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by 다람


내가 가진 삼성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개인적으로 삼성을 좋아한다. 일단 평생 삼성폰만 썼을뿐더러 우리 가족 역시 삼성과 일말의 연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자랑스러워한다.




이 조그만 반도에서 위대한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등장했다는 자부심이다. 부모님이 외국을 가셨을 때 자랑스럽게 휘날리는 삼성과 현대, 엘지의 로고를 발견하곤 "가슴이 벅차 올랐다"는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다.




두 분은 이 나라가 밑바닥 후진국이었던 시절 청춘을 보냈으며 근대화를 몸소 겪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인텔리들은 언제나 애국주의를 경계하지만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애국주의와 식민지를 경험한 이 나라의 애국주의는 애초부터 근본 자체가 다르다.




이 나라의 고질적인 병폐가 학연, 지연, 혈연이라지만 이재용 회장은 삼촌뻘 내 중고교 선배였다. 게다가 그의 부친 고 이건희 회장은 학교 육성회장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도 인간인 이상 접점조차 없을지언정 최소한 인간적 정은 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서비스는 단연코 국내 최고 수준이다. 지독하리만치 친절하고 다정하며 상냥하다. 친절과 예의 범절이 실종된 시대에 기적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다.

반면 애플은 얼마나 싸가지가 없었나? 도리어 사기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배째라 똥배짱을 부린다. 어찌 된 게 을이 소비자였다. 지금은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알고 있다.




분명한 건 희대의 라이벌 삼성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애플의 패악질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은 우리 국민에게 참 든든하며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 나라 각계각층 최정점에 삼성 장학생이 있다. 그 어떤 메이저 언론도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경우가 없다.




삼성 공화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사건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2011년, 희대의 독재자 김정일이 죽었을 때 국정원보다 북경 주재원을 통해 삼성이 먼저 캐치했다는 것이다. 국가보다 일개 기업이 정보력이 더 빨랐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이라는 점이다. 미전실에서 2002년 당시 대선 후보를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했을 때 여러 참모들의 의견을 모아 노무현 후보를 전폭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로지 민중의 힘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순수한 믿음은 그저 환타지에 불과하다. 애석하게도 말이다.




이 나라가 삼성 공화국임을 제대로 드러낸 가장 강력한 증거가 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2016년 이건희 회장 동영상이 드러났을 때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오로지 뉴스타파만이 이를 심층보도했다.




"할 말은 한다"고 사방팔방 온갖 광고질을 때려대던 조선일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반자본주의의 기치를 내건 한겨레마저 입을 꾹 닫았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출판하며 "우리는 자본과 결탁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것이 무색하게 입을 꾹 닫았다. 거짓말이었다는 뜻이다.




돈이 정말 무섭구나를 제대로 깨달은 사건이었다. 마치 폭탄 돌리기나 러시안 룰렛처럼 누가 먼저 총대를 멜까 눈치만 보다가 어디선가 첫 보도를 시작하니 그제서야 '정론직필'인양 쇼하듯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걸 보노라니 얼마나 가증스럽던지. 개인적으로 뉴스타파가 좌편향적이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이다. 자본에 구애받지 않기에 눈치를 보지 않아 일말의 거리낌이 없었다.




통일교까지는 차마 모르겠지만 신천지나 JMS가 아무리 세다 한들 삼성이 작정하고 맘만 먹고 달려들면 그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구석기 시대로 돌려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의미도 없을뿐더러 천성 자체가 선량하기 때문이다. 부친이자 선대였던 이건희 회장 역시 한없이 선량했다. 애국심이 가득한 인물들이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 8,000억 원을 사비를 털어 턱하니 기부했다. 세월호 사태 때 아무 댓가 없이 애국심만으로 삼성 중공업을 통해 인양 크레인까지 지원했다.

그들은 이미 일개 기업인 수준을 아득히 넘었다. 짐이 곧 조국이라는 태양왕 루이 14세와 마인드와 같다.




그러니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이나 경영 승계 따위는 가볍게 묻힌다. 이 나라 최고 통수권자의 권력은 길어봐야 5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재벌은 일왕의 만세일계万世一系처럼 영원하다.

권력자는 바뀌어도 재벌은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최순실 사태 때 이재용 회장에게 정의를 일갈하는 척 바득바득 호통을 치던 의원들도 카메라가 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하게 굽신거리며 악수를 해댔던 것이다.




게다가 이재용 회장은 교도소 출소 이후 본인이 마지막 삼성 회장일 것이라며 대물림이 없을 것이라 공언했다. 선량하고 정직한 그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이다. 아마 그 때면 이건희 회장이 본보기로 삼았던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판국이니 그 어떤 권력자도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다. 제일 제당 사카린 밀수나 하던 시절이었다면 정치인이 거드름이나 피우며 삥 뜯고는 이리저리 부려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이는 사실상 전무하다.




만약 지독하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지도자가 혹여라도 기계적인 법의 잣대로 삼성에 메스를 들이댄다면 이 나라는 그야말로 사달이 날 것이다. 현대나 엘지가 들으면 다소 섭섭하겠지만 삼성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그야말로 다 죽기 때문이다.




삼성이 쓰러지면 대한민국은 끝장난다. 가난한 집안 똑똑한 자식만 믿듯 그저 삼성만 바라보고 사는 나라에서 한 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존재다. 삼성은 어떤 부류에게는 악마로, 또다른 이들에게는 위대한 애국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악마로 여기든 애국자로 여기든 우리 모두는 부지불식간에 거대한 삼성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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