한 몽상가 아닌가?
부모님은 장유유서의 법칙에 따라 어린 내게 언제나 어른과 권위 있는 인물에 대해 존경과 공경, 사실상 정신적 복종을 가르쳤다. "사람은 위 아래를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니체가 말한 노예의 도덕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리처드 파인만의 아버지는 달랐다. 고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자 일개 세일즈 맨에 불과했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파인만에게 "교황과 일반인은 그저 모자 하나 차이일 뿐이란다"라고 말했다. 권위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위인의 권위에 맹종하는 대신 한낱 초라한 인간으로 볼 것을 주문했다.
그 위대한 정서는 훗날 파인만이 대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일례로 당시 '과학계의 왕'이었던 닐스 보어 앞에서 풋내기 대학생 파인만은 굽신거리며 조아리기는커녕 겁도 없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비판한다. 우리 부모님 스타일대로 따지면 "위 아래도 모르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파인만의 도발에 보어는 화를 내기는커녕 껄껄 웃었다고 한다. "고 녀석 귀엽고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 셈이다. 그 정도의 통찰력이 있었으니 대 과학자였을 테다.
파인만은 평생 권위를 조롱하고 적대시했다. 허세 가득한 노벨상 따위는 받지 않겠다며 땡깡 부리다가 어느 누군가 "사르트르처럼 상을 거부하면 도리어 더 유명해질 겁니다"라는 주변 인물의 조언에 마지못해 승낙하고 만다. 그마저도 장난끼를 주체하지 못해 감히 '신성한 노벨상 수상식'에 뒤로 껑충껑충 뛰어 들어와 헉헉대는 숨을 애써 고르고 수상 소감을 남긴 것은 레전드다.
아이큐가 122에 불과했던(물론 일반인 기준에서도 아이큐 122는 꽤나 상위 수준이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굳이 멘사를 찾아가 "제가 여러분보다 멍청하지만 결국 노벨상을 수상하고 말았네요!"라고 은근히 엿 먹이는 농담을 던졌던 것이 파인만이다.
나는 수학을 위시한 이공계에 완벽히 무지하기 때문에 파인만의 이론은 전혀 이해조차 하지 못하지만 '인간' 파인만만큼은 지독하게 사랑한다. 그는 내게 있어 일종의 환타지 같은 것이다. 이뤄질 수도, 이뤄지지도 않았기에 항상 추종하고 추구하는 정신적 '이상'에 가깝다. 그처럼 권위를 아득히 초월할 자신이 없다. 어쩔 수 없는 조선놈의 한계다.
결혼 적령기를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만들고 싶다. 어쩌면 이 역시도 지독하게 척박한 한국 사회 여건상 (부모님의 지론을 빌리자면) 그저 '허황된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운 좋게 만약 내가 나를 닮은 아이를 양육한다면 나는 부드럽게 아이의 손을 붙잡고 파인만의 아버지를 흉내 내 "대통령과 일반인은 그저 양복 하나 차이일 뿐이란다"라고 알려줄 것이다. 나 같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 희생자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