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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학교 서울 Jan 15. 2019

세상은 언제든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Why the World Stands Ready to Be Changed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과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현 상태를 바꾸는 게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를 둘러싼 생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체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역사는 끝났다고 믿는다. 반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역사는 아직 진행 중이며 언젠가는 자신 역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세상의 일원이 되면서 현 상태가 영원히 고착될 것이라는 내재적인 편견을 함께 주입 받는다. 주변의 모든 것이 이러한 고정관념을 은근히 풍긴다. 우리 주변 어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존재한 전통을 따른다. 어린 우리의 눈으로 보면 눈앞의 순간들은 거대하게 커 보인다. 다섯 살 아이에게 지난 한 해는 한 세기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집은 고대의 사원처럼 만고불변할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지구가 생긴 이후로 똑같은 의례를 수행해온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세상만사가 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전해 듣고, 현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설득 당한다. 우리는 인류가 가능성의 범위를 온전한 지도로 완성했다고 믿게 된다.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거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배운다. 

그 결과 대안을 상상하는 게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시장은 이미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척하고(이미 모든 게 고정된 패턴으로 정해져 버렸다) 새로운 생각에 특허를 주는 것이(이미 존재하는 생각이거나 미친 짓이 틀림없다) 전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면 전체 그림이 급격하게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고, 단 몇 분 만에산에 올라가 수백 년의 세월을 살펴보면, 변화는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었고, 지배국가들의 대안이 새로 개척되었고,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 누구를 숭배할 것인가의 생각이 바뀌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상한 망토를 입고 어설픈 도구로 땅을 갈았다. 오래 전 사람들은 왕의 목을 베었다. 과거 사람들은 부서지기 쉬운 배를 타고 돌아다녔고, 양의 눈알을 먹었으며, 실내에서 요강을 사용했고, 치아를 고치는 법을 몰랐다. 

우리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상황이 변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거의 부지불식간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사회가 현재진행 중인 격동의 서사에 속해 있으며 우리가 그 서사의 중심 역할을 맡은 배우라는 믿음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일 뿐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주변의 상황은 고정되어 보인다. 


변화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함을 일깨우고 나아가 그 무감함이 키워낸 수동성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T. S. 엘리엇의 <네 개의 4중주>에 등장하는 시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호젓한 예배당에

                                                            겨울 오후 빛이 사위는

                                                                   지금이 역사요 영국이다.

겨울 오후 4시 무렵, 특히 중세에 세워진 호젓한 영국의 시골 예배당에 있다면 누구나 비슷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예배당 공기는 고요하고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묵직한 돌 바닥은 신도들의 발걸음이 닿아 천천히 닳아왔다. 어쩌면 다가올 콘서트를 광고하는 전단과 우리 시선을 사로잡고 싶어 하는 헌금 상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제단 위로 성인들의 모습이 새겨진(베드로와 요한이 각자 양을 안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마지막 빛이 비쳐 든다. 이곳은 세상의 변화를 생각할 만한 장소도 시간도 아니다. 그저 주변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들판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 불을 밝히고, 조용히 저녁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현명한 처사라는 암시를 풍길 뿐이다. 그래서 엘리엇의 시구 세 번째 줄이 놀라운 것이다. ‘지금이 역사요 영국이다’ 우리가 흔히 역사와 연관 짓는 것들 – 위대한 사람들의 충동적인 대담함, 가치관의 극적인 변화, 오랜 신념에 대한 혁명적인 질문, 낡은 질서의 변동 등이 엘리엇이 이 시를 썼던 서리(Surrey) 쉠리 그린(Shamley Green) 근처 시골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곳에서도,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볼 수 없을 뿐이다. 세상은 매 순간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론상 누구나 역사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크거나 작거나 존재한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베니스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르네상스처럼 급진적인 사상을 일으키고, 불교처럼 매우 뛰어난 지적 운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현재는 과거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고, 모든 면에서 유동적이다. 현재는 우리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사랑하고, 여행하고, 예술에 다가가고, 지배하고, 교육하고, 경영하고, 나이 들고, 죽을 것인가는 더 개발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현재의 관점은 확실하게 고정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 확고함을 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존재하는 것의 대부분은 불가피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으며, 단지 혼란과 우연의 결과일 뿐이다. 빛이 사위는 겨울 오후에조차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동참할 힘이 있으며, 아주 조금이라도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번역 이주혜 클래스 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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