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oul (2020): 영혼의 불꽃을 찾아서

전 세계가 공감하는 영혼의 이야기 / 흑인 남주인공의 탄생을 논하다

by thescreenwriter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지난 23일, 토요일. 20일 국내에서 영화 <소울> 이 갓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선 2020년 크리스마스에 Disney+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개봉했었는데 워낙 기다렸던 영화라 한 달을 참는 것조차 얼마나 고역이던지. 들뜬 마음을 안고 서둘러 보러 달려갔다. 방역 수칙도 지키고, 거리두기 및 마스크 착용도 꼼꼼히 하고... 너무나 오랜만에 방문한 영화관은 내가 기억했던 것과 사뭇 달랐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동은 변함없었다. 내용과는 별개로 애니메이션 자체의 놀라운 퀄리티 또한 인상 깊었다. 캐릭터들 하나하나 정말 살아있는 인물들 같았고, 그들의 옷, 배경, 집 등 모든 것이 만져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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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조 가드너 (Joe Gardner.) 피아노에 대한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영화의 시작 시점에서는 밥벌이를 하기 위해 음악 선생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우연찮게 우측에 보이는 과거 제자 컬리 (Curly)의 제안으로 동경해왔던 재즈 밴드의 오디션을 보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조가 오디션을 보는 영상은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데, 듣는 순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순간에 매료당한다. 단 몇 분밖에 보지 않은 이 캐릭터의 열정과 꿈, 간절함,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푹 빠져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가슴으로 훅 다가왔다. 이 오디션을 통해 조는 그날 밤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조가 안타깝게 사고를 겪으며 영혼의 세계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제2막을 진입한다. 육체적 형태를 잃고 파란 형체, 즉 영혼이 되어버린 조는 영혼의 세계에서 무지막지하게 무서워 보이는 머나먼 저세상 (The Great Beyond)로 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다 머나먼 저세상의 정반대인 태어나기 전 세상 (The Great Before)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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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머나먼 저세상, 오른쪽은 태어나기 전 세상이다. 조가 충분히 무서워 할만큼의 공허한 공포가 왼쪽에 담겨있다.


이 곳에서 어린 영혼들은 인격의 형성과정을 거쳐 "불꽃"을 찾으면 지구로 가 태어날 수 있는 Earth Pass (지구 배지)가 주어진다. 조는 얼떨결에 "22"라는 어린 영혼의 멘토 역할을 떠맡게 되는데, 냉소적이고 삶에 비관적인 22를 지구에 갈 수 있게끔 준비시킨 후 자신이 그 배지 대신 써 현재 혼수상태인 육체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물론 가장 큰 목표는 돌아가 재즈 공연을 하기 위함인데, 어차피 지구에 갈 의향이 없는 22는 이토록 삶에 집착이 강한 조를 신기해하며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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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바로 성격 형성 과정을 담은 표식이다. 불꽃을 찾을 시 마지막 빈 동그라미가 채워지며, 지구 모양의 배지가 주어진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불꽃 찾기 대장정! 둘은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체험하며 22에게 불꽃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시도의 끝에서 둘은 목적 없이 떠도는, 괴물 형태가 되어버린 길 일은 영혼들의 사막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둘은 문윈드라는 히피 선장의 도움을 받아 조의 영혼을 현재 혼수상태인 그의 몸으로 돌려보내는 의식을 실행하나 막판의 실수로 22가 조의 몸으로, 조는 고양이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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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길 잃은 영혼들. (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에서 나온 Crow Fishers. 느낌이 비슷해서 담아봤다.


저녁엔 공연이 코앞인데 삶이란 것을 갑자기 살아보게 된 22는 걷는 것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이다. 조의 몸에서 손으로 느껴지는 촉각, 맛, 차가운 가을 공기 등을 느끼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 22는 몸을 돌려주고 싶지 않아 하게 되고, 이러한 22와 조가 갈등을 하게 되며 이야기는 점점 더 고조된다. 몸을 되찾기 위해 갓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 22에게 조는 모진 말을 해버리고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하나, 공연 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허함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조는 인생의 "불꽃"은 꿈이나 뚜렷한 목적이 아니라, 삶을 사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영화의 막바지의 조는 목적에만 집중하느라 주위를 잊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작은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순간순간을 소중히 하게 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소울>은 성과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놓치고 잊는 게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불꽃"과 "꿈"을 쫓느라 힘들어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냉소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목적이 없어도 하루를 살아나간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던지는, <소울>은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22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모든 것에 대한 첫 설렘이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 <소울>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영혼에 대한 고찰, 상처 받은 이들을 위한 위로의 메시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울>은 <토이 스토리>, <코코>, <업>, <월-E> 등 수없이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픽사에서 처음으로 흑인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곧 디즈니에서 2021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Raya and the Last Dragon)으로 처음으로 동남아시아계 여주인공을 선보일 점을 생각하면, 근 몇 년간 할리우드가 다양성 부분에서 느리지만 분명히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쓴 아델 림(Adele Lim) 작가가 집필하는 작품이니, 기대가 크다.


다시 <소울>로 돌아오자면, 픽사의 이러한 선택에 대한 미국 현지의 반응은 다양하다. 우선 소셜 미디어 (SNS) 상에서 가장 많은 호평과 찬사를 불러일으켰던 장면은 영화 속 이발소 장면이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머리는 "Unprofessional, " 즉 "전문가답지 않다"며 학교나 회사에서 질타를 받아 온 아픈 역사가 있다. 똑같이 가지고 태어난 머리인데 백인 여학생의 생머리는 학교에서 허용하나 흑인 여학생의 곱슬머리는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고데기로 6시간 이상 동안 피거나, 심할 경우 잘라버리게 했던 것이다. <소울>이 영화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렇게 다양한 헤어스타일들을 소개한 점은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혁신적이지 않나 싶다. 수많은 이들에게 남모를 위로를,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에게 미디어가 해야 할 본분을 지켜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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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소울>의 대본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울>은 처음부터 흑인 캐릭터를 특별히 유념해두고 쓴 작품이 아니라, "재즈"라는 주제가 정해지자 흑인 주인공이 구체화된 작품이다. 즉, 흑인 내러티브가 아닌 작품에 흑인 캐릭터를 억지로 구겨 넣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작법 수업들에서도 배우듯이, 캐릭터들의 인종과 문화는 그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야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이 아닌 캐릭터는 택배를 2주에 걸쳐 받는 것을 괜찮아 할 수 있으나, 한국인인 캐릭터는 엘리베이터가 1분만 늦어도 발을 동동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사소한 예시지만, 캐릭터의 문화권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소울>은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지어 넣고 흑인 캐릭터를 그에 맡게 맞춰 넣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픽사에서 처음으로 내세운 흑인 남주인공이 정작 영화에서는 거의 푸른 영혼으로만 나왔다는 점에서도 혹평을 받았다.


분명 다양성에 있어서 영화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소울>이 디딘 첫 발걸음을 우리는 기념하며 이 긴 여정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울의 예고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0zFPlArth0&ab_channel=%EB%94%94%EC%A6%88%EB%8B%88


참고 링크:

https://www.insider.com/pixar-soul-original-ending-explained-2020-12

https://www.nytimes.com/2020/12/22/movies/soul-pixar-disney-black-characters.html

https://www.polygon.com/movies/2021/1/24/22246929/pixar-soul-black-character-22-passing-narrative

https://www.insider.com/pixar-soul-movie-review-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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