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닌데, 너랑 나랑은(재업로드)

허무맹랑한 꿈의 종착지

by 최윤주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어디 어떻게 내놓아도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가장 숨기고 싶었기에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마음, ‘자격지심’에 관해서다. 시기, 질투, 열등감 같은 말들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스스로를 미흡하게 여긴다는 의미의 자격지심이란 말이 더 와닿는다. 비교 대상은 명확하지만 어디 분출할 수 없어 오래 키워오기만 한 감정이라 그런 것 같다. 앞뒤를 다 자르고 아주 투박하게 요약하면 꿈과 돈 얘기인데, 대뜸 돈 얘기부터 하자니 안 그래도 창피한 내가 너무 쑥스럽다. 그러니 꿈 얘기 먼저 꺼내는 게 좋겠다. 물론 이 얘기 또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지만.



좀처럼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던 10대와 20대 초반의 아이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로 커리어를 쌓고 자아를 찾아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는 일은 상처와 한계를 지닌 게 나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주는 한편으로, 자기 바깥의 자신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활력이 되기도 했다. 스무 살을 전후했던 내게 그 상상은 대학이나 직업처럼 구체적인 형태일 때도 있었고, 행복이나 자기 긍정처럼 모호한 모양일 때도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아주 또렷하고 선명한 바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가 아니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목적지를 모르더라도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떤 내가 너무 싫다는 건 달리 되고 싶은 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이유의 <A Dreamer>를 들은 어떤 날의 나는 심지어 이런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당신은 나를 꿈꾸게 해. 그게 참 고마워.” 그러니까 나는 꿈을 꾸는 일, 내 앞에 펼쳐진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어루만지는 일을 참 좋아했었다.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좋아했‘었’다고 단호한 과거형으로 닫아 쓴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찾아온 지금의 내가, 그다지 대단한 어른의 모습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명백백하게 인정받을 만한 성취는커녕, 가까스로 1인분이나 하면 다행인 수준으로 벌어먹고 산다. 글 쓰고 말하며 남들 앞에 서는 일은 자주 소꿉장난처럼 느껴지고, 명예 없는 명예직인가 싶어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대단한 어른이란 게 그렇게 속물적인 기준으로만 측정되냐 묻는다면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어차피 성품 면에서도 특별히 귀감 될 것은 없는 상태다. 그릇이 작달까. 일궈 놓은 기반이 없어서인지 나는 쉽게 조급해지고 흔들리며, 전보다 내일이 불안하고 어제를 자주 돌아보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고 싶어 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어느 미래든 이것보단 크고 멋진 무엇일 거라 상상해 버렸던 것 같다.


내가 분수를 몰랐던 것도 맞고 생각보다 속물인 것도 맞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나 미디어를 통해서나 ‘성장’이나 ‘꿈’이란 이름으로 삶의 태도와 목적을 주입당한 탓도 있다. 일단 꿈부터 써 보라거나, 상상하는 대로 이뤄진다거나 하는 거의 주술에 가까운 격언들이 책으로, 학교 수업으로 곧잘 쏟아져 들어오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꿈꾸지 않는 걸 거의 죄악시하던 분위기였다. 책임져 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그렇게들 야망을 주입했을까. 꿈으로부터 유기되고 나서야 그런 의문이 든다.

그때, 자기 계발서보다도 강력한 것이 케이팝이었다. 나보다 고작 몇 살 더 많은 또래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재미도 신빙성도 이쪽이 나았다. 아직 덜 자란 얼굴로 보여주는 독기란 이름의 근면함과 꿈이란 이름의 성공 서사에 공기처럼 은은히 노출되었다. 그 경험이 내 생각보다도 나를 더 많이 길들였던 것 같다. 그들은 불건강한 것을 넘어서 인간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수준의 혹독한 요구들을 소화해 냈고, 실력이나 외모로 비난당하던 신인 시절을 지나 점차 자신을 완성시켜 나갔다. 실력을 키워 자기 불신을 극복해 내고, 대중을 설득시키고, 굵직한 업적들을 이루며 어떤 기록들을 경신하는 장면들이 내 인생에도 중요한 참고문헌이 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읽은 대로 살아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무수히 펼쳐져 있는 듯하던 가능성들이 하나 둘 셔터를 내렸다. 좁아져 가는 길목을 무력히 바라보며 내 인생이 아주 평범한 사람의 소유인 것으로 판별되고 나서야, 뒤늦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속일 의도가 없었다면 착각이라고 해야 할까.


열여섯 살의 나이에 데뷔해, 평생을 정밀히 기획된 의도 속에서 연마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나는 뭘 믿고 그렇게 매달렸던 걸까? 아이유가 ‘국민'이란 수식어를 달고 대중 앞에 서던 그때부터,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해 학업보다 연습이 우선이었을 처음부터, 사실 우리 사이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얼굴'이란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교집합도 없었을 것이다. 겨우 그 미완에 속아 너무 많은 착각을 했다.

책망할 곳 없는 좌절감과 패배감으로 괴로울 때면, 혹시 내가 착취하듯 즐겼던 역사의 대가인가 싶기도 하다. ‘진정성’이나 ‘성장형 아이돌’ 같은 말로 포장해 남의 굳은살과 상처를 핥으며 나를 투영하던 순간이 다 내게 돌아올 미세한 학대의 시간들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겨우 서른 즈음에 인생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을, 꿈이 작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 좀 과도하지 않나.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극단적인 최대치를 목격하는 경험은 너무도 짜릿하고 공허한 일이다. 누군가의 거대한 성취가 내 보잘것없는 여정을 상쇄시켜서, 소거되고 남은 것이 실패밖에 없는 기분을 어떻게 지고 가야 할까.

언젠가부터 <A Dreamer>를 찾지 않고, 최근 앨범인 <The Winning>을 심드렁하다 못해 짜증 나는 마음으로 감상했던 것은 이런 사정에서였다. 앨범을 설명하며 아이유는 말했다.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자신의 욕망에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꿈은 좀 허무맹랑해도 좋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맘껏 꿔라.’ 그 말에 위로받은 사람들이 많으니 나는 또 <Celebrity> 때처럼 할 말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아무리 선해해 보려 해도 이입도 공감도 되지 않았다. 도달할 수 없이 성공한 사람이 여러분도 꿈을 꾸며 날아오르라고 말하는 것이, 언젠가 질리도록 보았던 낡고 무책임한 자기 계발서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게 아닌데. 자신의 꿈으로부터 완전히 패배한 사람은 어디로 가게 되는지, 낙차감으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제 나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한데… 지금의 아이유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인정은 하는데, 그렇다면 혼자가 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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