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증언을 시작하며

by 최윤주

이 글은 아이유에 관한 이야기다. 흔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아이유 덕질 수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탈덕의 언저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의 고독한 중얼거림’....


‘아이유’와 ‘탈덕’이라니 어색한 조합일까? 아니, 그전에 ‘아이유’와 ‘덕질’이라는 말의 조합 자체가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유재석이 최애’라는 말이 어색한 것처럼, 수식어에 국민 같은 말이 붙는 사람들은 뭔가 좀 그런 느낌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구체적인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달까. 그 사랑이 집요하고 질척거리고 어딘가 음습한 형태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나 대중적인, 달리 말해 건전하고 기부를 잘 하며 자기 일에 더없이 성실한 국가적 위인들에게 덕질할 만한 굴곡이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적어도 내게 유재석은 그런 이미지니 누군가에겐 아이유도 그런 이미지이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아이유를 집요하고 질척거리고 어딘가 음습한 방식으로 덕질해 왔다. 음원과 유튜브, 콘서트를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표정과 컨디션, 사연을 관음하며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데 혈안이 되곤 했다. 작품과 언행에 어쩌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완벽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연재에선 그의 음악이 내게 주었던 위로와 용기만이 아니라 자격지심이나 서운함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질려버린 콘서트 셋리스트나 너-무 싫었던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남들은 다 좋다는 작품에 팬이라는 사람이 불평불만을 해야겠다니, 쓰면서도 뭐 하는 건가 싶다.


하지만 해묵을 만큼 지독하게 덕질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우리들에게 덕질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진실을 말이다.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순수한 애정과 환희도 있지만, 부정할 수 없게 너저분한 구석도 있다. 양심이 작동하고 덕질에 취해 있던 시기를 넘어선 상태라면 모르기 어려운 정도로 그 구석은 작지 않다.


누군가는 듣고 싶지 않을 이런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는 이유는, 이제 더는 그만 표백되고 싶기 때문이다. 케이팝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팬덤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아이돌 팬들을 향한 시선도 많이 변화했다. 20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한 터라 내가 본 것조차 극히 일부겠지만, 당장 8, 9년 전만 해도 팬들은 소위 ‘인정 투쟁’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아이돌 팬덤을 소재로 한 웹툰이나 소설들이 쏟아지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덕질을 증언하지 않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매우 상세하고 실감 나게 묘사하는 사람도 있었고, 팬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적인’ 사랑에 빗대어 설명하는 이도 있었다.


대부분 남자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아이유를 좋아하며 팬덤 문화를 막 접해가던 내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상의 감정에 빠진 어리석은 애들로 비친다는 점에서 ‘우리'는 결국 한 배를 탄 입장이었다. 그때 우리 모두가 목표하던 공통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여기 이런 사랑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있다. 최소한의 출발점이 가장 절실한 종착지던 시절이었다.


언젠가부터 흐름이 방향을 틀어 팬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아이돌 산업이 화려하게 각광받았고, 아이돌들의 사회적 위신도 점점 더 상승했다. 팬덤의 위치도 변화했다. 덕질에 관한 수기가 쩌렁쩌렁 고함을 치듯 출간되어 비슷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소설이나 웹툰은 사생팬 등을 다루며 어두운 면을 그려내기도 했지만, 허구나 익명에 기대기 어려운 에세이의 경우 대부분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덕질이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운지, 덕질을 통해 나 자신이 얼마나 온전한 내가 되는지, 아이돌을 향한 팬의 마음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순수한지, 뭐 그런 것들. 무해하고 유익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을 사정을 나 역시 헤아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이돌을 향한 팬의 마음도 낡고 얼룩지며 변색된다. 끈덕진 애정에는 집요한 시선과 폭력이 얽혀 있으며, 치졸하고 비참한 질투를 하기도 하고, 십수 만원의 공연 티켓값이 3시간 공연으로 증발하듯 열렬했던 순간이 공허하게 허물어지는 일도 있다. 왜 없겠는가, 이것도 사랑인데. 여기에도 마음이, 사람이 있는데. 줄곧 해온 이야기를 더 솔직하게, 그럼으로써 보다 정확하게 전하고 싶다고 아주 오랫동안 바라왔다.


그리고 내심 품어온 또 하나의 동기가 있다. 그것은 최소한의 책임을 지고 싶다는 마음이다. 우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관계와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거기서 비롯된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응할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케이팝을 통해 알게 됐다. 누군가가 몸이나 마음을 다치고, 금전적 손해를 입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데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던 시간들을 통해서.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케이팝이 관계로서든 산업으로서든 가진 폭력성과 파괴력이 분명히 있다. 이런 진실은 기사나 칼럼을 통해서만 간헐적으로 논의되지만, 1인칭 시점에서의 진술을 누락한 채로는 온전히 말해질 수 없다. 우리 존재를 말랑하고 무해한 존재로만 간주해서는 영영 포착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연루된 이로서 책임감을 느껴 왔고, 늘 그 책임을 지고 싶었다.


이런 고민의 끝에서 나온 제목이 어떤 사랑의 음각이다. 이 모든 게 사랑이란 것도, 이 사랑이 빛나는 만큼 그늘져 있기도 하다는 것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산란하는 빛처럼,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그림자처럼, 언제나 혼란스러우면서도 눈길을 뗄 수 없던 마음을 정직하고 허심탄회하게 꺼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런 ‘사랑’이 있을 자리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