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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sallypark Sep 28. 2022

전화영어 프리랜서의 일을 소개합니다

프롤로그: 전화로 건네는 안부인사 


나의 일은 언제나 상대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이라면 굿모닝으로, 밤이라면 굿나잇으로.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와는 상관없이, 상대가 하루를 잘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는 상대가 하루를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안부 인사를 전화 너머로 건넨다. 전화 너머의 상대방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일을 한 지 딱 2년이 지났다. 나는 전화영어 일을 하는 프리랜서다. 2년 동안 60명 정도가 나의 전화영어를 신청했고, 그중 2명은 중간에 드롭을 하면서 환불을 요청했고, 다른 2명은 내가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환불을 원했던 참가자 한 명은 자신의 영어 실력이 초보보다도 못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화를 그래도 이어갈 수 있는 레벨까지 올라가야 나의 전화영어를 보다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더는 함께하지 못했고, 다른 한 명은 내가 환불을 해드리겠다고, 내가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그만두게끔 만들었다. 그분은 유일한 남성 참가자 2명 중 한 분이었는데,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전화로 계속하길래 내가 더 이상 듣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그분의 취미는 딱 3가지였다. 헬스, 중고차, 그리고 당구. 중고차와 당구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나지만 운동을 무척 좋아하기에 어떻게든 헬스와 관련된, 운동과 관련된 대화 소재로 유도하고 이어가려고 했으나, 한국어로도 듣고 있기 힘든 배타적인 말들을 영어로 매일 듣다 보니, 순간 내가 전화영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상 고객을 상대하는 콜센터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전화영어 일을 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해버리는 감정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콜센터 고객센터의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부터 나는 모두가 신청한다고 굳이 내가 받아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자각했다. 이후로 그런 진상 전화영어 참가자를 다시는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일이 들어오면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점인데 (적어도 프리랜서인 나는 그렇다!), 어떤 일은 분명 거절할 필요가 있고 사계절 내내 수입이 들쑥날쑥 불안하더라도 내 정신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스스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2년 동안 전화영어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하나씩 세워가고 있다. 


전화영어 회사나 플랫폼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혼자 모든 것을 기획해서 해야 하는 프리랜서의 전화영어 일. 하루 15분,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대체공휴일 포함!) 매일매일, 이렇게 한 달.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전화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대화의 결이 너무 안 맞을 것 같으면 정중히 신청을 거절하기도 하고, 첫 통화를 하자마자 마치 원래부터 친구인 것 마냥 너무나도 케미가 잘 통하는 전화영어 참가자를 만나면 1년씩 하기도 하는. 나는 대화하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다. 오늘도 아침 전화영어 참가자들과 굿모닝 인사를 나눴고, 조금 있으면 밤 전화영어 참가자들과 굿나잇 인사를 나눠야 할 때다. 나의 전화영어 참가자들이 좋은 하루를 시작했기를, 또 오늘이 좋은 하루가 되었기를. 서로의 안부인사가 하나둘씩 쌓여가는 통화 기록을 볼 때마다 나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고, 여러분 덕분에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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