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by 다람


개그우먼 김미화 아주머니나 어린 왕자 이승환 아재(이하 존칭 생략)는 반대편의 정치적 스탠스를 가진 사람들에게 대차게 까이는 연예인 중 하나다.


좌파라는 이유에서다.


글쎄 나는 그러든가 말든가 그다지 감흥이 없다. 하지만 정치색과는 별개로 정말 인간적으로는 그들의 심정이 한편으로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야만의 시대를 몸소 겪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41).jfif

김미화는 앳된 스무 살 때부터 희극인으로 활동했고 방송가와 권력의 추접한 결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온 인물이다.


심약한 어린 소녀에게 그 부조리와 패악질들은 가히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조선 시대부터 예인들은 언제나 광대 취급받아왔고 근대에 들어서도 그 의식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나라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사농공상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은 순서가 바뀌어 농민이 가장 바닥으로 내려갔지만 말이다.


이제 막 발아한 AI 시대는 조만간 최정점에 위치한 사士마저도 끌어내릴 것이다. 그야말로 일대 혁명이다.


막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 사건 당시에도 궁정동 안가에는 심수봉을 비롯한 당대의 여가수들이 권력자를 위해 온갖 교태를 부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엔 TV에서 요상한 표정이나 다소 맛이 간 듯한 드립을 치는 연예인을 보면 국가 권력이 일말의 거리낌 없이 강제로 끌고 가 체모를 비롯한 각종 약물 검사를 시행하곤 했다.


그러니까 나라가 부를 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뜻이다. "너네 같은 광대가 어디 감히 국가 명령에 도전을 해?"라는 식이다.


연예인-방송인들은 이쯤 되면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정권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결탁하거나. 변웅전, 강신성일, 최불암, 최근에 작고한 이순재 역시 권력과 손을 잡았다.


역으로 적극 저항한 방송인은 사실상 전무하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비겁한 게 아니라 외려 그게 더 당연하다고 본다. 당장 나라도 바짝 엎드렸을 것이다.


아주 아득한 시절 옛이야기지만 폐암으로 별세한 개그맨 이주일 아재가 정주영 회장의 지원을 받아 구리시 국회의원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언젠가 그의 자서전을 중고로 구해다가 읽어본 적이 있는데 서두부터 가관이다.

다운로드 (44).jfif

인텔리 왈曰 그의 글쓰기를 못 믿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광대가 글을 쓸 수 있냐는 의문에 결국 언론인들 앞에서 그는 직접 자필로 글을 써서 검사받는 치욕을 겪는다.


그러니까 당대 최고의 연예인이 무슨 언론 고시보는 수험생 취급 받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기가 막힌 촌극이다. 권력자들은 말해봐야 잔소리고 인텔리들마저 예인들을 홍어 좆같이 본 것이다.


이승환 아재도 워낙 동안이라 결코 실감이 나지 않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아티스트로 활동한 엄연한 노장이다.

다운로드 (42).jfif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청춘 시절부터 연예계 뿐 아니라 권력자들의 온갖 추악한 갑질 등 온갖 별의별 패악질들을 다 봤을 것이다.


뭐 개인적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 분노와 한이 자연스레 좌파로 흐르지 않았을까란 심증이다.


권력에 시달린 건 예인 뿐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희생자 중엔 재벌도 있었다. 물론 정경유착의 온상이라는 죄과를 온전히 떨칠 수는 없으나 가진 자들은 언제나 권력에 수탈당했다.


정치인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이번에 선거를 하는데 기업가들이 좀 후원을 했으면 좋겠다며 은근히 압력을 넣는 식이다.


그러니까 돈 안 주면 조질 테니 처신 잘 하라는 의미다. 너무도 순진하게 5공에 저항했던 국제 그룹이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됐던 것이 좋은 사례다.


나는 정주영 회장을 희대의 천재이자 정말 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깡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권마다 매번 삥을 뜯긴 한이 결국 그를 대선으로 몰게 만들었다.

다운로드 (43).jfif

얼마나 분노가 사무쳤으면 본인이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을까? 물론 기업가였기에 훌륭한 정치 철학이 있었을 리는 만무했겠으나 몇 가지는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건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금권 정치는 사라졌을 것이다. 더불어 기업가들이 권력자들에 맥없이 수탈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웬만한 기업가들은 권력자에 납작 엎드려 마치 천형天刑처럼 순종한다.


그러나 정주영은 달랐다. "내가 직접 대통령이 돼서 니들을 조져보겠다"는 것이다. 정주영은 노태우가 항상 앵무새처럼 지껄였던 '보통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안다. 민주화 열풍 양 김 씨에 탈탈 털려 3위로 낙선했다. 정주영은 "현대 사원들만 20만 명이 넘는데 어떻게 이렇게 처참한 결과가 나왔냐?"며 허탈해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선 과정 YS에게 제대로 밉보인 까닭에 문민 정부 내내 현대 그룹은 마치 쥐 죽은 듯 바짝 엎드리며 숨죽이며 버텼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당대의 호인이었지만 다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교차 검증이 있어야 하겠지만 故 뽀빠이 이상용은 종종 생전 본인이 정권의 희생자라고 주장하곤 했다.


황태자였던 소통령에게 정치 입문 제의가 들어왔는데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언론의 폭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법원이 판결해 언론의 거짓으로 드러난 '심장병 어린이 후원금 횡령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 이후로 제대로 된 팩트 체크가 없었으니 이상용의 말을 온전히 믿기도 어렵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문민 정부 시절까지 연예인을 그냥 한낱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광대 수준으로 봤다는 의미다.


오늘날 시대는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했다. 한낱 B급 황색 인터넷 언론에 불과했던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이제는 그야말로 상왕이 되어 정치계를 들었다 놨다 한다.


목이 빳빳하게 방귀 깨나 뀌는 거물들도 그 앞에서는 한없이 조신한 소녀가 되어 알랑방귀 뀐다.


그야말로 좌파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극우 코미디언 전광훈 마냥 '좌파 독재' 운운 따위를 외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분명 좌파가 이 시대의 대세가 된 것은 확실하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좌파 연예인들은 야만의 시대를 몸소 겪은 원로 세대들뿐이다. 연예계에 몸담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착취당했으니 그 뼈에 사무친 한과 분노의 심정에 인간적으로 철저히 공감하는 것이다.


좌파의 위선에 넌더리를 내지만 혹여 원로 연예인들처럼 그런 치욕의 경험을 겪었다면 분명 나라도 돌아버렸을 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