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동네 헬스장.
다소 아담한 체구, 뱃살에 인덕이 아주 두둑한 중년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젊은 헬스 트레이너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갑자기 달려오더니 소리를 지른다.
"회원님 스쿼트 그렇게 하시면 무릎 다 나가요!"
여기까지는 별달리 이상할 것도 없는 일상의 아주 평범한 풍경이다.
그러나 사실을 파악하면 그 상황은 어처구니없는 촌극이었다.
젊은 헬스 트레이너가 '이상한 자세로 스쿼트하는 아저씨'라고 여겼던 그 중년 남자는 대한민국 최초의 역도 은메달리스트 전병관 선수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스쿼트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은 역도 선수와 파워 리프터 뿐이라는 데서 그 젊은 트레이너는 한 마디로 공자 앞에서 문자 읊은 격이었다.
전병관 선수는, 마치 술 쳐먹고 "내가 감히 누군지 아냐?"고 종업원에게 온갖 추태를 부리는 정치인들과 달리 트레이너에게 "내가 전병관인데!"라며 일장 연설하지 않았다.
그저 "아! 그래요?"라고 스무스하게 대처했을 뿐이다. 품격있게 젊은이를 배려한 것이다.
그렇다고 공자 앞에서 문자를 읊은 트레이너를 마냥 욕할 수도 없다. 분명 그가 했던 행동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회원의 부상을 염려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든가 말든가 양아치처럼 소 닭 보듯 방관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정말 굳이 죄과를 따져야만 한다면 단지 전설적인 상대를 몰라본 무지밖에는 없다.
살다 보면 젊은 청춘들이, 비유하자면 파인만 앞에서 물리학을 떠들거나 타이슨 앞에서 주먹을 흔드는 경우를 본다.
아직 덜 영글었기에 본인이 아는 세상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까닭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가장 좋은 예시다.
아마 근 8년 전쯤에 종로구 역도 생활 체육에 등록해 역도를 배운 적이 있다. 배웠다기에도 다소 민망한 것이 내가 천성적으로 학습 능력이 떨어져 제대로 익힌 건지도 여전히 의문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놀랍게도 역도 교실 선생님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이배영 선수였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그런 천재에게 역도를 배울 수 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축복이었다.
그는 걸쭉한 서남방언이 섞인 말투에 사람 좋은 농담을 자주 던지는 호인이었는데 운동 신경 없는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면 "아따 쉬엄쉬엄 혀!"라며 넉살스런 웃음을 짓곤 했다.
성장 가능성이 완전히 글러먹은 다 자란 일반인이기에 그렇게 부드럽게 했지 만약 내가 올림픽을 목표로 태릉에서 운동하는 선출 기대주 엘리트였다면 반응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스파르타식으로 아주 혹독하게 훈련시켰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재능 없는 일반인에 불과했기에 술렁술렁 대충대충 놀아가며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좀 신기한 게 있었다. 그가 내 스쿼트 자세를 단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지적하듯 스쿼트는 양날의 검이다.
잘 하면 하체를 발달시키지만 잘못하면 무릎이 날아가 버린다. 항상 그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잘 못된 자세로 하는 건 아닌가? 이러다가 무릎 다 망가지는 건 아닌가?
때문에 매번 이배영 선생에게 "제 스쿼트 자세를 봐 주세요"라며 참 귀찮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허무할 정도로 "괜찮네"라고 넌지시 말했을 뿐이다. 혹여나 일반인이라고 대충대충 보는 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어 또다시 물었다.
"코치님! 스쿼트는 무릎이 발을 나가면 안 된다고 배운 것 같은데 저는 무릎이 발을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의 대답은 너무 허무할 정도였다.
"사람마다 달러!"
나는 다시 되물었다.
"아니 어떻게 사람마다 다릅니까?"
"사람마다 다리가 생김새가 다른데 서양인하고 동양인도 다른 판에, 아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본인이 편한 자세가 맞아!"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무릎이 발을 넘어가도 크게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반신반의는커녕 그의 말을 '무조건' '반드시' 믿어야만 했다. 이배영 선생은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가장 잘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라는 가히 절대적 권위자다.
그러므로 삐까뻔쩍한 비싼 장비로 온통 도배질을 한 헬스장 젊은 트레이너들의 어설픈 스쿼트 자세 신념 따위는 그 앞에서 한낱 아기 옹알이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글은 반드시 서론, 본론, 결론 식의 체계를 갖춰야만 하는 논설문이 아니므로 조금은 엉뚱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체육 시간이 되면 선생은 공 하나 무심하게 던져주고 자기 할 일에 바빴다.
굴러가는 공만 보면 환장하는 강아지들처럼 아이들 역시 공놀이만 해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농구와 축구, 달리기 외에 체육은 거의 없었다. 간혹 체력 테스트 한답시고 턱걸이를 한다거나 멀리뛰기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몸의 움직임이나 부상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은 의미 없는 교육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농구와 축구 같은 집단 체육은 분명 성장기 정서적, 육체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게 평생 운동이 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5~60대에 왕성하게 축구와 농구를 하는 중노년은 많지 않다.
조기 축구가 있지만 김흥국 씨 같은 축구광이 아닌 이상, 하는 사람보다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노화로 인한 체력 손실 혹은 고관절 문제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도 격한 운동 때문에 십자 인대 파열이 빈번한 판국에 중노년이 되면 격한 운동 대신 느긋한 골프를 즐기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60대에 들어서도 농구를 즐기는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드문 케이스다.
그런데 분명히 확실한 것은 있다.
우리가 침상에 누워 죽는 순간 직전까지 반드시 들고 나르고 민다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90대 노인도 집안에서 화분을 들거나 소소한 물건을 옮긴다.
그 와중에 잘못된 자세로 허리를 삐끗하거나 무릎이 망가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데드리프트와 스쿼트 자세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부지불식간에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완벽한 이족보행을 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들은 사족보행을 겸해 불완전한 이족보행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는 일부 극소수의 유인원과 인간만의 전유물이다. 더불어 가장 부상이 많은 자세이기도 하다.
이것을 유아 교육 때부터 배웠어야 했다. 각종 미디어와 교육 수준이 발전한 현대 교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비를 지출하는 체육 도장 혹은 헬스장이 아니라 학교 체육 수업에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가 대신하지 못하는 교육을 대신 유튜브로 배워 홈트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학교 체육 시간에 반드시 '낙법'과 '심폐 소생술', '스쿼트', '데드리프트'를 필수로 지정하겠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이며 실용적인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낙법 역시 이족보행하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이다. 사족보행하는 대부분의 동물에게 뇌진탕은 드물다. 사족보행 자체가 굉장히 안정적인 자세이기 떄문이다.
그러나 온전히 두발만으로 체중을 지탱하는 인간은 소위 '자빠져서' 뇌를 다쳐 죽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 빙판길에 미끄러져 낙상하는 노인들만 봐도 낙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다.
크게 다칠 것을 덜 다치게 만드는 훈련이 곧 생존 훈련이다.
우리 교육은 지금까지 너무도 중요한 것들을 너무도 가볍게 경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