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 가난한 상상력으로 들으면

'계급통', 그 너절함에 관하여

by 최윤주

꿈 이야기를 했으니 돈 얘기를 할 차례다. 돈 얘기를 하는 건 왜 이렇게 수치를 동반할까? 이야기라 부르는 것도 멋쩍고, 왠지 ‘얘기’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좀스럽고 음습하니까. 망가진 꿈이나 불행이라 부르는 추상의 세계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구질구질하고 누추한 현실의 사정이니까. 오늘도 각오가 좀 필요했음을 미리 고백한다.




스스로도 경박하다 못해 천박하다고 생각할 만큼 속물적인 것을 알지만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감상이 있다. 나는 가끔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유의 노래들이, 그의 통장 잔고가 쌓이는 소리로 들릴 때가 있다. “잊지 마, 넌 오랜 어둠 사이” (땡그랑)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니” (땡그랑) “나의 이 가난한 상상력으론 떠올릴 수 없는 곳으로” (땡그랑) … 네. 미안합니다, 아이유 씨. 이 무례함을 용서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런 감각으로 노래를 들으면 거리를 누빌 때마다 묘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다. 하필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차트의 여왕이어서 어딜 가나 그의 노래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의 핸드폰 대리점을 지날 때면, 과장이 아니라 59%의 확률로 아이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차트 200위 안에 아이유의 노래가 열댓 곡씩 있던 때여서 그 가게가 아니어도 옆 가게, 혹은 맞은편 가게에서도 들려오곤 했다. 〈Palette〉를 들으며 몇 발짝 걸어갔더니 다음 블록에서는 〈어푸〉가 나온다거나, 이웃한 가게가 돌림노래처럼 아이유 노래를 재생하고 있다거나 하는 일이 정말 많았다.


그러니까 그게 다… 얼마였을까. ‘벚꽃 연금’ 같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대국민 히트곡 하나만 있어도 노후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그의 통장 잔고는 불어나 있겠지. 상상이 잔고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나의 가난한 상상력으론….


정성과 애정을 담아 불렀을 노래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불어날 남의 통장 잔고 같은 거나 상상하는 것이 천박하고 무례한 일이라고는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연예인을 덕질하면서 ‘돈 생각’을, 정말로 안 할 수 있을까? 그런 다정하거나 넉넉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비슷한 고충을 나누는 친구들 몇을 일반화의 증인으로 내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유명세란 이름으로 연예인들이 겪는 정신 건강 문제에 점점 더 냉정해지는 것이 나는 진지하게 부의 불평등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임금 노동으로는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깜깜한 사회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평생 벌 수 없는 금액의 돈을 공연 한 번, 음원 하나로 척척 벌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응원하는 마음을 갖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속한 상류의 화려한 삶이 아니라, 하류의 구차한 공기를 몰라도 되는 쾌적한 사정이 부럽다. 그들만 아는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몰라도 되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1년, 2년 단위로 수명을 연장하듯 부동산 계약서를 갱신해야 하고, 누군가에겐 이자쯤 될 돈을 목돈으로 모으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지난한 매일에, 많이 지쳐 있다.


그래서 또 한 번 앨범 〈The Winning〉이 싫었다. (이쯤 되니 내가 이 앨범에 원한이라도 품은 것 같은데, 맞다.) 돈과 관련해서는 〈Shopper〉라는 곡이 끔찍했다. 〈Shopper〉는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펼치라’는 메시지를 ‘쇼핑’이라는 비유에 담아낸 노래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카트에 담듯이 자신만의 욕망을 자유롭게 담으며 살라고, 가치도 가격도 스스로 매기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응원가를 의도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쇼핑 장려곡이 웬 말인가. 그렇게 트집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계급 격차를 실감시키는 노래라서 싫었다. 뭔가를 끊임없이 성공해 낸 사람 특유의 자신만만함 자체도 부담스러운데, 그걸 하필 쇼핑에 비유하는 무심함에서 윤택한 생활의 흔적이 상상됐기 때문이다. 엔데믹 직후의 불경기에 대체 왜 쇼핑 같은 것을 은유로 소환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게 그런 과감함은 다이소에서조차 부담스럽다. 통장 잔고가 궁색한 사람에게 욕망은 자유라기보다 짐이고 숙제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알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자유라고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악뮤의 노래 〈Freedom〉을 정말, 정말 좋아했다.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두 손을 비우고 싶어”서 “돈 없이 살고 싶”다고 외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과감함에 올라타 어디로든 항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악뮤의 찬혁이 47억에 주고 산 홍대의 빌딩이 60억대로 올랐다는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싱어송라이터의 곡을 지은이와 분리해 듣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내 안에서 햇빛이 맺힌 바닷물처럼 희게 반짝거리던 노랫말들이 더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아이유의 〈무릎〉도 비슷하게 잃었다. 〈무릎〉은 화려하지만 불규칙한 연예인의 삶을 산 대가로 불면을 얻은 20대 초반의 아이유가, 홀로 깨어 있는 밤의 외로움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던 노래다. 말간 민낯 같은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는 한편으로, 그의 희고 무른 속내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많은 것들이 변하면서 전만큼 많이 듣지는 않아도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아이유의 침대가 1억쯤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사이가 좀 어색해졌다. 울며 걷던 퇴근길을 위로해 준 노래들을 그런 식으로 여럿 잃었다.


어떤 곡들은 태생부터 따져 묻고 싶었다. 자기 상상력이 가난하다고 말하는 <Love wins all>이나 마음이 가난하다고 하는 <아이와 나의 바다>,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Coin>을 들을 때마다, 지난날 나는 얼마나 많은 분노를 느꼈던가. 어떤 노래들은 소설과 아주 다르지 않으니 그저 선율이 끝나면 마무리될 한 편의 허구로 받아들여도 좋으련만. 하필 130억 아파트를 샀다거나 현금 50억 보유자만이 발급 가능한 블랙카드를 사용했다는 소식 같은 것이 함께 들려오니 좀처럼 유쾌하게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가난, 코인, 쇼핑… 왜 이렇게 돈으로 하는 비유를 좋아하는 걸까.


그런데 너는 마음도 상상력도 가난한데, 경제적으론 가난하지가 않구나. …좋겠다, 마음이랑 상상력만 가난해서.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 ‘보릿고개’를 꼽았는데, 이제 너는 그 고개 헬기 타고도 넘겠다. 야, 그럼 나는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네 세상에도 슬픔이란 게 있구나. 아, 뭔가가 도망치고 부서지고 저물어가기도 해? 응, 그렇구나. 야, 그래도 슬픈 게 비참한 것보단 나은 것 같애. 너 이제 비참하지는 않은 것 같다. 구김도 없고, 모난 데도 없고, 안색이 참 좋아졌어. 얼굴 좋아 보인다, 야. 진짜로 좋아 보여, 진심으로….


근데 지은아 너는, 이제 될 수 있으면 돈 얘기는 하지 마라… 듣는 사람 속 터지니까.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이게 아닌데, 너랑 나랑은(재업로드)