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하이랜드 로드트립을 떠나다
33번째 나라는 바로 스코틀랜드. 나는 지난 학기에 영국 런던으로 말뫼대학교의 외교부에서 주최하는 아카데믹 트립을 갔다 왔었다. 나 또한 친구처럼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는데 다른 여행자들과 달리 내게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아예 다른 곳이다. 영국에서는 런던 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번 스코틀랜드 트립에서는 친구가 사는 던디, 친구 부모님이 사는 글래스고우, 에든버러, 글렌코, 인버네스처럼 더 많은 도시들을 볼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교환학생이자 나와 금세 친구가 된 Alan을 보러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Alan이 내게 어떤 사람인지 나누고 싶었다. 톰과 제리처럼 투닥투닥 거려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랑스러운 친구. 키는 엄청 큰 친구지만 하는 짓은 너무 귀여운 친구. 매일매일 치킨 아니면 비프를 먹는 친구이자 하루에 4번씩 프로틴 셰이크를 꼭 마셔야 하는 친구, 더위를 못 참는 친구, 걸을 때 엄청 빨리 걸어서 내가 따라잡기 힘든 친구, 얼굴 표정이 풍부하지만 심술 표정을 제일 잘 하는 그런 친구.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고, 정치와 액티비즘에 관심이 많은 그런 친구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참 많이도 통한다.
이번 여행도 그렇듯, 역시나 배낭여행이다. 지난번에 몰타를 갔을 때는 학교 배낭을 가져가서 노트북도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국토대장정 때 맸던 배낭을 가져왔다. 역시나 배낭 하나로 떠나는 여행이 난 제일 좋다. 에든버러 공항에 도착해서 친구가 던디에서부터 픽업을 왔다. 그리고 바로 같이 던디 집으로.
길거리에서 사진도 찍고. 세컨핸드 가게들도 구경하고, 플리마켓도 구경하고.
같이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도 돌아다녔다.
여기 바다도 가고! 모래가 반짝반짝 빛나서 예뻤던 바닷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여행했던 날들 모두 날 좋았다. 정말 스코틀랜드의 봄 치고는 러키 했던 날씨의 세인트루이스 바다였다. 스코틀랜드 봄에는 이렇게 노란 꽃들을 하늘과 함께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를 올라갔다. 바로 아서스 시트라는 산이다. 등산과 트레킹, 하이킹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스코틀랜드의 산들을 데려가 준 내 친구. 친구는 다리 때문에 오래 못 걷지만 여기 코스는 가벼워서 괜찮았다.
자세히 보면, 암벽 사이로 내가 보인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보이기도 한다.
여기 이렇게 앉아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고.
스코틀랜드에 일주일일 밖에 안 있었지만, 이렇게 러닝도 2번 하고. 친구는 다리 때문에 러닝은 할 수 없어서 자고 있는 아침 사이에 러닝하고 아침 먹고 그랬다. 역시, 여행은 러닝! 일상이 여행이니깐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인 러닝도 빼먹을 수 없다. 같이 스코티쉬 피카타임도 가졌다. 채식주의자인 나를 위해 채식 음식점과 메뉴를 찾아봐준 친구에게 정말 고마웠다. 친구 부모님 댁에 갔을 때도 부모님이 비건 디저트도 사주시고, 야채와 과일도 듬뿍 사두시고! 채식주의자인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로드트립은 친구 차로 떠났다. 나는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아쉽게도 친구가 다 운전을 해줬다.
드라이브하는 내내 이렇게 멋졌던 풍경이 내 앞에서 펼쳐졌다.
보트 댓 로키드라는 앨범이 바로 우리의 로드트립의 OST였다. 나는 트랙 8번이 제일 좋았고, 친구는 트랙 4번이 제일 좋아서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역시 장시간 계속 달리는 로드트립은 음악이 함께 있어야 지루함이 없다. 트랙 8번, <This Guys In Love>을 들어보시기를 추천한다.
스코틀랜드라서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캐슬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지낸 에어비앤비이다. 아침에는 저렇게 햇살이 바로 내리쬐는 그런 작은 집. 에어비앤비 호스트 집 마당에 있는 작은 집이었는데, 호스트 가족분들도 친절하시고, 집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친구랑 편하게 쉬다가 갈 수 있었다. 침대도 코지 했지만, 중간에 거미가 나타나서 나만 놀라고. 대신 친구가 무사히 거미를 자연으로 돌려주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인터넷은 안되지만, DVD 티비가 있어서 함께 무비나잇을 가졌다. 우리가 본 추억의 영화, 바로 메리 포핀스. 어렸을 때 보고 이번에 다시 본 영화인데 원래 이렇게 길었던 영화였나 싶다. 어릴 때의 추억으로 돌아간 것만 같고, 그 어린 시절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보낸 친구와 나지만, 이렇게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를 보고 바로 잠이 들었다.
