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영웅물은 개그맨 심형래 아재의 <우뢰매>였다.
지금 보면 기가 찰 정도로 조악하기 그지 없었지만 다양한 미디어가 척박하던 그때를 상기하면 코흘리개 어린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심형래 아재는 에스퍼맨으로 나와 못된 적들을 물리친다. 평소에는 실없는 얼빵한 바보 생활을 하다가 위기 때 무적의 영웅으로 변신하는 스토리가 배트맨이나 슈퍼맨을 빼다 박았다.
하지만 배트맨과 슈퍼맨은 일상에서 바보는 아니라는 점에서 우뢰매는 지극히 한국적인 영웅물이다.
어설픈 기억을 소환하면 지금은 별세한 배우 김수미 선생과 남궁원 선생이 실험실의 박사로 나오는데 특히 남궁원 선생은 탁월할 정도의 박사 포스를 팍팍 풍겼다.
놀랍게도 실제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어린 마음에도 정말 중후한 박사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진정성마저 풍길 지경이었다.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리는 남궁원이 왜 코흘리개 애들 특촬물에 출연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다. 한반도에 살았던 중고생이라면 필독서로 여겨졌던 홍정욱의 <7막7장>에 그 답이 나온다.
아버지 남궁원은 아들 홍정욱의 하버드 학비를 벌기 위해 밑바닥 밤무대까지 전전한다. 우뢰매에 출연한 것도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코흘리개 특촬물에 출연한 선택이 개인적으로는 개망신이자 치욕에 가까웠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0년대 어린이들에게는 축복이었다.
남기남식 미취학 아동용 영화가 만연하던 시절 출연자 중 그 어디에서도 남궁원 같은 명배우를 본 적이 없다.
오로지 우뢰매만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