산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는 정말 숨 막힐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다. 작은 도시에서 살고 싶다. 스웨덴에 살았을 때는 말뫼처럼 작은 도시에서 살았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매일같이 인천, 서울, 그리고 성남 이 3 도시를 왔다 갔다 하니깐 작은 도시들이 더 좋은 것 같다.
Alan과 함께하면 하루 종일 이렇게 웃음이 터진다. 스코틀랜드, 친구와 함께한 로드트립에서 모든 것이 다 무지개와 유니콘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여행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내가 본 로드킬 당한 동물들의 숫자는 총 17마리. 아무리 속도제한 표시판이 있어도, 도로가 다 오픈되어 있고 동물들이 지나갈 수 있는 터널이 거의 없고 또 있다고 해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17 마리의 죽은 동물들을 보면서 로드트립에 대한 생각도 더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여행을 이렇게 좋아해도 되는지, 비행기가 끼치는 공해처럼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으로 끼치는 공해와 로드킬을 알고도 계속 여행을 해도 괜찮을까, 이런 고민. 그리고 비행기 기내식으로 사용되는 일회용품을 제로 웨이스트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이런저런 고민들도 많이 했던 여행이었다.
해결책도 없으면서 고민을 시작해도 되는 건지, 어떻게 생각해야 윤리적으로 옳은 건지, 로컬에 피해를 안 주는 공정여행을 추구하지만, 내가 한 여행이 피해를 준 것은 아닌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 장거리라서 보고 싶으면 여행을 해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이 조금 슬펐다. 어떻게 해야 멋진 여행가다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여행할 때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다. 어느 순간부터 비행기를 몇 번 탔는지 셀 수 없을 정도가 되거나 가본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갔는지 적어둔 것을 보지 않으면 한꺼번에 말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남들은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는 것이 되게 부러운 듯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뭔가 요즘 마음이 어지럽게 느껴지는 것은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닌, 정말 고민이 가득해서 느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남녀 사이 친구사이에 관한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애초에 세상을 흑과 백처럼 남자와 여자로만 분류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성별과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성관계만 그렇게 강조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가 남자이던, 여자 인던, 생물학적으로 남자여도 여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거나,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어도 남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거나, 아직 질문 단계에 있거나, 무성애자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싱글이던, 파트너가 있던, 양성애자이거나, 나는 그냥 내 친구이면 친구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내 친구에게 쓰는 편지로 이번 여행기를 마칠까 한다.
Dear Alan,
생각해보니 우리가 친구가 된 지는 아직 1년도 안됐어. 작년 여름에 스웨덴에서 같은 교환학생으로 만나 너는 한 학기만 하고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갔고, 나는 한 학기를 더 하고 있지. 너는 나보다 3살인가 더 많지만 (미안, 너 나이 또 까먹었어) 우리 둘 다 아직 어른이 아닌 건 확실해.
너를 만나러 스코틀랜드에 처음 왔어. 33번째 나라지만 어느 나라를 가던 늘 새롭고 아직도 비행기 탈 때마다 설레. 공항에 마중 나오고, 로드트립 기름비도 안 받고, 에어비앤비도 네가 다 내주고, 감동의 연속이었어. 글래스고우에 있는 너의 부모님 댁에 가서 너의 부모님도 만나서 너무 좋았어. 채식주의자인 나를 배려해서 채식 디저트까지 사놓으신 너의 부모님에게 또 감동하고. 계속 채식 메뉴 가능한 음식점 찾아봐줘서 고맙고, 장 같이 봐서 고맙고.
작은 오두막 에어비앤비에서 함께 메리 포핀스 영화도 봐서 좋았어(정말 긴 추억의 영화였지만). 나는 아직 운전면허가 없어서 운전 교대도 못해줘서 미안해(이번에 한국 가면 꼭 따리라!). 하이킹이랑 트레킹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일부러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위주로 돌아다니게 해줘서 고마워(190cm 넘는 키의 너의 보폭을 따라잡느라 겁나 스파르타였던 155cm의 나였지만).
너를 보러 떠나는 당일 셉텀 피어싱도 해버렸는 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봐줘서 고마워. 트림을 해버려도 말이야. 스웨덴에서 너란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 이제는 베프가 된 너를, 네가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를 만나서 행복했어. 함께 로드트립하고, 그냥 드라이브하고, 그 모든 시간 다,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Alan. 너의 스코틀랜드 억양 때문에 미국식 억양을 가지고 있던 내가 조금은 더 '스코티쉬' 해진 것 같아. 다음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놀러 와서 또 여행하자! 한국에 있을지, 요르단에 있을지, 우간다에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I miss you dearly,
from Sally
지금은: 여행 중
앞으로 매주 토요일, 저의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Breakfast: http://blog.naver.com/gkdmsinj
Lunch: https://www.facebook.com/headshave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